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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1 09: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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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영세출판사가 악법의 강력한 옹호자 역할
-출판은 문화산업이어서 정부가 지원과 규제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함정
-양질의 콘텐츠 살리고, 시류에 편승한 출판 막으려면 시장 기능 회복이 급선무


도서정가제 당근 폐기해야 할 대표적 규제 악법이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들이 이 법의 옹호 수호자란 게 함정이다.

 

메이저 출판사들이야 양질의 콘텐츠나 저자, 작가群을 (거의 독점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정가에 팔든 할인해서 팔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가제를 통해서 가장 높은 마진을 누리게 된다. 그들이 정가제를 만든 배경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이익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문제는 중소 규모 출판사와 영세 1인 출판사들이다. 이들은 출판 환경을 악화시킨 주범 중 하나로 도서 할인 판매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도서정가제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보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소규모 출판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이 어느덧 3년여가 가까워 오는 상황에서 출판 환경은 갈수록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고, 출판산업 자체가 산업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위축돼 있다. 이는 명백하게 도서정가제 시행에 따른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중소 및 1인 영세 출판사 사장들은 그 해결책을 더욱 온전한 도서정가제의 구현에서 찾고 있다.

 


출판은 문화산업인 관계로 당연히 정부가 지원과 보조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영세 출판인들 사이에서 뿌리깊다. 전형적인 반 시장적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도서정가제를 비롯해 거대 자본의 출판시장 진입을 차단할 수 있는 규제를 정부가 마련해줄 것을 요구한다. 정치권력은 적당히 다독이며 감싸준다.

 

문화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산업화 초기에나 가능한 유아적 발상일 뿐이다. 오늘날 모든 업종과 직종이 문화와 연계되어 있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전체 파이를 키우고 그럼으로써 자기 업계의 몫을 배당받는다.

 

이런 산업 현실을 무시하고 산업 사회의 경쟁 구도에서 스스로를 배제시키려는 출판업계의 떼쓰기는 결국 출판산업 자체의 자생력을 죽이고 메이저 출판사들의 시장 장악력을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영향력이 커질 때 가장 유리해지는 것은 거대 메이저 출판사들이다. 정부의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 유력 정치인과 이른바 쇼부를 칠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영세 출판사들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규제와 장벽이 최대한 제거된 자유로운 시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세 출판인들이 정부 개입과 규제라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미봉책에 매달리면 결국 좌파 권력의 한 부분에 스스로를 종속시켜 서서히 피를 빨리며 몰락할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좌파 문화권력과 메이저 출판사들의 노예로서의 삶이 허용될 뿐이다.

 

메이저 출판사와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도서정가제의 배후라면, 중소 출판사와 1인 출판사 사장들은 도서정가제의 전위 사수대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나 같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모기 앵앵거리는 정도로도 취급 안 되는 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정가제 수호자들은 도서 할인 판매시 양질의 출판 콘텐츠가 죽고, 시류에 편승한 날림 출판이 시장을 왜곡할 거라고 강변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양질의 콘텐츠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한 것인가? 그 기준은 누가 정한단 말인가? 자기가 내는 책들은 양질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할인 판매를 허용할 수 없다는 소아병적 궤변으로 도서정가제를 옹호, 사수하는 부류들이 출판계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 대한민국 출판산업은 머잖아 파국을 맞고 말 것이다. 좌파 운동권 정치 세력과 한통속으로 묶여서.

 

지금 대한민국 출판계는 부국강병 국리민복의 가치는 온 데 간 데 없고 탈경쟁, 탈원전, 탈산업화, 탈도시화를 선동하는 공상적 힐링 웰빙 서적들이 대형 서점의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로 미화된 채 대중사회를 미혹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정확히 알자.

 

완전히 황폐화되어 점점 쫄아드는 저수지를 연상시키는 현상이다. 출판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지적 생태계가 완전히 파국에 이르렀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현상이다. 출판계가 이것을 시정할 힘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지적 생태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가장 정확하게 하는 것이 또한 출판계이기도 하다.

 

출판계는 지금 비명을 지른다. 도서정가제를 하루빨리 폐지해달라고. 말라붙어서 사막의 한구석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오아시스를 살려야 한다고. 그러려면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막는 규제와 정부 개입의 거대한 둑을 무너뜨려 달라고.

 

문제는 그 비명이 소리없는 비명이라는 점이다.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판계의 현실보다 출판인들의 인식이 먼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미약한 목소리로나마 이렇게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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