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4-14 18:38:33
기사수정


▲ [사진: Why Times]


나이가 들면 몸에서 온갖 신호가 다 나오는 것 같다. 나도 어느새 예외가 아니다. 관절도 아프고 오십 견도 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걸으면 짜릿짜릿 전기가 오는 것처럼 신경 줄도 당긴다. 앉았다 일어나려면 나도 모르게 아구구구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귀도 어두워진 것 같고 말도 바람이 새고 눈도 침침하다. 숨쉬기도 어려워져서 조금만 힘이 들어도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 힘도 빠져 모든 몸의 동작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다.


거기다 매사에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 같다. 순발력도 떨어지고 소외감도 느껴지고 신앙인이면서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감에도 휩싸인다. 자식들조차도 무시하는 것 같고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싫어진다. 이 모든 게 나이 들었다는 증상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종합적인 증상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이리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니 기능이 약해지고 무뎌지긴 했다 하나 다 살아있다는 얘기가 된다.


평균 생존연령이 80세를 넘어선 지금 사람들은 무엇보다 건강을 제일 민감하게 생각하고 챙긴다. 물론 살아가기 위한 경제력 곧 재정적 능력이 먼저랄 수도 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다음은 생각해 볼 여지도 없다. 그러나 불편한 것을 어느 정도는 안고 가야 할 때가 바로 나이 들어서가 아닐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이보다 젊게 사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은 것 같고 그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 진다.


오늘도 전철을 탔는데 경로석의 내 왼쪽 사람은 칠십이 넘어 보이는데 영어 소설을 읽고 있었다. 내 오른쪽 사람도 그쯤 되어 보이는데 손에 종이쪽을 쥐었는데 펼쳤다 접었다 하며 무언가 외우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니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 의자엔 팔십은 되어 보이는 세 노인네가 산행 복장으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겉으로는 어쩔지 몰라도 나는 그들보다 몸도 마음도 젊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들의 행동을 보며 짐짓 도전과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젊게 산다는 것은 마음먹기라고도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이 받쳐줘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그걸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전철을 내려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행렬인 셈이다. 내 옆에 앉았던 분들보다 오히려 젊어 보이는 연령대인데도 거동이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니 행동에 제한을 받는 것 아닌가.


그나마 아직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진 않는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당겨 애를 먹고는 있지만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이 정도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픈 곳을 꼭 치료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졌다. 이젠 같이 살아갈 거란 생각이다. 어느 정도의 아픔과 불편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이 나이에선 더 자연스럽단 생각으로 살려는 것이다. 그게 훨씬 마음도 편하다.


수년 전 돌아가신 수필가 매원 선생이 말년에 대상포진으로 몹시 고생을 하면서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신경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통증이 지나간 후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살아있다는 것은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속도를 내어 흘러가는 강물이거나 쉼 없이 철썩이는 파도일 것 같다.


사람들은 편하게 살길 원하지만 정작 그 편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삶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 된다. 하지만 최소한의 움직임까지 다른 것에 맡겨버린 후의 인간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일 것 같지 않다. 어느새 음식을 먹다가도 어딘가에 그 흔적을 남기고 젓가락을 잡은 손이 어느 순간 맥없이 풀리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도 늙어간다는 징조겠지만 그 또한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 나이에도 남보다 건강하게 열심히 공부하던 두 사람처럼 스스로를 살아있는 존재로 부각 시키는 것도 좋지만 내 신체기능이며 행동에서 전보다 못함을 느끼더라도 그것 역시 살아있다는 자연스런 증거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내 일상은 꺼꾸리에 매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방 양방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허리지만 요즘은 동네 헬스장에서 꺼꾸리에 매달려 허리를 펴는 것이 더 효과를 보는 것 같다. 한 달을 겨우 지났지만 아침 일찍 십여 분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내 행동은 운동요법으로 효과도 있지만 가장 눈높이가 낮아지는 상태에서 거꾸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는 특별한 의미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한 쪽 눈을 감고 본다던가 한쪽 다리로만 서본다던가 제한적인 불편을 취해보는 것도 삶을 의식하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아무 불편이 없기에 그 고마움조차도 몰랐던 일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수많은 굴곡을 지나며 목적한 곳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하니 그 과정 속의 슬픔 아픔 고통 더러는 절망과 포기까지도 내 것이어야 하는 삶의 길이 아니겠는가.


어느덧 내 나이의 신체리듬도 모든 것을 감지하고 조심하라 신호를 보내주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수많은 신호들을 받아 적절하게 내 몸을 건사하고 가능한 무리 없이 순리롭게 나를 움직이는 것이리라.


오늘 저녁에도 꺼꾸리 신세를 한 번 더 져야겠다. 늘어진 몸에서 느껴지는 나른함 같은 편안함이 아픈 허리를 토닥여주는 손길처럼 느껴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하루 종일 곳곳이 목을 가누고 힘들었을 머리를 잠시지만 쉬게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뻐근하지만 눌렸던 목도 늘어나고 허리와 근육도 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아프고 불편하다는 것 또한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72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