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2-09 08:23:58
기사수정
-개혁적인 취지로 도입되었던 향약이 조선 후기에 교화와 통제, 농민 수탈의 수단 등으로 변질
-지나가는 장례행렬 가로막고 ‘통과비’를 뜯으려 했던 사례가 과연 과거 전통과 무관한 일일까
-대한민국은 여전히 내적 질서와 규율에 합의해가는 과정… ‘공짜는 없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조선에 대해서는 나 역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편이지만, 꼭 그렇게 일방적으로 까이기만 해야 할 체제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마 전부터 하게 됐다. 실은 조선 왕조 자체보다, 그 체제가 욕 얻어쳐먹는 핵심 요소인 성리학이라는 이념적 기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다.

 

각 지방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향약만 해도 그렇다. 원래 개혁적인 취지로 도입되었던 향약이 조선 후기로 가면 교화와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심지어 농민 수탈의 수단이 되어 정약용의 경우 ‘향약의 폐단이 도적보다 심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하지만, 향약을 원래 도입하게 된 취지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점을 좀더 생각해보면 향약 그 자체 또는 그 철학적 기반이 된 성리학을 일방적으로 까기만 할 수 있는지 좀 의문이다.

 

조선 후기 일본에 통신사로 간 조선 유생들의 기록을 보면, 조선 통신사 일행이 지나가는 연도에 늘어선 일본인들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질서가 잡혀 있는데, 오히려 사신으로 간 조선의 하급 관리나 심부름꾼들은 상급자가 아무리 통제하고 나무래도 시끄럽게 떠들며 질서를 잡기 어렵다고 한 묘사가 나온다. 조선과 일본의 일반 민중들의 질서 의식이나 분위기가 매우 대조적이었다는 이야기다.

 

꼭 일본과의 대조가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 각종 기록을 보면 지방에서 힘깨나 쓰는 토호나 중인(주로 각 지방관서의 아전들)들이 기회를 노려 수령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기본적으로 영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다. 통제하고 통치하기가 무척 곤란한 사람들이었다는 얘기이다.

 

사실 조선 후기의 농민 수탈은 중앙권력도 중앙권력이지만, 중앙권력의 법적 도덕적 정치적 권위가 무너지면서 각 지방의 토착 세력들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앙에서 파견한 수령과 지방의 토호들이 결탁한 결과라는 것이다.

얼마 전 충청도 어느 지방에서 이장 등이 중심이 되어 지나가는 장례행렬을 가로막고 강제로 ‘통과비’를 뜯으려 했던 사례가 과연 과거의 전통과 무관하게 대한민국 시대에 들어와 평지돌출로 생긴 현상인지, 아니면 상당히 유구한 어떤 전통의 연장인지 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따져본다면, 국가 권력의 통제력이 강화된 현대에 들어와서 갑자기 생긴 현상이라기보다 오래 전부터 유지되던 어떤 분위기가 현대에도 살아남아 변태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 아닌가, 그렇게 판단하는 게 합리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시끄럽고, 말 안듣고, 온갖 개지랄을 떠는 무리가 많았기에 나름 배웠다는 유생들이 향약 같은 것을 만들어서 백성들 수준을 높이려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는 얘기이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심각한 폭력은 없었다.


향약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 덕목이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은 서로 규제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교제한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

 

요즘 식으로 옮기자면 제발 좀 인간적으로 예의와 질서, 공중도덕을 지키고 살라는 내용이라고 본다.

 

나는 소위 민중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의 자생적인 도덕성을 별로 믿지 않는다. 도덕성은 철학적 교양과 법적 강제력이라는 형태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 나라에서 살아오면서 받아들이게 된 결론이다. 향약의 네 가지 덕목이 그 사실을 분명히 증명해주는 것 아닐까?

 

조선 후기에 유생들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의 주역, 소위 적폐의 주역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향약을 만들어서 민중들을 가르치려 했던 놈들이 민중들보다 먼저, 더 깊이 타락했다는 것은 저따위 향약이나 그 철학적 기반이랄 수 있는 성리학이 쓰레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글쎄, 그렇게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고, 마음 편하게 세상 사는 사고방식일지 몰라도 양심상 그런 결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선 후기의 사회질서 붕괴와 도덕적 타락은 저런 성리학적 철학과 향약이라는 무기에도 불과하고 조선의 엘리트와 양심들이 원시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어떤 야만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이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신속하게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근간으로 한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고 경제 개발과 민주화에 성공한 것 역시 성리학적 기반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엄청난 인파가 거리에 쏟아져 나왔지만 심각한 폭력 행위나 무질서 행위는 없었던 것에 외신기자들이 “유럽 등 해외국가의 경우 저런 인파가 모이면 100% 유혈사태가 발생한다”면서 신기해 했다던 얘기도 떠오른다. 그나마, 성리학과 향약에 의해 오랫동안 규율을 강제받았던 영향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질서도 무질서보다는 낫다. 그리고, 질서는 훈련되는 것이라고 본다. 비록 한계가 있는 질서라 할지라도, 그 질서에 의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기존 질서와 전혀 다른 질서에 적응하는 능력도 더 뛰어날 것이라고 본다. 어떤 규율이냐보다, 규율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더 본원적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내적인 질서와 규율에 대한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그게 뭘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 출발점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6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