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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01 07:08:44
  • 수정 2019-07-01 16: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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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간의 깜짝 만남을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라이브로 중계했다. 사진은 CNN의 생중계 화면 [CNN]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文在寅) 한국 대통령을 조연(助演)으로 삼고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金正恩)을 상대역으로 하여 6월30일 오후 1시간반에 걸쳐서 연출한 판문점 쇼는 빅터 차(Victor Cha)의 말 그대로 한 마당의 ‘리얼리티 TV 쇼’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리얼리티 쇼’를 연출한 명분으로 북핵 문제의 해결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그가 노린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내년 11월로 박두한 다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난 며칠 사이에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펼쳐진 흥행물인 ‘민주당 잠룡(潛龍)’들의 TV 토론으로부터 TV 화면을 빼앗아 오기 위한 고도의 정치 쇼였다.


금년 들어 트럼프의 행보(行步)는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내년의 대통령선거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의 G20 정상회담 참가 도중인 29일 오전 트위터를 통하여 김정은과의 판문점 접촉 낚시 밥을 던졌을 때만 해도 그 성사(成事) 가능성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뜻밖에도 평양에서 흥미를 표명하는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자 트럼프의 흥정꾼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서울에 도착하여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본에서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판문점에서 접촉한 미-북 실무 대표들 사이에 30일 오후의 판문점 깜짝 쇼 일정이 마련되는데 이른 것이다.


이번 판문점에서 ‘상봉(相逢)’에 임하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핵 문제에 관한 입장은 여전히 극과 극의 대치였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 핵 프로그램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한 검증이 가능한 해체)”를 요구하는 반면 북한은 역시 여전히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우선 해제”를 요구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생각은 지금 당장 이 극단적인 입장의 대립을 다루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깜짝 리얼리티 TV 쇼’ 카드를 꺼내 든 목적은 딴 곳에 있었다.


트럼프는 지난 2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의 미-북 제2차 정상회담 때부터 북핵 문제를 이용한 대선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북 쌍방이 극한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 문제는 당분간 덮어 두고 ① 북한이 더 이상의 지하 핵실험을 하지 않고 ② 더 이상의 대륙간 탄도탄 시험 발사를 하지 않는 상황을 조성하여 내년 11월의 대선까지 끌고 감으로써 “북한의 핵을 사실상 동결”했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내가 막았다”는 주장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2월의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으로부터 ① 더 이상의 핵실험 중지와 ② 더 이상의 ICBM 발사 중지를 기성사실화하는 데 대한 묵시적 동의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김정은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제적 대북 경제제재의 전면적 해제” 요구를 내놓자 “북한 핵의 전면적 신고와 해체를 위한 미국으로의 전면적 이관”을 요구하는 문서를 김정은에게 던진 채 일방적으로 회의장을 떠남으로써 한 때 “회담 결렬”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닭 쫓던 개”의 처지가 된 김정은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노이 회담 후 김정은의 북한은 날이 갈수록 강경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단거리’로 제한된 ‘탄도탄’ 발사를 재개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면화시켰고, 이 같은 도발적 행동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격화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김정은에 대한 진화(鎭火)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이 29일 트럼프의 트위트를 통한 대북 낚시 밥 투척(投擲)의 배경이 되었다. 이 낚시 밥을 김정은이 덜컥 물었고, 그 결과로 30일의 판문점 ‘리얼리티 TV 쇼’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을 정도의 대박이 되어 터졌다. 트럼프가 당초 예상했던 ‘2분’ 또는 ‘5분’의 ‘상봉’이 무려 1시간을 넘기는 ‘회담’ 성격의 대좌(對坐)로 커진 것이다.


김정은이 이날 트럼프와의 판문점 대좌를 그토록 짧은 시간에 받아들인 것은 김정은의 처지가 얼마나 절박했는가를 웅변해 준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하노이에서 트럼프에게 ① 핵실험의 중지와 ② 탄도탄 시험발사 중지 언질을 준 것은 일대 실책이었다. 그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트럼프로부텨 전혀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워싱턴에서는 그의 ‘강경 발언’에 대해 이미 ‘면역(免疫)’ 효과가 생기고 있었다. 찔끔찔끔 재개하는 유도탄 시험 발사는 정도가 지나치면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유발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이 전개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그 나름의 정상외교에도 불구하고, 장기화되고 있는 국제적 경제제재로 인하여 급속하게 진행되는 경제난국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김정은은 트럼프의 판문점 접촉의 낚시 밥을 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좌가 끝난 뒤 자유의 집을 나와서 통일각으로 돌아가는 김정은의 표정이 1시간 전 자유의 집으로 올 때와는 대조적으로 무척 밝아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트럼프가 그에게 준 떡밥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는 우선 “김정은과 나 사이에 그 동안 조성된 특별한 우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김정은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북핵 문제에 관한 미-북 대화에 군불을 때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2∼3개월 안에 실무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김정은이 무언가 그의 체면을 세우거나 아니면 실리를 챙기는 차원에서의 일부 소득을 챙긴 것이 아니냐는 추리가 가능해 진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언제든지 워싱턴을 방문하라”고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입장은 ‘만만디(慢慢的)’였다. 그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문제는 좋은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30일 오후 전개된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판문점 접촉의 이 같은 양상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중요한 상황의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금 ‘북핵 문제’의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의 핵 개발 문제에 관해서는 “개발 단계의 핵 문제”와 “개발되어 무기화된 핵 문제”간에는 중요한 성격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제 ‘북핵 문제’를 종래처럼 “개발 단계의 핵 문제”로 다루지 않고 “개발되어 무기화된 핵 문제”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핵무기는 1945년7월 미국에서 최초로 개발되어 그해 8월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서 각기 사용됨으로써 그 파괴력이 세상을 놀라게 한 뒤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끝에 지금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 공인 보유국에 더하여 인도, 파키스탄 및 이스라엘 등 3개 비공인 보유국이 생겨났다. 이들 사이의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한 때 전 세계에서 생산된 각종 핵탄두의 수량은 총 128,000여개로 집계되었었다.


이렇게 되자 핵 보유국들 사이에서 “상호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대한 공포심리가 조성되어 국제적으로 NSA(소극적 핵무기 사용 억지∙”최초 사용 금지“)와 PSA(적극적 핵무기 사용 억지∙”핵무기 최소 사용국에 대한 여타 핵무기 보유국가에 의한 보복 핵공격 실시“) 등의 사용 억지 장치가 마련되고 이어서 미-소 양국간의 ‘핵무기 제한 협정’(SALT I/II) 및 ‘핵무기 감축 협정’(START I/II/III) 체결을 통한 핵무기 감축 노력이 전개된 끝에 지금은 국가별 핵무기 보유량이 미국 (6,450개), 러시아 (6,490개), 영국 (215개), 프랑스(300개), 중국 (280개), 인도 (130개), 파키스탄 (140개), 이스라엘 (80개) 등 도합 14,000여개로 감소되어 있는 것으로 공인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기에 북한이 개발에 성공하여 60발 내외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를 발효시켜 ‘핵보유국’들에 대해서는 ① “핵무기 감축”을 의무화하면서 ② “핵 비보유국들에 대한 핵무기 제조 기술 및 물질의 전파를 금지”하는 한편 ‘핵 비보유국’에 대해서는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고 이를 위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와 ’원자력안전조치협정(NSA∙Nuclear Safeguards Agreements)을 체결하고 이에 의거한 감시를 받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 국가에 의한 핵무기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 국제사회는 미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그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노력을 적극 전개해 왔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남아프리카연방과 리비아가 핵무기 개발을 중도 폐기했다. 그러나, 1980년대초부터 핵무기 개발을 집요하게 추진해 온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저지 노력을 아랑곳함이 없이 이제는 스스로 “핵무기 개발 완료”를 선언했고 국제사회도 사실상 이 사실을 수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개발을 완료하여 실전 배치를 한” 특정 국가의 핵무기는 그 성격이 “개발 단계의 핵무기”와는 크게 달라지게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착안(着眼)해야 할 중요한 하나의 사실은 한 때 세계적으로 13만개에 가까운 각종 핵탄두가 개발, 생산되었지만 이들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된 것은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한 시기였던 1945년8월6일과 9일 두 차례 뿐이었고 그로부터 72년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도록 그 이상 단 한 개의 핵탄두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했던 시기에는 이 무기가 실제로 사용되는 것이 가능했지만 미국 외로 핵무기 보유국가가 복수 국가로 늘어난 뒤에는 문제의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단 한 개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핵무기는 “가지고 있어도 쓰지 못하는 저주받은 무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만약 북한의 주장대로 개발이 완료되어서 실전 배치가 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핵무기는 곧 이같이 “가지고 있어도 쓰지 못하는 저주받은 무기”의 처지가 되어 버리게 되었다.


이번 판문점 접촉의 경과는 트럼프의 미국이 이제는 북한의 핵무기를 “이미 개발되어 실전 배치된” 상태인 것으로 수용하고 이에 대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은 지금의 대북 국제 제재를 완화함이 없이 서두름이 없이 계속 유지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북한의 대응을 지켜볼 작정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스스로 무너져서 핵무기를 포기하는 내용으로 항복해 오면 최선이지만 북한이 끝내 항복을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제재 속에서 북한 체제 내의 내구력(耐久力)이 소진(消盡)되어 내파(內破)에 의한 체제 붕괴를 감수하는 것을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으로서는 싫지 않은 귀결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유탄(流彈)의 피해자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상대하는 쪽으로 선회(旋回)한 이상 미-북 간에 문 대통령이 할 역할은 소멸되었다. 여북하면 북한이 문 대통령의 미-북간 중재자 역할을 전면 부정하면서 “당신네 집안일이나 챙기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나서겠는가?


차제에 문 대통령은 되지도 않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의문의 여지가 없는 국제 제재 대상 사업을 가지고 헛발질을 할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남겨두고 그의 본업인 대한민국 대통령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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