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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31 16: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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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사회의 선후배 질서나 교수와 학생 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권위적… 신입생 군기를 잡다가 사고도
-미완의 혁명이자, 체제 내 개혁인 87년 체제 후유증… 기존 시스템의 합리성과 권위 높이는 것만 합의
-추상적인 권위 해체된 반면, 각 부분의 지대 장벽 훨씬 높아지고 이것이 소영주화(小領主化)로 이어져


대학 사회에서 선후배 질서가 과거에 비해 훨씬 권위적이 됐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심지어 신입생 군기를 잡는다며 막장 이벤트를 벌이다가 어린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일도 해마다 학년 초면 적지 않게 발생하곤 합니다. 학과에서 선후배 사이의 군기(?)를 잡는 수준도 어마어마하더군요.

 

▲ 대학 사회에서 선후배 질서가 과거에 비해 훨씬 권위적이 됐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사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권위주의적이었던 80년대 즉 87년 체제 성립 이전에는 대학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교수들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고 격의없는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 사회는 그런 분위기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훨씬 자유로워지고, 권위주의를 해체했다고 하는데 왜 대학에서는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릴까요?

 

저는 이 문제를 87년 체제의 성공과 실패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87년 체제는 미완의 혁명이자, 체제 내 개혁에 좌와 우가 합의한 결과물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87년 체제는 기존의 체제를 대신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기존 시스템의 합리성을 높이는 데까지만 합의했다는 얘기입니다. 기존 시스템의 합리성을 높인다는 것은 즉, 공무원과 전문가 집단 그리고 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관습과 전통 등 온갖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이 과거보다 훨씬 큰 권위와 현실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에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군부 엘리트들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에 짓눌려있던 다양한 집단들의 힘이 커졌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권위주의 해체에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른바 ‘민주화’가 된 것이죠. 이러한 변화로 가장 큰 힘과 영향력을 확보한 것이 고급 전문가 집단입니다. 군부 엘리트 대신 변호사 등 법률가 집단이 새로운 정치 엘리트 육성과 공급의 풀(pool)이 되었고, 보안사나 국정원 대신 검찰이 권력 유지의 핵심 무기가 된 것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막강한 대중 동원과 여론 조성 능력을 갖고 있는 제도권 언론도 권력 창출의 선봉이 됐습니다. 과거에는 별로 매력적인 직업이 되지 못했던 공무원과 사회 각 분야의 기존 직업군이 엄청난 지대 추구 집단이 된 것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배곯고 서러움 받는 직종이던 순수 예술이 어마어마한 문화권력으로 업그레이드됐고, 딴따라라고 천대받던 고참 대중예술인들도 자연스럽게 ‘선생님’ 호칭을 받으며 존중받게 됐습니다. 이들은 방송이나 문화계, 사회 전반에서 거대한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합니다. 연예계에서 가업(?)을 잇는 2세, 3세 연예인이 자주 나타나는 것도 이런 현상의 일환입니다. 교회나 귀족노조에서 세습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기존의 사회적 집단과 장치의 권위와 현실적 능력이 높아진 결과입니다. 대학에서 교수의 권위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진 것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물론 학생들이 87년 체제 이전에 비해 취업이 어려워지고 학점 관리가 까다로워진 탓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 즉, 취업이 어려워지고 학점 관리가 까다로워진 현상 자체가 앞서 얘기한 기존 사회적 장치의 힘과 권위가 높아진 결과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 들어서지 못하고 기존의 사회적 장치들의 힘과 권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메커니즘인 장유유서의 질서나 상명하복 질서 등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신입생 학대나 선후배 군기 잡기가 창궐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1차적으로는 교수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회에까지 침투하는 것이고, 이것은 실제로 교수의 직접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교수가 학생을 통제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식이 학생들 사이의 선후배 질서를 활용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87년 체제가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체제와 질서가 아니라, 기존 질서의 합리성을 높이고 힘과 권위를 강화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87년 체제는 표면적인 민주화와 권위주의 해체, 사회 전반의 합리성 제고라는 현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극복되고 대체되어야 할 기존 사회적 장치들이 그런 합리성의 제고에 힘입어 부분적인 영향력과 권위를 강화한 과정이기도 했다고 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대학 사회 내에서 전근대적인 위계질서가 오히려 더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즉, 우리 사회의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영역의 권위주의는 해체된 반면, 각 부분 영역의 지대 추구 장벽은 훨씬 높아지고 강화됐으며 이것이 각 영역의 소영주화(小領主化)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대학 사회 구성원들의 권위주의 강화의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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