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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7 10: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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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사회주의? 스웨덴처럼 사회적 대타협이 행해진 나라에서도 실패한 모델로 애초부터 헛된 관념
-세계최대 기관투자자인 블랙록은 4조7천억 달러의 자산 운용. 우리나라 한해 GDP 1조 5천억 달러
-민주화 운동권의 감성팔이는 과잉 일반화나 선택적 추상화, 흑백논리 등의 인지적 오류를 전제한다


지난해 11월 20일. KB금융지주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대통령의 공약이라면서 노동이사제에 찬성표를 행사하였다(동아일보, 2017-11-28).

 

현 정권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로 어떤 정치적,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그런 목표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기금사회주의 모델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다. 스웨덴 같은 사회적 대타협이 널리 행해진 나라에서도 실패한 모델인데, 우리나라에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헛된 관념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사례와 같이 신자유주의 모델을 지향하려는 것인가?

 

그간 우리나라 운동권과 시민단체 세력들은 대중에게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체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상세한 판단 없이 ‘재벌개혁’을 한답시고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주장하는 정책수단을 개혁이라고 밀어부쳤다.

 

이른바 ‘민주화운동’했다고 주장하는 학계, 법조계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구성하여 미국의 ‘대기업개혁’ 4자 동맹과 유사한 세력틀을 짜서 미국식 대기업개혁 규범들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미국과 달리 자본시장과 M&A시장이 없다. 그래서 완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될 수가 없는 조건이다. 그렇다고 부족한 부분만큼을 연금과 국책 은행을 동원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성장모델은 국가가 주도하여 특정 산업부문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여 고속성장을 이루고, 이후 나머지 부문을 성장시키는 불균등 발전전략이었는데(박정희 모델), 이런 발전전략의 결과 산업자본 위주의 재벌들이 경제체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국가주도 경제의 산물인 재벌들은 현 집권 세력인 ‘민주화 운동권’과는 태생부터 안 맞을 수밖에 없다. 세계의 흐름이 바뀌면 재벌의 경영관행도 다르게 바꿀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국민경제의 상태에 대한 상세한 파악 없이 세계 금융자본의 하위파트너로 스스로 전락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연금 자체의 안정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국제 금융자본에게 또 하나의 기회라는 신호를 줄 위험이 있어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다. 연기금은 오히려 대부분 산업자본 위주의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여,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나 대규모 주주배당보다는, ‘유보와 재투자’를 촉진시키는 경영 분위기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지름길이다.

 

◈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와 신자유주의의 완성

로버트 몽크스(Robert Monks)는 1984년 미국 노동부 연금국장으로 부임하였다. 처음부터 그는 그 자리를 오래 맡을 생각은 없었고, 다만 자신의 신념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어젠더 실현과 돈벌이를 위해 딱 1년만 일하기로 작정하고 그 직책을 맡았다고 밝혔다.

 

연금국장 재임 초기 몽크스는 전국의 연금 행정가들을 모아놓고 이후 기업지배구조 활동가들에게 기념비적 연설로 평가받는 ‘기업시민으로서의 기관투자가’(the institutional shareholder as corporate citizen)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다.

 

“기관투자자들이 행동주의적 기업시민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중략)..나는 기관투자자들에게 (주총 등에서) 안건을 제의하고 통과시키는 것이 기업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중략)..따라서 좋든 싫든 간에 실무적 비즈니스 이유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은 갈수록 더 행동주의적 주식소유자(shareholder-owner)가 되고 갈수록 덜 수동적인 투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장섭, <경제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

 

몽크스는 자신의 공언대로 1985년 연금국장을 사임한 후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를 설립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기관투자자 행동주의를 실천한 인물인, 캘리포니아 주 재무최고책임자로 재임하였던 재시 언루(Jesse Unruh)가 주창하여 1985년 기관투자자들의 연합체인 ‘기관투자자평의회’(counsil of institutional investors : CII)가 출범하였다. 같은 해에 공공부문 위주의 기관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자극받은 기업사냥꾼들을 포함한 민간 기관투자자 위주의 ‘주식보유자연합’(united shareholder association : USA)이 출범하였다.

 

주주의 권한을 강조하는 주체 세력이 정립되자 이후 1988년-1989년에 연금펀드의 투표 의무가 제도화되었고, 1992년 기관투자자들의 실질적 카르텔이 허용되었으며, 2003년에는 뮤츄얼펀드 등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투표 의무도 제도화되었다. 주주 행동주의자들은 2차대전 이후 70년대까지 30여 년간 장기간 지속된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끌던 전문경영인 주도의 경영자본주의 내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끝장내고,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고히 할 제도적 정비를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흔히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시대를 연 것이다.

 

돌이켜보면 서구의 복지국가 제도는 케인즈주의 경제사조를 반영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제도였다. 자본주의 발생 때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자유방임형 자본주의가 1929년 대공황으로 끝장난 후, 이른바 수정자본주의 시대에 주요 대기업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이 경영하였는데, 이들은 투자자로서 주주들과 노조나 관련업체 등 그 기업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잘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경영을 하였다. 전문경영인들은 말하자면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대리인’이었다.

 

70년대 들어 계급 타협적인 복지국가 모델은 정부나 기업 가릴 것 없이 관료주의의 만연과 공공부문 제 조직들 및 노조 등 목소리 큰 세력들의 변화에 대한 저항과 고집으로 경제운영이 경직되어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 결과 성장률은 정체되고 물가는 인상되는 스테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져갔다. 주주 행동주의 세력들은 이런 정부와 기업의 비효율을 공격하여 대중적 동의기반을 넓혔고, 근본 문제는 ‘대리인’으로서 전문경영인 체제 때문이라고 공격하면서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직접 나서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기관투자자 투표를 제도적으로 강제하여 마침내 주주 자본주의를 완성시킨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80년대 들어 기존의 계급타협을 기반으로 한 정권들이 국가나 민간부문 할 것 없이 만연한 관료주의적 병폐와 비효율을 치유하지 못하고 퇴장하자, 대처-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인 정치경제 체제 운용의 기준이 된 것이다.

 

◈ 현대의 재벌

미국의 경영자본주의 전성기에 전문경영인들은 회사 사람, 즉 ‘조직인’(organizational man)으로 평가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유보와 재투자’의 경영철학을 실천해 기업을 키우는 것을 경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비대해진 관료기구의 폐단이 쌓여 70년대 들어 계급 타협적인 경영자본주의는 본격적 도전에 직면한다. 일본, 독일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효율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또한 70년대부터 본격화한 인플레도 대기업 비판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대기업 개혁’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그간 대기업들이 경영다각화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면서 주주들의 이익을 무시하고 ‘방만경영’을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기업 사냥꾼, 기관투자자, 변호사 및 학자 등 다양한 세력들이 대기업 개혁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주주가치 극대화’ 운동을 펼쳤다. 이들 개혁세력들을 자세히 살피면 ①주식시장 내 기관투자자 세력 ②기업 사냥꾼 등 적대적 인수합병 세력 ③주주행동주의로 귀결되었지만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연구한다는 학계 인사들 ④대리인 이론을 무분별하게 확대 적용한 법 전문가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대기업 개혁을 위한 이러한 4자 동맹이 형성되자 미국 경제시스템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폐기되고 신자유주의가 완성된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크게 성장한 기관투자자들은 초거대 재벌로 변신하였다. 압도적 펀드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2016년 말 미국 주식의 31%인 6조 8,180억달러(약 7,800조원)의 주식을 블랙록(Black Rock. Inc.), 뱅가드(Vanguard Group. Inc.) 등 상위 5대 기관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상위 100개사로 범위를 넓히면 미국 주식의 78%를 보유한다.

 

세계 제일의 기관투자자인 블랙록은 전 세계 2,610개 기업에서 5%가 넘는 지분을 갖고 있고, 약 4조 7,0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한해 GDP가 대략 1조 5,000억 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니라 이런 것이 현대의 재벌이다.

 

이들 기관투자자들, 즉 펀드들은 어떻게 기업들을 지배할까?

 

이들 기관투자자가 초거대 재벌이 된 것은 이들의 펀드가 주로 인덱스 펀드이기에 가능하였다. 세계 최대의 기관투자자인 블랙록의 경우 자사 소속 펀드매니저들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는 액티브 펀드는 34% 뿐이고, 나머지는 내부에 기업지배구조팀을 만들어 투표를 총괄하여 운용한다. 또 다른 방안으로 가령 몽크스가 연금국장을 사임하자마자 1985년에 설립한 ISS와 같은 의결권자문사의 권고를 받아 투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거대 펀드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기관투자자들은 미국에서 실질적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게 관련 규제를 푼다.

 

1992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이 앞장서 요구한 청원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첫째, 투자자들이 기업의 어떤 문제든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할 수 있게 하고(즉 담합할 수 있게), 둘째, 투자자들이 기업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했으며(내부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셋째, 투자자들이 언론 등을 통해 해당 기업과 기업인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투자자 카르텔을 허용하였다. 어떤 경영진도 기관투자자 카르텔의 ‘권고’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주주 자본주의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실질적 투자자 카르텔의 위력을 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2016년 10월 초 미국의 엘리엇펀드는 삼성전자에게 30조 원을 주주들을 위해 사용하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잠깐 보도된 적이 있다. 엘리엇펀드는 당시 삼성전자 주식의 0.62%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경제신문 2016-10-6). 이 엘리엇펀드는 미국에서는 규모가 보잘 것 없는 작은 펀드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삼성측은 이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5분기 동안 진행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처리 내역을 보면 엘리엇의 요구를 120%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분기 약 9조 원 내외의 흑자를 본 삼성전자측은 매분기 약 7조원 가량을 들여 자사주 매입 후 소각하거나 주주에게 배당하는 등 주주를 위해 사용하였다. 이후 삼성전자 주가 상승의 대부분은 자사주 매각의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엘리엇펀드가 이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은 다른 펀드들과 담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사실상 기관투자자 지분)이 50% 가까이 되는 기업이라면 어떤 경영진도 외국인 주주들의 담합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자본주의 운영의 질서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이 되었든 문재인 정권이 되었든,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산업 정책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장하성이나 김상조 류의 ‘재벌개혁’ 탈레반들은 아직도 감사위원 선출분리니 집중투표 의무화니 하는 등 시대에 걸맞지 않은 경영권 흔들기 주장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주주가치 극대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재용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하여 박근혜에게 어떤 청탁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차피 주주자본주의적 환경 내에서 적응해야만 자신의 경영권이 보장받는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외국인 기관투자자들과 협의를 했어야지, 쓸데없이 정권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재벌을 혼내주려다 회의에 늦었다’는 현 정권에게도 해결책을 얻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효율성

러시아혁명으로 등장한 현실 사회주의는 급격한 체제전환을 통해 성립되었다. ‘급격’이란 말하자면 기존의 지배구조를 폭력혁명을 통해 타파하고 사회주의 세력을 단숨에 지배세력으로 만들었다는 뜻인데, 이 과정에서 처음 겨냥한 이른바 연대정신이 충만한 아름다운 ‘사회주의적’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는 방향을 잃은 채 사라지고, 또 하나의 거대한 관료주의 지배체제만 남게 되었다.

 

시장을 부정하고 계획으로 경제운영을 대신한다는 것은 애초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러자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지배층인 공산당은 국가경제의 실패를 인민들의 의식을 조작하여 불만을 잠재우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어마어마한 이데올로기 조직들이 필요하였다. 이들 거대한 비생산적 관리 조직들은 나라 전체 경제에 주름살을 주는 비효율성으로 나타난다. 즉 그들은 허위의식을 통해 전체주의적 지배체제를 더 강화하여 경제의 비효율성에 신음하는 인민들의 불만족을 돌파하려는 허망한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역사를 살펴볼 때 어떤 체제이든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인민들의 먹고사는 중요조건인 경제의 효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어떤 시대이건 가치생산을 하지 않는 지배계층이 생산계층보다 더 많아지면 그 체제는 효율성이 떨어져 존속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급격한 체제 전환의 모순점을 해소하면서 점진적으로 사회주의화하는 대안은 없을까? 유럽 인민들은 몇 가지 대안을 실험해 봤다고 본다.

 

유고 등 동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시행한 ‘시장 사회주의’ 모델과 서유럽에서 지금도 부분적으로 실행중인 협동조합주의 모델이 대안으로 거론되었다. 그리고 지금 논의할 스웨덴에서 시행된 기금사회주의 모델이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경제체제는 효율성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고, 이들 모델 중 협동조합 모델만 부분적인 효율성을 인정받아 현재 이탈리아나 캐나다 일부 지방에서 보완적 경제 제도로서 존립하고 있지만, 나머지 모델들은 소멸하였다.

 

◈ 기금 사회주의

일찍이 전무후무한 계급타협제도인 연대임금제도를 정착시킨 스웨덴에서는 연대임금제도 하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의 초과이윤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던 중, 한 발 더 나아가 점진적인 체제 전환의 구상을 내놓게 되었다. 1971년 스웨덴 노총(LO) 총회에서 기업의 이윤 중 일부를 출연하여 집단적 자본을 조성하는 방식의 임노동자 기금안이 최초로 제안되었고, 몇 년간 논의 끝에 1975년 8월에 어느 정도 완결성을 가진 기금안을 도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년 대기업들의 이윤으로부터 기여금을 받아 임노동자기금을 조성한다. 이윤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기여금을 많이 납부하게 하여, 연대임금정책이 낳는 초과이윤 문제를 해소한다. 기업들로부터의 기여금은 현금이 아니라 신규발행주식의 형태로 징수한다. 이 주식들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해당기업 내에 임노동자기금의 소유지분으로서 동결된다. 임노동자 개인들에 의한 지분 소유와 이들에 대한 배당지급은 허용되지 않고, 기금은 임노동자 집단에 의해 집단적으로 소유 관리된다. 또 기금은 개별기업 수준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상위 수준에서 조직된다…(중략)…그리하여 머지않아 기금은 해당기업의 주요주주로 등장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임노동자 집단이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신정완, <복지 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혁명을 통하지 않고 점진적인 체제전환을 이루겠다는 이 놀라운 구상은 스웨덴 사회 안팎에 큰 논란거리를 던졌다. 재계와 부르주아 정당들은 시장경제 원리를 침해한다고 보아 반대하였다. 전체적으로 기금안은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가뜩이나 70년대 중반 이후 유럽 복지국가들이 그러하듯 스웨덴도 경제가 침체하였다.

 

기금 논란과 원전폐쇄 논란이 문제가 되어 1976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패배하여 44년간의 집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기금안에 대한 노총의 요구를 받은 사민당은 노총과 공동연구그룹을 만들고 당의 입장을 정리하여 1978년에 보고서를 제안하였다. 사민당은 원래의 기금안을 대폭 수정하여 성장에 방점을 찍는 ‘투자자본 조달을 위해 집단적 저축형성을 촉진’한다는 목적을 추가하였다. 스웨덴 경제의 침체를 의식한 것이다. 이 안도 재계 등에서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기금 논쟁이 정치 이슈화하자 1979년 총선에서도 사민당은 또다시 패배한다. 기금안은 정치적 추동력을 잃은 것이다.

 

1982년 선거에서 가까스로 집권에 성공한 사민당은 기금 문제에 더 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이드너 등이 구상한 최초 기금안을 대폭 수정하여, 예를 들어 기여금을 주식형태가 아니라 현금으로 납입하게 하는 등으로 수정하여, 당사자 간 합의를 기다릴 것 없이 의회표결로 처리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기금은 1984년부터 7년간 불입된 후, 1991년 선거에서 집권한 부르주아 연립 정부가 기금 해체 법안을 통과시켜 최종 폐기되었다.

 

기금논쟁 전반을 추적하여 분석한 신정완은 기금안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 논쟁점을 압축하여 평가하였다. 첫째, 임노동자기금이 지배하는 기금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진정한 경쟁이 제한되기 쉽다. 둘째, 기금이 지배하는 기업의 경영기준을 이윤극대화나 수익극대화 이외의 다른 기준을 적용할 경우 결국에는 국가의 강제력이 뒷받침될 수밖에 없어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결국 경제의 효율적 작동은 실패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금사회주의 모델은 경제체제 모델이 갖추어야할 기본 요건인 체제구성 원리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했고, 특히 시장경제를 전제하면서 경쟁의 존속을 어렵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 약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기금사회주의 모델은 자본주의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안으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였다.

 

◈ 현대의 ‘阿Q’들

80-90년대 우리나라 운동권은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적 운동권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헤겔이 개념화한 ‘자기의식’이 부족하기에, 전대협 한총련 간부들은 대중을 상대로 한 폭로 전술과 뛰어난 감성팔이 능력을 바탕으로 20대 때 사실상 권력을 쥐어보는 경험을 하였다. 당시 운동권의 80~90%는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의 운동권인데,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기본적 세계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물의 운동과 변화를 인간의 의식이 포착하여 언어로 표현한 것이 개념이고 그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표현한 인간의 사고체계를 이념이라 한다면, 사물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데 인간의 의식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변화에 뒤쳐진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관념이 되고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로 권력투쟁을 벌이는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영국은 17세기에, 프랑스는 18세기에, 유럽은 19세기에, 나머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20세기 전반에 청산된 전제정 체제(tyranny)를 21세기에도 존속시켜려 한다면 헛된 노력이 될 것이다. 어떤 감성팔이를 해서 대중의 판단을 잠시 거꾸로 되돌린다고 해도, 이런 도로(徒勞)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심으로는 전제 정체를 옹호하면서 ‘민주화운동’의 탈을 쓴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일은 없다고 본다.

 

또 자본주의 내지 시장경제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형태는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초세계화와 초정보화 흐름이 두드러질 것이다. 초세계화는 시장경제를 전제하고 초정보화는 자유주의 사회를 전제한다. 이런 흐름을 타는 나라와 국민은 살아남고 거역하는 나라와 민족은 도태될 것이다.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할 것이다.

 

아나톨 칼레츠키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운영 틀이 바뀌고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 중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자본주의 4.0시대라고 주장한다. 적응성 혼합경제 시대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4.0은 적응성 혼합경제가 될 것이다. 첫째, 자본주의 4.0은 명백한 혼합경제가 될 것이다. 혼합경제에서는 정부와 비즈니스를 대립관계가 아니라 동반자관계로 볼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일반적 경쟁시장들과 ‘효율성’이 제한되도록 규제를 받는 소수의 통제시장들이 신중하게 혼합될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 4.0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제도적 구조, 규제, 경제원칙들을 기꺼이 변화시킬 수 있는 적응성 시스템이 될 것이다.”

-아나톨 칼레츠키, <자본주의 4.0>

 

▲ 민주화운동 세력이라는, 현대판 阿Q들을 어찌할 것인가?


효율성과 적응성이 없는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쉰은 현실세계의 변화가 어찌되든, 심지어 자기를 침탈하는 사람에게 육체적으로는 얻어터질지언정 언제나 자신은 정신적으로 승리하고 있다는 관념에 빠져드는 중국인의 묘한 모습을 형상화한 소설 <阿Q정전>을 쓴 적이 있다. 주인공 阿Q는 현실 세계에서 얻어터지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자신은 늘 정신승리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갈라파고스 운동권은 당시에도 주장의 현실 적확성이 없었는데, 가뜩이나 지난 30여 년 동안 진화가 멈췄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민주화운동’했답시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현실 사회주의는 망했고 신자유주의도 끝나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30여 년 전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강요한다. 초세계화 초정보화 시대에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경제를 성장시키는 전략은 없이, 오로지 정신승리만 하면 된다고 강변한다.

 

이들 ‘민주화운동권 세력’이 나라의 권력을 차지한 근거는, 이들의 주장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편인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들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이들의 감성팔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때문이다. 감성팔이는 늘 과잉일반화나 선택적 추상화, 흑백논리 등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s)를 전제한다.

 

현대판 阿Q들을 어찌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시민들은 더 이상 그들의 감성팔이에 공감을 표시하여 그들에게 착각을 심어줄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시시비비를 정확히 따져 아닌 건 아니라고 비판하여 시대착오 중인 그들을 국가운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그것이 시민들의 안전보장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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