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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3 11: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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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둘러싼 정세를 ‘신흥 패권세력’과 ‘낡은 패권세력’의 대립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
-신흥 청나라가 낡은 명나라 대체한 것처럼, 차이나패권이 아메리카패권 대체하리라 믿는 사람들 많다
-생산력이나 자유•인권 등 어떤 기준으로 봐도 차이나패권은 한반도의 미래지향적인 대안일 수 없다




<남한산성> 영화는 안 봤다. 안 봤는데, 그 영화를 보는 분들이 어떤 식으로 이해할 것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특히 지금 한국이 처한 현실을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상황과 비교해보려는 정치적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영화를 읽는 독해법에 관심이 간다.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높이 평가하는 분들의 경우 국제정세를 읽는 패러다임을 ‘신흥 패권세력’ vs ‘낡은 패권세력’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일이 흔하다. 즉,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의 굴욕에서 후대가 얻어야 할 역사적 교훈은 ‘신흥 패권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화는 항상 매력적이다. 사실 모든 지적 활동의 본질은 ‘단순화’에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단순화는 위험하기도 하다. 특히 변화된 상황의 본질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과거의 낡은 사례를 이해하는 패턴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를 낳는 원인이 되기 쉽다.

 

정치나 사회적 대립 갈등 구조를 이해하는 틀 가운데 가장 먹혀들기 쉽지만 동시에 그만큼 표피적이고 부작용이 큰 관점이 세대별 구분이다.

 

세대론은 항상 기본적인 타당성을 가진다. 틀릴 리가 없는 관점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특정 시대만의 핵심 이슈와는 거리가 뭔 이해로 이어지게 된다. 항상 맞는 얘기라는 건 사실 특정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대론과 비슷한 패러다임이 바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신흥 패권세력’과 ‘낡은 패권세력’의 대립구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이 병자호란 당시의 그것처럼 21세기 한반도의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새 것과 낡은 것의 대립이라는 구도는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다. 우선, 뭐가 새롭고 뭐가 낡은 것인지를 이해하는 관점부터가 냉정한 검토의 대상이다.

 

그냥 시기적으로 새로 떠오르는 세력이면 신흥 세력이기 때문에 낡은 패권세력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청나라의 경우 객관적인 국력에서 명나라에 한참 뒤졌지만, 명나라 내부의 거버넌스 시스템 노후화와 저열화를 결정적인 기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천운’이 작용했다는 평가도 많이 나온다.

 

지금 영화 <남한산성>을 과거의 낡은 구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신흥 청나라가 낡은 명나라를 대체했던 것처럼, 신흥 차이나 패권이 낡은 아메리카 패권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어떤 것인가를 놓고 따져봤을 때 과연 차이나 패권이 아메리카 패권에 비해 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것인지는 의문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일까? 자유의 확대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적 제약을 깨트려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권의 확대(자유의 확대와 마찬가지 개념이다)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제도적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착이란 기준을 동원해도 된다.

 

어느 관점으로 보아도 현재의 차이나 패권은 미래지향적이거나, 진보적인 세력이 아니다. 즉, 병자호란 당시의 청(신흥세력) vs 명(낡은 세력)의 대립구도를 지금 그대로 가져와 차이나 패권(신흥세력) vs 아메리카 패권(낡은 세력)의 대립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각한 퇴보와 절망으로 끌고가는, 말 그대로 헬게이트를 열어제끼는 단초라고 봐야 한다.

 

역사라는 것이 워낙 복잡한 변수를 갖고 있고, 사람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저변의 흐름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관계의 추이를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차이나 패권이 한반도 남부에서 아메리카 패권을 대체하는 사건은 현실화하기도 어렵지만, 만의 하나 현실화될 경우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거대한 후퇴이자 민족사 최고의 비극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본다.

 

▲ 생산력이나 자유의 확대 등 어느 관점으로 봐도 중국은 미래지향적인 세력이 아니다


중국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중국이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성장은 정상적으로 지불해야 할 온갖 정치 경제 사회적 비용의 지불을 유예한 결과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불을 유예한 비용은 나중에 이자까지 덧붙여서 계산서를 들이민다. 물론 끝내 그 비용의 지불을 거부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럴 경우 그동안 쌓아올린 축적도 무너지고 무효화된다.

 

중국은 머지않아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고 본다. 중국의 현재 지도층이 어떻게 그 상황을 돌파할지는 알 수 없다. 유예했던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고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걸어갈지, 아니면 끝내 지불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고수할지. 만약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선택할 경우 현재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차이나 패권의 실상은 거품이 매우 많다는 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비용 지불을 거부한 채 정상국가로 가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남한산성> 영화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사고와 논쟁의 소재를 던져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영화를 보지 않아서 단언은 못하겠다. 하지만 원작의 작가나 기타 우리나라 영화계의 맨파워나 이념적 분위기로 미뤄봤을 때 그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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