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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4 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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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영미 공군의 폭격으로 로텐부르크의 성벽 재건에 기부한 사람이나 기업, 집단의 이름 새겨 감사 표시
-영국은 물론이고 독일 일본도 전후 재건과 고도성장 과정의 마셜플랜과 국방 기여에 감사하는 친미 국가 변신
-해방과 한국전쟁, 원조, 경제개발 등에서 미국의 도움 크게 입은 한국은 왜 이리 자기 잘난 탓이라고 착각하나

로텐부르크 성벽에는 일본인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그게 그러니까, 하이델베르크의 학생감옥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너무 열심히 흔적을 남기시니 ‘낙서하지 마시란’ 말씀을 굳이 한국어로만 경고로 적어놓고, CCTV를 설치하게까지 한 그런 개인별 낙서가 아니라,

 

2차대전 말 영미 공군의 독일 전역에 걸친 폭격의 일환으로 40%가 파괴됐던 로텐부르크의 성벽 재건에 기부를 한 사람이나 기업, 집단의 이름을 성벽에 한명 한명씩 석판으로 새겨 감사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초 독일이 프랑스를 조기에 항복시키고 유럽 전역을 석권하던 시절,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런던 대공습을 위시한 영국 본토 항공전의 악몽을 겪은 대영제국 왕립 공군은,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던 대전 말 독일 전역의 도시들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드레스덴 같은 경우는 도시 전체를 돌무더기로 돌려버렸을 정도이니, 히틀러도 1시간에 10만명을 죽이진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

 

여튼 덕분에 독일 전역의 대성당들엔 다른 유럽의 성당들에서 흔히 볼법한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없는 투명 유리창이 대세다. 폭격을 맞았을때 다들 작살이 났는데 유리 부분까지 복원하긴 어려웠을 터이니. 이쯤 되면 빠리가 폭격에 불타는 것을 두려워해 바로 항복해 4년을 나찌 치하에 지내게 됐던 프랑스가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마음가짐을 실제로 보여준 셈인가 싶기도.

 

여튼 독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대영제국 왕립공군의 위엄 넘치고 무자비한 폭격(프랑크푸르트의 대성당에서 영국 공군의 폭격 후 시가지가 석기시대 돌무더기로 변한 자료사진을 볼 수 있다)과 달리 운좋게도 로텐부르크 쪽은 나찌에게 직격을 맞지 않았던 미군이 공격을 했던지라, 미군 지휘관 또한 굳이 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중세적 도시를 부숴야 하나 싶기에 “너희가 싸우겠다면 폭격하겠는데, 얌전히 후퇴한다면 도시는 살려줄게”라는 제안을 했고, 히틀러의 절대 후퇴 불가론에도 불구 나름 깨어있던 지휘관도 얌전한 후퇴를 선택해 자비로운 미군과 현명한 독일 수비군이라는 콤비 덕에 다른 독일 도시들이 완파되는 동안 여긴 40% 정도의 파괴로 그쳤고, 이후 재건이 비교적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튼 그리고 2차대전 종전 후, 중세적 낭만 가득한 이 도시 성벽의 재건에 독일 내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기부를 많이 했다는데, 주로 보이는 것은 일본인과 미국인의 이름들이다.

 

▲ 2차대전 때 파괴된 로텐부르크의 성벽 재건에 기부한 이름에 일본인이 많다.


생각해보면, 독일 입장에서 일본은 2차대전 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동맹국이었다. 독일이 사실상 혼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른 셈. 1차대전 때도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오스만투르크는 있으나마나 한 동맹국이어서 혼자서 동쪽의 러시아와 서쪽의 영국,프랑스 그리고 미국까지 상대로 싸워야 했던 독일은, 2차대전 때도 비슷한 처지가 됐다.

 

추축국으로 이탈리아, 일본이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졸전을 거듭하며 오히려 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독일 전차군단의 발목을 잡아 전력을 축냈고, 일본은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 육군에 깨진 후 공소증(?)이 발동되어 독소전 때 소련을 뒤에서 견제해줄 것이란 독일의 기대를 상큼하게 씹으며 소련군을 상대로 싸우길 겁내고 만만한 중국만 때리고 있었다.

 

오히려 일본은 소련보다 몇배는 강한 미국의 진주만에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미군을 전쟁에 끌어들였고, 일본 덕에 독일은 미국까지를 상대하게 됐다. 그나마 일본이 미군 전력이나 분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면 모르겠는데, 이 일본은 대미전선에서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민폐 동맹국이었다. 미국은 열 손가락 중 아홉 손가락을 유럽전선에 투입해 독일의 목을 죄었고, 일본 따위는 그냥 한 손가락으로 상대하면서도 미군 1명 죽을 때 일본군 10명 죽는 전과를 보이며 일본을 압도했다.

 

애초에 미군, 독일군, 영국군보다 한참 떨어지는 소련 육군에게조차 노몬한에서 졸전 끝에 대패한 열강 최약체 일본군(장동건 주연의 영화 My Way에서 일본군이 노몬한에서 소련군에 졸전하며 박살나는 그 장면이 나온다)에게 미군을 대적할 능력이 있었을 리가. 일본은 독소전에서 소련을 겁내어 후방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다가 막판엔 진격하는 소련군에게 만주, 한반도 북부까지 다 내주고 도망가기 바빴고,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고 그 전력의 90%를 독일이 막게 하고 자신은 10%만으로 상대하는 미국에게조차 졸전끝에 패배한, 어찌보면 독일 패전의 꽤 많은 지분을 담당한 셈이다.

 

어쨌든, 그 일본인들의 이름이 성벽에 꽤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남에게 신세진 것을 잊지 않고, 민폐 끼치기를 꺼려하는 일본인들의 나름 책임감 같은 것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2차대전 때 일본이 독일에게 동맹국으로서 별 역할은 못하고 폐만 끼친 것을 생각하면(물론 그것보다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 복원에 나름 기여하고 싶은 순수한 일본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별 관계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국제관계의 기초도 신세를 진 것을 잊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미국에게 그렇게 처절하게 박살난 독일과 일본도, 전후 재건과 고도성장 과정에서 미국의 마셜플랜과 국방 기여에 감사하는 친미 국가로 기능하고 있고, 미국 덕에 양차 대전 모두를 이긴 영국은 아예 모든 사안에서 미국과 100%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1945년 미국 덕에 해방됐고, 1950년 미국 덕에 망국의 위기를 넘겼으며, 1960년대 미국의 대외원조 액수 1위를 마크했고, 오늘날까지 경제성장 과정에서 미국의 투자를 받고 수출상품의 소비국으로서 은혜를 입었으며, 미군 덕에 국방력을 해결하며 고도성장할 수 있었던 한국인들은, 미국에게 기여한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신세진 은혜는 쉽게 잊고, 이게 다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동맹국이면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없다면, 철저하게 모든 면에서 미국과 같은 입장에 서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서 신세를 갚고 동맹국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지켜줘야 한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이 나라는 생전 신세진 적 없고 폐만 끼치던 중국과 북조선의 줄에 서려고 하는 모양이 참 보기 안쓰럽다.

 

호란 당시의 재조지은이니 명청교체기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한마디 하자면, 국력의 레벨 자체가 다르다. 지금 미국의 국력은 명+청을 합한 것이고 이에 비교하면 중국은 당시 그 옆구석에 박혀있던 외몽골 북원 잔당 수준에 불과하다. 명분이든, 실리든, 한국은 미국과 100% 같이 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실 오늘날 글로벌 비호감 한국과 달리, 일본인들이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인들, 특히 서양인들에게 널리 호감을 사고, 한때 통치했던 대만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도 2차대전 종전 후 자신들의 본분과 해야 할 기여를 알아온, 염치를 가진 정신 덕 아니겠나.

 

성벽의 일본인 이름들을 보고, 들었던 단상.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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