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6-19 09:41:47
  • 수정 2019-06-19 10:01:45
기사수정


▲ 천재 작곡가 김순남과 이흥렬 [Why Times DB]


김세원 전 불란서 동아일보 특파원의 강의를 듣던 밤, 동아방송에서 음악 프로를 진행하던 성우 김세원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두 분은 스무살 나이차이가 난다.
이름이 매우 지적이다.


두 분다 여성적 포근함이 있어 좀 잘나면 싸나워지기 십상인 요즘 젊은 여성들하곤 결이 다르다.
여성적인 이름을 이렇게 지을 정도면 아버지의 딸 욕심이 엄청난 거다.


나도 내 딸 이름을 솔로 지어 내가 세상을 향해 못 다 이룬 꿈을 딸이 조금 이루어주기를 바랬다.
기후온난화 문제 등 이런저런 고민으로 뒤척이다가, 성우 김세원의 아버지 김순남 작곡가에 대한 생각으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가끔 음악의 천재들을 만난다.
내가 음악으로 만난 천재는 김순남 이흥렬 김정식 김광석 조성진 방탄소년단 정도다.


다른 분들은 다 아실거고 나의 친구 김정식 로제는 좀 소개를 해야겠다.
60년대 후반 중학시절, 사운드어브 뮤직 영화를 단체관람하고 온 다음 날, 김정식은 난생 처음 보고 만진 피아노로 영화속의 음악을 재연한 친구이다.


도레미 송을 영화보다 더 멋있게 피아노로 치고 불렀다.
오선지만 있으면 밤새 작곡을 하며 논다.


그가 은상을 받은 77년 MBC대학가요제 출전곡 약속을 듣노라면 약속이 저렇게도 아련하고 아프게 멀어질 수 있을까 가슴이 멍멍해져 온다.


그 때 출전한 심수봉은 그 때 그 사람으로 장려상도 못 받았다.


길옥윤도 김정식 김정식을 외쳤다.
이 천재분들은 까닭모를 그리움과 외로움을 지니고 산다.


아이들처럼 순수하다가 잘 삐진다. 계산을 잘 못한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은 쎄다. 사람과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 왼쪽에 앉은 이가 김순남. 1951년 러시아 유학중 허진과 함께 [Why Times DB]


누가 더 꼭 모짜르트같은 천재인줄은 잘 모르겠으나, 장조에서 기가 막히게 단조로 변하는 기법을 쓰는 김세원의 아버지 김순남 선생은 불세출의 뛰어난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돌아가셨을까.
김세원 누나는 알 것 같다.


일본에서 서양 음악을 배워온 한국의 서양 음악 개척자들은 1935년 이후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관의 입김이 들어간 음악단체에 들어가 일본과 친한 척하거나, 음악활동을 그만 두는 수밖에 없었다.


경성악단이나 대화악단 등에서 한 음악단체활동도 꼭 친일을 하고 싶어 한게 아니다.


쉬느니 염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배워온 음악을 하고 싶었고 밥벌이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런 활동마저 잘하지 못하면서 일본을 미워하는 데도 앞장 섰던 김순남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가 훗날 미 군정 책임자 하지장군을 규탄하고 월북해버렸다.


▲ 이흥렬 선생 가족사진 [Why Times DB]


반면 이흥렬은 유순한 분이셨다.
거절은 못하는 교육자 선생님이셨다.


교편을 잡고 섬집아기 등 주옥같은 곡을 남겼으나 친일파로 몰려 부관참시를 당했다.
그가 헌신으로 작곡해 준 광주일고 교가마저 내동댕이쳐질 수모위기에 몰려있다.


이념놀이 제물이 되었다.


▲ 김순남 선생이 남긴 주옥같은 가곡 산유화 악보 [Why Times DB]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가곡은 김순남 선생의 산유화다.


가장 맑고 시린 곡은 이흥렬 선생의 섬집아기와 부용산을 지은 보성의 안성현 선생이 만든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이다.


음악을 하던 분들이 총칼을 메고 독립운동을 나선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여리고 순한 그들로서는 그런 일은 잘 맞지도 않다.


살기 위해서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라도 하기 위해서는 황국음악단체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도 죄가 된다면 실제는 살아남을 사람이 거의 없다.


이도 저도 보기 싫고, 정치하는 놈들도 꼴 보기 싫고 미국놈들마저도 속이 보일 때에는 월북해버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들은 북녘 땅은 예술가를 더 이해해주려 했고,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남한은 딴따라 당골래로 예술가를 취급한 반면, 북한 등 사회주의는 혼을 가진 사람들로 예술가를 처 주었다.


북으로 가 빨갱이로 몰린 김순남, 남에서 음악활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몰린 이흥렬,


누구보다 자존감 강한, 이 두 분이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거부당하고 훼손되지 않으면 안될만큼 나쁜 행위를 한 것일까.


우리들은 이 분들에게 그리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떳떳하고 당당하고, 그 분들은 역사속의 속죄양이 되어야 할 만큼 부끄럽고 나쁜 짓을 하였단 말인가?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410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치더보기
북한더보기
국제/외교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