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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22 13: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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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고장난 폭주기관차 멈추는 방법은 연료 고갈이나 어딘가 충돌해 박살나는 둘 중 하나뿐
-배은망덕 일본은 자신의 위상은 영•미가 봐준 덕이라는 것을 핵방망이 두 방 참교육으로 깨우쳐
-다음 금융 안보 위기 있다면, 김영삼정권처럼 미•일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는 상황 벌어질 것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를 곱게 멈추는 방법은 없다. 연료가 고갈되든지, 아니면 어딘가에 부딪혀 박살이 나든지 둘 중 한 가지일뿐이다.


사실 지금의 한국인들만큼 비이성적이고 배은망덕한 경우가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일본은 영미(영국, 미국)의 동맹, 후원 속에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조선과는 다른 운명의 길을 걸으며, 아시아 유일의 선진 열강국 대열에 올랐다.


일본만이 예외적이었던 것은, 에도시대부터 닦아오던 상공업과 난학이라는 사회 제도적 인프라의 덕도 있다 . 하지만 일본이 가장 결정적인 열강으로 도약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던 러일전쟁의 승전 뒤에는 일본을 아시아의 대리인으로 해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영국의 힘이 100% 작용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러일전쟁은 사실 일본이 승리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그 종전 시점에 일본은 모든 힘을 쏟아붓고 나서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려 있었으며, 러시아는 아직 그 가진 힘의 일부밖에 쓰지 않은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 전쟁에서 지면 일본은 열강으로의 도약은 커녕,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지역강국 정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국이 일본의 전쟁국채를 인수해주고, 러시아 발틱함대의 수에즈 통과를 막았다. 전자는 일본에게 전쟁을 치를 군자금이되었고, 후자는 러시아 해군에게 먼 길을 돌아와 도고 헤이하치로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선사했다.


▲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뒤에는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영국이 있었다.


러일전쟁의 일본은 대영제국을 대리해 싸우는 장기말이었고, 거기서 승리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영일동맹의 가호 속에 열강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물론 일본 자력으로 승리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러시아와의 휴전 정도에 불과했기에 일본이 받아낸 전쟁의 대가는 미미했다. 일본은 이후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미국의 연합군에 숟가락만 얹는 무임승차로, 패전한 독일제국의 산동반도와 태평양 식민지를 무혈 접수하게 된다.


이후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거치면서 일본은 지금 동양에서 유일한 자국의 번영이 오직 자신들의 실력 덕분인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고, 메이지 유신 때부터 탈아입구를 외치며 서양을 배우자던 겸손한 자세를 버리고 일본 전통문화와 일본 주도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환상을 좇게 되는데.


그렇게 영국, 미국의 우산이라는 배경을 스스로 걷어찬 일본은 추축국 독일, 이탈리아와 손을 잡고, 미국 태평양함대의 모항 진주만과 영국 동양 함대의 전함 프린스오브웨일즈 호를 공격한다.


그 결과물은, 잠시 미 해군이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태평양을 몇달 간 휘젓다가 1년도 안되어 미드웨이에서 주력항모 전부를 잃는 대패를 당하고, 이후 종전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패배의 연속이다.
애초에 주제 파악 못하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나, 일본의 국력은 미국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전선에 쏟아부은 전력의 10분의 1만의 힘으로 일본을 유린했고, 일본은 거의 모든 전투에서 1 대 10 이상의 사상자 교환비(일본군 10명 죽을 때 영/미군 1명 죽었다는 이야기)를 내며 전 국토가 폭격을 얻어맞으면서 결사옥쇄의 정신승리를 내세우게 된다.


그런 일본의 배은망덕함 앞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방의 핵 방망이가 떨어지고, 그제서야 일본은 자신은 도저히 영•미의 적수가 아니었으며 자신의 과거 위상은 모두 영•미가 봐준 덕이었음을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참교육으로 깨닫는다.


이후 일본의 행보는, 모두가 아시다시피다. 미군 태평양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일본 천황을 옆에 부하처럼 세워 사진을 찍으며 신격에서 격하시키고, GHQ막부(천황 위에 군림하는 실권자)로 군정을 실시하며 일본을 철저히 복속시킨다.


그리고 일본은 5개의 눈(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이라는 첩보동맹 바로 다음 가는 자리를 이스라엘과 겨룰 정도로, 미국의 또 하나의 분신으로 세계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는 나라로, 아베 신조 정권에까지 이르게 된다.


일본에서도 1930년대에 반미, 반영 감정과 ‘귀축영미’ 선동에 대해 우려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있었고, 일본민족을 절대화하는 선동에 맞서는 이성이 있었지만, 국가 전체의 이성을 잃은 폭주기관차를 멈출 순 없었다. 결국 도조 히데키의 폭주기관차는 핵 두 방을 얻어맞고서야 멈춰섰다.


지금 한국의 종북민족주의자 정부가 하는 꼴이 딱 그때 도조 히데키의 자만심 가득한 민족주의적 일본 아닌가.


남침 승인을 거절하는 스탈린에게 48차례나 허가를 조르고, 마지막엔 마오쩌둥의 보증서를 들이밀고 기어이 윤허를 얻어내 1950년 6월 25일 남침, 300만 명의 한국 군인과 민간인을 죽이고 한국 산업시설의 절반과 국부의 4분이 1을 파괴한 침략전쟁 범죄자이자 A급 전범인 김일성을 한국에서 뻔히 보이는 선전전에 내세우고, 그 독재자 집안의 3대 세습공주는 한국에 와서 무슨 시혜라도 베푸는 듯 상전으로 행세하는 모습이다.


유럽에서 전범 히틀러로 이러는 거,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치를 상상하게 하는 표현만으로도 모두 공적 금기이며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런 모습을 우려해 사전에 “북측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달라”고 공개 요청을 보낸 미국 부통령의 뜻을 상큼하게 씹고 억지로 동석시키는 무례를 범하더니, 이걸 거부하자 결례라고 적반하장을 시전한다.


동맹인 미국 부통령과 일본 총리의 방한에서는 차관이 영접하는데 적대국이자 1급 전범국 북조선 공주 영접엔 장관을 보내어 하인처럼 굽신거린다.


미국은 적대하고 북조선에는 아양을 떤다. 적국 중국의 불공정무역 행위엔 아무말도 못하면서 미국에겐 기다렸다는 듯 WTO 제소를 떠들며 이빨을 드러낸다.


미국은 상호적 도의를 다하지 않는 동맹국에 대해 바보처럼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다음 금융위기나 안보위기가 있다면, 딱 미국,일본에 거리 두고 북조선 감싸고 돌던 김영삼 정권 당시 1997년과 같은,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보시면 된다.


이 문재인 정권이라는 종북 극우민족주의의 폭주기관차는 어떻게 멈추게 될 것인가.


그 결과가 일본의 1945년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핵 방망이라면 부디 평양과 흥남에 떨어지기를.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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