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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5 07: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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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에서 의미하는 ‘정치’는 근대의 산물. ‘탈정치’란 결국 근대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모바일 중심 인터넷은 휘발성 너무나 강해.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짤방’과 ‘썰’, 3분 동영상 뿐
-밈은 탈맥락적. 모든 것 하찮고 쉽게 소비돼. 트럼프도 1초만에 ‘뒤로가기’ 눌러 지울 수 있어



탈정치와 정치의 교묘한 상관관계

흔히 2010년대를 탈정치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촛불을 비롯한 2010년대의 다양한 이벤트는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탈정치 이전에 우선 정치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한국에서 ‘정치’란 대통령제와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 이놈의 정치와 탈정치라는 것은 세대 이슈가 굉장히 크다. 태극기와 촛불의 대립은, 한국의 정치가 지역감정(전남의 고립에서 경북의 고립으로)과 세대감정(60대 이상과 60대 이하의 대립)이 맞물린 결과라는 것을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이기에, 이러한 현상이 어째서 일어났느냐 묻는다면 나는 탈정치에서 의미하는 ‘정치’라는 것은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다시 말해 ‘탈정치’란 근대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인 것이다.

 

대통령제 하의 의회 민주주의는 곧 근대의 산물, 정확히는 한국 근대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한국 후근대 1세대인 내가 겪은 한국의 정치는 나, 그리고 내 또래의 현실과 너무나도 괴리되어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여의도와 담론판은 일베의 노무현 밈보다, 오유의 이명박 밈보다, 네이버 뉴스의 댓글보다, 페이스북의 정치 관련 페이지보다 분명히 ‘느렸다.’

 

어쩌면 20대에게 한국의 ‘정치’는 ‘빨랐지만 지금은 느리고 촌스러워져버린’ 한국식 근대 욕망메타의 물화(物化)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20대의 정치적 물화는, 대략 1-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투표장 방문의 순간에서만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젊은 세대에게 정치란, 기성세대가 세금을 가지고 하는 엔터테인먼트를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공간에서 웃고 비꼬고 욕하고 화내며 ‘노는’ 것이다.

 

정치의 서사, 밈의 평면화
위에서 말했듯 현 20대 이하는 정치를 인터넷 커뮤니티의 밈 중심으로 소비한다. 기성세대가 페이퍼와 TV, 그리고 연설로 정치인들을 접한 것과 달리, 현 20대는 일베와 오유를 위시한 인터넷 커뮤니티, 페이스북, 유튜브로 정치인들을 접한다. 일례로,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노무현의 전설적인 연설들의 리플들은 전부 10대 혹은 20대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단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정치는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서사가 곧 캐릭터고, 캐릭터가 곧 정치였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쿠데타, 김재규의 난, 김대중의 사형선고, 전두환의 계엄령, 노무현의 안티테제, 이명박의 근대신화, 박근혜의 왕정복고, 문재인의 느와르까지. 거물급 정치인들에게는 각자의 서사들이 있고, 현실 정치는 곧 서사라고 할 만큼의 문법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서사를 거부하고 캐릭터를 깔아뭉갠다. 그리고 깔아뭉갠 캐릭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포스트 386세대가 중심이었던 초기의 인터넷이 서사 친화적이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모바일 중심 인터넷은 휘발성이 너무나 강하다. 현재 10대 20대는 장문의 글을 읽기 힘들어하며, ‘엣지’가 없는 동영상은 끝까지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짤방’과 ‘썰’, 그리고 3분을 넘지 않는 동영상 뿐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밈Meme이다. 원래는 리차드 도킨스가 주장한 개념이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밈이란 유머, 코드, 유행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놀이’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작은 밈은 소수의 그룹이 공유하는 정서일 뿐이지만, 강남스타일이나 PPAP(Pen Pineapple Apple Pen)같은 거대한 밈은 전 세계를 넘나든다. 페이퍼나 TV 혹은 실물이 아니라, 커봐야 27인치 모니터, 작으면 4인치짜리 핸드폰 액정을 통해서 말이다.

 

2010년대 한국 인터넷의 주류, 정치적 밈
한국 인터넷에서 2010년대를 대표하는 밈은, 단연코 노무현이다. 대통령 노무현 뿐만 아니라 인간 노무현을 기반으로 탄생한 밈의 수는 수천, 어쩌면 수만개일 지도 모르며, 그것을 보고 즐거워한 사람들은 수백만에 달한다. 노무현이 지나치게 ‘밈화’되자 그것에 대한 반대 진영의 패러디(박정희 코알라)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젊은 세대는 노무현이나 박정희의 일대기를 더이상 읽지 않는다. 그들은 노알라의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고, 노알라를 또 패러디한 박정희 코알라를 반대 진영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밈 전쟁’의 정점은 ‘모두까기’이다. 인터넷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은 노무현도 박정희도 박근혜도 문재인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을 ‘밈화’시켜서 평면적으로 만들고, 그들의 팬덤을 조롱하는 것이 그들의 취미이자 소소한 일과이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민중미술로 대변되던 강자에 대한 조롱과 비슷해 보이지만, 맥락상으로는 전혀 다르다. 민중미술은 고발이고 저항이었겠으나, 밈은 서사를 뭉개버리고 모두를 평면화시킨다. 해체같은 섬세한 작업도, 울분이나 억압에 대한 저항같은 감정적인 작업도 아니다. 밈은 그저 유머, 재미, 냉소 등의 정서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는 ‘극단적으로 가벼운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밈의 컨텍스트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현대의 예술이 맥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달리, 밈은 탈맥락적이다. 초창기의 맥락이 변질되어 새로운 맥락을 가지기도 하고, 다층적인 맥락을 형성하며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밈의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하찮고, 쉽게 소비된다. 밈-월드 내에서는 아무리 세계 대통령 트럼프라 하여도, 우스꽝스럽고 1초만에 ‘뒤로가기’를 눌러서 내 손에 들린 4인치의 세계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노무현과 문재인의 팝아트 초상 아래 ‘처녀상’ 옆에서 ‘지하철 쩍벌남’이 되어 밈 놀이를 즐기는 필자


강영민 작가의 ‘밈의 물화’
나는 강영민 작가의 작품들을 ‘밈의 물화’라고 생각했다. 캔버스에 그려진 노무현의 팝아트 초상화는 노무현 밈에 익숙한 내게 가벼운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유명한 ‘체게바라+박근혜’나 ‘엘리자베스 공주+박근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전체주의 밈의 물화와도 같은 <처녀상>의 경우에는 복잡미묘한 기호의 집합인 동시에, 작품의 재질처럼 건조하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미술감상이 적당한 취미에 불과한 나는 미술계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강영민 작가의 일관된 주장은 “미술계는 올드하다”였다. 그리고 내 눈에는 강영민 작가가 ’20대와 놀 수 있는 40대’로 보인다. 강영민 작가는 최근 몇년간 밈의 소굴인 일베의 익명의 구성원들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과 프로젝트를 했다.

 

일베에 직접 들어가보고, 일베의 구성원들을 현실에서 만나보고, 그들과 교류하는 40대 작가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그리고 이 독특한 캐릭터가 얻을 수 있는 시야에는, 4인치 안에 존재하는 각종 밈들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서사로 기억하고 있던 대상들이 1초만에 소비되거나 휘발되고, 탈맥락적이며, 웃음이 주 목적인 디지털 조각piece들로 변해서 유통되는 현실은 새로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밈 자체를 ‘올드한 미술계’로 그대로 갖고 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있는 그대로’ 물화된 정치적 밈은, 현실의 거부에 직면한다. 실제로 홍대 앞 일베 조형물은 반달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물화’라는 부분에서 장르와 작가의 손길이 들어가는 것이고, 나는 강영민 작가가 그것을 명랑하게 잘 했다고 생각한다.

 

강영민 작가는 20대 친구들이 하는 ‘밈 놀이’를 인지하고,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참가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다만 인터넷의 밈과는 달리, 자신이 속한 세계인 미술계에 기반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놀이 방식인 팝아트를 통해 ‘물화’시켰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들을 재밌게 보았으며, 이 ‘명랑한 밈의 물화’는 밈이라는 장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올드한 미술계’에 탈정치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냥 보고, 웃고, 따라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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