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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2-16 12:24:53
  • 수정 2019-12-17 11: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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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사진=Why Times]


12월 17일부터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비후보 등록에 들어간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이 높지를 못해 국개의원이라는 비아냥도 듣고 어떤 경우는 잡상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정치 이야기 꺼내기를 꺼려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형제지간에도 정치가 있고, 교회 장로회에도 정치가 있고, 동창회에도 정치가 있듯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정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정치는 국가나 사회발전의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경제계가 하겠는가 아니면 문화예술계, 체육계, 사회계가 각자 하겠는가? 전체를 변화시키는 추동력은 결국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찬성을 했든 반대를 했든 우리 국민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다. 뒤를 이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그래도 좀 더 나은 정부가 되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임기 하반기로 접어드는 지금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정치가 국가발전의 비전과 방향키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미래는 팽개치고 과거로 돌아가는 국정운영을 해 왔다.


가까이는 박근혜, 이명박 정부의 과거를 샅샅이 캐고 두 대통령부터 감옥소에 줄줄이 보냈고, 멀리는 무덤 속에 들어간 친일논쟁을 털어내 이승만, 박정희 지우기에 골몰했다. 공존공영해야 할 한일관계를 얼어붙게 한 것은 부수입이라 할까.


복지정책은 나라 살림을 잘 살아 복지수급대상자 졸업하는 숫자를 늘리는 것이 정책목표가 되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가난을 확대 생산하여 수급대상자 입학 숫자를 늘리고 있다.


얼마 전 동네 통장들 송년회에 가서 인사를 하며 ‘내년부터 이통장수당 30만으로 올라 좋으시지요’ 했더니 ‘네’ 하면서도, ‘그런데 이렇게 막 퍼줘도 되나요’라고 반문하는 것을 들었다.


소득주도성장이 한 마디로 불로소득 주도성장인 것이다.


빈곤 생산을 통한 국민의 국가 예속화가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서민 사정은 이러 함에도 여야 정치권은 여당 2중대, 3중대의 의석수 늘리는 문제와 수사권력나누기를 둘러싼 정당간 이견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팍팍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제시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 된지 오래다.


국민들은 정치의 변화를 바라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고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정치의 변화는 결국 정당이 책임지는 모습으로 이루어야 한다.
그 책임지는 모습이 정당의 공천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국민여론경선은 말만 그럴듯하지 실상은 아주 무책임한 공천방식이다.


지지자 숫자만 많으면 장땡이라는 것인데 돈과 이익, 그리고 조직력으로 엮어내는 지지자 숫자로 공천한다는 것은 결국 현역 국회의원이 천년만년 해먹겠다는 탐욕의 표현일 뿐이다.


현역 국회의원과 정치신인 간에 여론경선 붙이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책임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역 국회의원을 컷오프 시켰을 때 여타 후보자들끼리 여론경선을 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정당이 내년 총선 공천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공천을 통해 3김식 정치를 종식했으면 좋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28년 동안 전쟁을 하였는데, 학살, 복수, 배신 등 온갖 양상의 전쟁을 하는 분석한 아테네의 투키디데스라는 장군은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를 죽음에 대한 공포심, 이익, 그리고 명예 3가지로 정리하였다.


수 천 년이 흘렀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생로병사를 거치며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똑같이 가지며 수많은 인걸이 명멸한 역사를 관통해 보았을 때 실로 탁견이라 하겠다.


명예라는 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크나큰 동기임에도 막상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명예의 반대는 불명예다. 부끄러움이다.


그러나 욕이 배따고 들어오나 하면서, 사법처리만 되지 않으면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이라 하더라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정치는 부도덕과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명예의 전당을 만들고 여기에 들어가는 훌륭한 정치인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원로의 부재 상태를 언제까지 갖고 갈 것인가.


급속한 개발시대를 지나오면서 선출직이라는 것이 졸부들의 명예를 사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돈과 명예, 그러니 돈이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고 눈앞의 이익에 명예는 내팽개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위공직자로서의 명예보다 눈앞의 이익에 일생을 망친 유재수의 감찰농단 사건을 보면 안타깝다. 아까운 인재가 그릇된 시류에 휩쓸려 탐관오리가 되어 버렸고, 업자에게 사줘, 꿔줘, 돈줘 하며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불명예를 남기게 된 것이다.


정의의 아이콘인양 하였으나 실상은 정의롭지 못한 조국,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였으나 청와대 대변인으로 근무하며 부동산투기를 한 김의겸,

목포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손혜원,
논문표절, 위장전입, 탈세, 병역면탈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회전의자에 앉은 장관들,
이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양당 공천기준이 여전히 벌금, 기소, 유죄판결 등 사법기준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법의 칼날만 피하면 떳떳하다는 그런 자세가 부끄러움임을 가르쳐야 한다.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한 사람은 정치지도자에서 배제되는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장차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준에 맞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청년지도자는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지도자의 도덕적 윤리적 책무가 공천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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