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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31 16: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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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이 쿠데타로 망하기 직전에 다녀온 30여년 전의 기억을 되살린다
-이제 지구상에 쏘련 체제는 사라지고 없으며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건강했던 민중들 하지만 체제에 아무 자부심도 갖고 있지 않았던 지도층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것, 다른 사람이 결코 따라잡거나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오직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즉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라 해도 다른 사람이 결코 공유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나처럼 별볼 일 없는 사람에게도 그런 것이 있기는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쏘련을 여행했다는 사실이다.

 

쏘련 여행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말하는 쏘련은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기 전의 그 소련 즉, 러시아나 기타 여러 나라로 분할되기 이전의 그 소련, 아직 공산주의 체제가 살아있던 그 소련, 레닌동상이 여기저기 서 있고, 길거리에서 레닌뱃지를 팔던 그 소련을 말한다. 즉, 나는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기 직전에 소련을 여행했던 것이다.

 

▲ 2011년 12월 10일, 옛 소련 붕괴 후 최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소련이라는 나라가 아직 없어지기 전에 우리나라 언론 등에서는 모두 ‘소련’이라고 표시했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을 줄여서 소련, 한자로는 소련(蘇聯)이라고 썼다. 한자로는 ‘소련’이 맞고 한글로도 그렇게 썼는데 실제로 읽을 때는 ‘쏘련’이었다. 하지만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쓴 글을 보니 ‘쏘련’이라고 쓴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쏘련’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소련이 멸망한 뒤에 내게 ‘쏘련’이라는 나라가 살아난 셈이다.

 

아무튼 내 쏘련 여행은 이제 다른 사람이 따라오기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경험이 되었다. 물론 쏘련이 망하기 전에 그 나라를 여행한 한국 사람은 나 말고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별로 보지 못했다. 러시아를 다녀온 사람이야 흔하지만, 쏘련을 다녀온 사람은 앞으로 한 사람이라도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뿌듯하다.

 

좀 알려진 사람 가운데 쏘련을 여행하고 그 기행문을 남긴 사람, 그런 사람 가운데 내가 아는 사람은 앙드레 지드와 이태준이 있다. 이태준의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앙드레 지드의 쏘련 기행은 꽤 유명하다. 지드가 좌파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둘 다 읽어보지 못했다. 옛날에는 묘한 거부감 때문에 읽지 않았고, 요즘은 정말 게을러져서 읽을 엄두가 안 난다. 어쨌든 결정적인 이유는 내 게으름이다.

 

내가 지드와 이태준의 쏘련기행을 감히 흉내내려는 또는 내가 쓰는 쏘련기행과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다. 만일 그들의 작품을 읽었다면 아무래도 내가 쓰는 쏘련기행에도 영향을 받았겠지. 하지만 그럴 걱정은 없다. 그럼에도 지드와 이태준 얘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진작 이 기행문을 써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괴감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딱 20년 전인데… 나는 그동안 무슨 짓을 하느라고 그것도 쓰지 못했을까? 훌륭한 사람들, 뭔가 남기는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의 시기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 아닐까?

 

내가 쏘련을 여행한 것은 1991년 7월이었다. 언제쯤인지 지금은 연도조차 가물가물한데, 그래도 시기를 틀릴 걱정은 없다. 왜나하면 내가 쏘련을 다녀온 지 한 달만에 쏘련의 보수 군발이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엘친이 등장했고, 쏘련은 곧장 거의 논스톱으로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쏘련을 여행한 것이 언제쯤이었지? 이렇게 헷갈릴 때마다 그냥 인터넷에서 쏘련 쿠데타를 검색하면 된다. 방금도 그렇게 해서 연도를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사실 빨갱이 종주국을 다녀온다는 뿌듯함이 출발 전부터 있었고, 그건 내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야, 저 형이 무려 쏘련씩이나 갔다 왔단다… 이런 소문이 퍼져서 내가 귀국한 뒤에 적지 않은 후배들이 나를 찾아왔다. 형, 가보니 어떻던가요?

나는 그때 좀 단호하게 답변했다. 야, 내가 보니까 걔네들 오래 못간다.

 

나야 나름대로 판단 기준을 갖고 얘기했지만, 그래도 무슨 점장이 시늉을 내려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대세는 쏘련이라는 나라가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의미였을 뿐인데, 내가 쏘련 갔다온 지 한 달이 채 가기도 전에 보수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쏘련이 정말 무너지는 바람에 나는 후배들에게 “역시 형 말이 맞았어요”라는, “선견지명이 있다”는 분에 넘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후배들에게 자신있게 쏘련의 몰락을 예견한 근거는 별 게 아니었다. 그 나라의 지도층이 철저하게 무너져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내가 쏘련에서 10박 11일을 보내는 동안 만난 쏘련의 평범한 민중들은 무척 건강했다. 건강하다는 표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른바 운동권들이 민중들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할 때 주로 저 ‘건강’ 운운하는 표현을 즐기는데, 나는 솔직히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쁘띠 인텔리 주제에 니들이 높은 곳에서 민중의 건강성을 판단할 계제나 되나? 같잖아서…” 이런 심퉁맞은 생각을 하곤 했다. 수험생이 교수 실력을 채점한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스크바에서 만났던 쏘련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건강하다’는 말 외에는 적당히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쏘련 기행을 뒤늦게라도 써야한다는, 언젠가 한번은 써야한다는 어떤 부담 같은 걸 가지게 된 것도 실은 바로 내가 목격한 쏘련 민중들의 그 건강함이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반면 내가 만난 쏘련의 지도층에게서는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민중의 건강성과 달리 타락하고 불건전한 생활을 하는 무리였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들 역시 일반 민중들의 삶이 보여주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지도층이라면 일반 인민들과 달리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체제, 자신들이 이끌고 있고, 자신들이 일반 민중들에게 제시하며, 자신들에게 관리 책임이 맡겨져 있는 그 나라와 체제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자부심이라고 봤다. 하지만 내가 만난 쏘련의 지도층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밝혀두고 싶다. 내가 당시 만난 쏘련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공산당 중앙위원이나 행정부의 고위급 관료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 쏘련에서 상위 10~20%에는 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의 결정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테크노크라트급 인물들은 됐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런 인물들의 분위기를 충분히 알고 있고, 전달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런 인물들, 내가 만난 그 사람들은 쏘련이라는 나라와 체제에 대해서 어떤 자부심이나 긍지, 희망, 전망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쏘련이라는 나라가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고 봤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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