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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19 00: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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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文在寅)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에 열을 내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5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남북협력기금 가운데서 800만 달러(95억원) 상당의 양곡을 '세계식량기구(WFO)'에 기탁하여 북한에 제공하기로 의결하고 이의 이행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의 대북 식량 지원이 북한의 식량난에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 해소를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북한의 식량 증산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식량 원조는 북한에서의 식량 증산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하여 2008년5월9일 <조갑제닷컴>에 게재했던 필자의 다음의 글을 관심 있는 분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李東馥


▲ 평양의 농촌 [사진=NK News]


북한을 탈출하여 월남한 농업전문가인 이민복 씨가 e-Mail을 통해 두 건의 문건을 필자에게 보내 왔다. 그 중 한 건은 제목이 「남녘에서 보내는 중앙당 제1호(김정일 국방위원장 앞) 편지(제의서)」로 되어 있었다. 내용이 매우 흥미를 끄는 것이었다. 이 「편지」의 서두에서 그는 그가 아직 북한에 거주하고 있던 10년 전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김일성 당시 조선로동당 총비서(중앙당 제1호) 앞으로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는 그런데 『이제 남쪽에서 다시 「제1호 편지」를 쓰게 되니 뭐라고 심경을 표현할지 모르겠다』면서 『아무튼 남과 북의 우리 조국이 잘 되기만을 기원하며 이 글을 쓴다』고 그의 착잡한 심회를 적었다.


「편지」의 주제는 북한의 식량사정과 농업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탈북 전 이민복 씨의 신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농업과학원 연구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10년 전 「과학자」의 입장에서 북한의 식량난의 근본 원인이 북한의 「집단농」(集團農) 방식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개인농」(個人農)을 하면 「집단농」보다 알곡이 3∼5배나 더 난다는 것을 시험과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전국적으로 「개인농」을 도입하면 못해도 2배 이상은 증수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후에 탈북 도중 중국에서 이것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현장의 농민들도 「개인농」을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습니다. 나는 「쌀은 곧 공산주의」라며 한평생 인민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걱정하는 어버이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게 되었다고 흐뭇해했습니다.


중앙당에서는 과학원에 위임을 하여 과학지도국장을 먼 현지에 있는 나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당신 말이 옳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치문제다. 당신은 연구사업만 하라」는 뜻밖의 말을 문제의 과학지도국장으로부터 듣고 저는 놀랐습니다. 식량난 해결의 결정적 방법을 정치문제라고 하여 외면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민생활 향상이 당정책의 최상의 과제라는 정치적 견지로 보아도 (나의 제안은) 모순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후 석 달 동안 고민 속에 「개인농」을 받아들일 수 없는 공화국의 정치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정말로 실망하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가 지난 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남행 길에 올랐습니다. 남에 온 이유는 단순합니다. 「개인농」을 하면 공화국의 식량난은 해결될 수 있다고 마음껏 소리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월남하자는 뜻 자체도 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화국을 떠나지 않고 중앙당의 말대로 연구사업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연구할 의미를 못 느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연구해 놓아도 (이것을 이용하여) 생산에서 효과를 낼 수 없는 「집단농」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당시 분석을 해보니 공화국의 농업생산 효과성은 30% 정도였는데 현재는 10% 이하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남쪽) 와보니 95% 이상입니다. 왜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날까요』


이 같은 이민복 씨의 「편지」 내용은 필자로 하여금 한 가지 사실을 회상하게 만든다. 1998년 봄 베이징에서 있었던 일이다. 필자는 중국공산당의 초청으로 김종필(金鍾泌) 당시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를 수행하여 베이징을 방문한 길에 중남해(中南海)에서 쟝제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있었다. 2시간여에 걸친 예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쟝 주석의 화제 가운데 압권은 성공한 중국 농업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이었다. 그는 『작년의 엄청난 양자강 홍수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양곡수확량은 5.9억 톤이었다』면서 『농업정책의 성공으로 중국에서는 먹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장담했다.


쟝 주석은 중국의 인구가 13억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만약 중국이 농업정책에 실패하여 식량난을 겪고 13억의 인구에게 기아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접국가에게 끼쳤을 부담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쟝 주석은 『그러한 뜻에서 중국이 농업정책에 성공을 거두어 식량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중국이 인접국가들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중국 농업정책의 이 같은 「대성공」의 「열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쟝 주석이 밝힌 「열쇠」는 마오쪄둥(毛澤東) 사후 1978년 권좌에 복귀한 덩샤오핑(鄧小平)이 채택한 「가족농」(家族農)이었다. 마오 시대의 농업은 「인민공사」로 상징되는 「집단농」이었고 그 결과는 비참했었다. 마오는 「대약진」(大躍進), 「하방」(下放), 「대채운동」(大寨運動) 등의 강제성을 띈 「집단농장」 캠페인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지만 하면 할수록 결과는 더 비참해졌었다. 원인은 하나, 「집단농」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집단농」은 농민들의 「소유본능」을 자극하는데 실패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증산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복권된 덩은 「가족농」제도를 도입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농토의 소유권은 여전히 국유였다. 그러나 농민 가족 단위로 일정한 면적의 농토를 15년간 무상 장기 임대하고 소출에 대해서는 극히 적은 부분(10% 미만)의 비용 징수를 제외하고는 그 처분권을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족농」 제도의 내용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농민들은 자기 재산의 증식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이에 따라 농업생산성은 제고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양곡수확은 늘어났다.


1998년 2월 쟝 주석은 그 전 해인 1997년 중국이 이 「가족농」제도를 한 단계 더 전진시켰다고 말했다. 즉, 「가족농」의 농지에 대한 「무상임대」 기간을 1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하고 아직도 「토지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경작권」의 「자유처분권」을 농민들에게 주었다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이제 그들이 경작하는 농지의 생산성을 제고시켜 거기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권리금」으로 챙기면서 이를 상품화할 수 있게 되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증산의욕이 더욱 고취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민복 씨의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는 바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북의 농업기술이 남에 비해 낙후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북과 남을 체험해 보니 공화국의 농업기술은 오히려 남쪽보다 월등한 면이 적지 않아 긍지를 가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적고 있다. 또한 농업생산의 3대 조건인 종자와 경지면적 그리고 기후 면에서도 북의 농업조건이 남에 비해 열악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종자문제와 관련하여 북의 주종 작물인 강냉이 종자는 남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으며』 경지 문제는 『북의 1인당 경지 면적이 남의 그 것에 비해 2배』이고 『북한 기후가 농업에 나쁘지 않다는 것은 중국 만주 지방의 농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민복 씨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경북대 김순권 박사의 행각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다. 이 씨의 말을 인용해 본다.


『일부 남쪽 과학자가 「북한 옥수수 심기 운동」을 벌리고 있습니다. 말을 바른대로 한다면 「옥수수 심기 운동」은 옥수수를 60만 정보 이상 심고 있는 북이 아니라 2만 정보 밖에 심지 않고 있는 남조선에서 벌려야 합니다. 햇볕정책의 붐을 타고 이른바 「슈퍼 옥수수」를 가지고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고 호언하는 것을 들을 때는 기가 막힙니다. 여기에 호응하여 남조선의 공영 방송은 남의 「슈퍼 옥수수」 종자가 북한 옥수수 종자보다 3배나 더 소출이 높다고 보도하는 형편입니다. 남쪽에서 자랑하는 「수원 19호」 같은 옥수수 종자 수준은 북에서는 이미 30년 전 벌써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슈퍼 옥수수」는 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에 있습니다. 이것은 정보당 16톤이나 나는 「키 낮은 옥수수」가 80년대 중반에 이미 생산되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이곳에 온 과학자의 양심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이 싫어서 남으로 온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남쪽 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진실에 기초하여 인격을 갖추고 북을 진정으로 지원하라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민복 씨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정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정공법으로 이 문제 해결에 접근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 번에 정부가 60만 톤의 양곡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이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쪽 정부는 북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어려운 경제 형편에도 60만 톤의 식량지원을 결정하였습니다. 아니 요구 전량인 100만 톤의 식량을 지원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것을 다 먹은 다음에는 또 어떻게 할까요. 또 지원 요청을 할 것이고 그러면 또 지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해야 할까요. 언젠가는 한계가 올 것입니다. 식량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 무엇이 근본적 해결책인가? 그것은 「집단농」으로부터 「개인농」으로의 전환이다. 북한 농업정책의 근본적 전환이고 이를 통해 농민들이 「소유 본능」을 충족시켜 증산의욕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점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그 것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정책이 이 같은 북한 농업정책의 근본적 전환과 어떠한 상관 관계를 갖느냐는 데로 귀착된다. 그런데 이민복 씨가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그 안에 함축한 의미는 현 정부의 대북식량지원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인 것이 읽혀진다.


그 이유는 사실은 자명하다. 우리는 북의 경우, 체제의 성격상, 「집단농」으로부터 「개인농」으로의 전환과 같은 근본적인 농업정책의 개혁이야 말로 지금 굶주리고 있는 인민대중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여전히 배부르게 먹고 있는 권력층이 움직여야만 되는 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북에 제공하고 있는 식량지원으로 북한주민 전체의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현 정부의 대북식량지원 정책은 지금 굶고 있는 인민들은 계속 굶도록 방치하면서 지금도 먹고 있는 권력층을 계속 먹을 수 있게 하는 상황을 지속시키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현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정책은 먹는 자는 계속 먹이면서 굶는 이들은 계속 굶기는 상황을 지속시키는 정책에 불과하다. 그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북으로 하여금 「집단농」으로부터 「개인농」으로 전환하는 농업정책 개혁의 시기를 무한정 지연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현 김대중 정부의 대북식량지원 정책은, 역설적으로, 반인도주의적·반동포애적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홍보활동은 이 정책을 마치 최고의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차원으로 분식시키는 기만적인 우민정책을 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민복 씨는 「편지」의 말미에서 『지난 날 보낸 「중앙당 제1호」 앞 편지는 수령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보게 되리라고 믿는다』고 쓰고 있었다. 그 이유는 『최근 남쪽의 주요 신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구로 직송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민복 씨의 「중앙당 제1호」 편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기 이전에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보좌진이 일독(一讀)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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