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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30 12:15:42
  • 수정 2022-10-09 15: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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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힘이 갖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사진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가 주최한 부부행복축제의 리마인드웨딩에 참여한 부부[Why Times]


참 이상하다. 내게는 없는 힘이 아내에게선 느껴진다. 내가 근근이 살아간다고 하면 아내는 그 넘치는 힘을 생산력으로 만들어내는 신통함이 있다. 나는 일상 속에서 내 역할이며 위치를 가능한 줄여가고자 애쓰는데 아내는 넓히고 키워나간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와 아내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를 때에 결혼했다. 그러니 수많은 시행착오로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그것이 힘든 것이라고 생각도 못할 만큼 각박하고 숨 가쁘게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피붙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숙명적 책임감으로 더욱 자신을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실부모하여 아무 의지가지없던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거친 시간의 터널을 지나 왔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저 모든 게 은총이었고 사랑의 빚이었고 그렇게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힘들의 도움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이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시간을 얼마큼이라도 갖고 싶었다. 정년을 4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했다. 그런데 그 시간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문학 강좌 등 여러 일에 끌려들어갔고 어느새 그 일로만 10년이나 되어버렸다.


요즘도 하는 일, 하려는 일을 가급적 줄이고 내 영역이랄 수 있는 것도 가능한 좁혀보려 한다. 내가 나서야 되는 일도 뒤로 빠지려 한다. 최소한 내가 하는 일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 또한 핑계일 수 있지만 마음 약한 내가 거절하기엔 압박하는 힘이 너무 강하다. 마음속 깊이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도 커진다. 더 천천히 그리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음성이다. 그래야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다.


그런 나인데 함께 사는 아내를 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시도하고 도전한다. 물론 그걸 해서 큰 무엇을 이루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기특하고 부럽다.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기에 어딜 가느냐고 했더니 무슨 라인댄스인가를 하러 간단다. 그게 건강에 아주 좋단다. 다른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거기 또 하나 추가했나보다. 왜 나는 지쳐있는데 아내는 아니 그런가. 사실 살아오는 동안 고생으로 말하면 나보다 아내가 훨씬 많이 했다. 지쳤다면 아내가 더 지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힘이 있는 것을 보면 여자는 늙어가면서 여성호르몬이 감퇴하고 남성호르몬이 활성화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쩌다 그런 아내에게 한 마디 할라치면 ‘아프기라도 해서 누워있으면 좋겠느냐’고 내 입을 막아버린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아내를 보며 ‘아내 덕에 사는 것 같다’던 누군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아내는 내일 새벽차로 시골에 가겠단다. 나는 갈 수 없다고 했지만 비가 많이 와서 복숭아며 사과들이 다 떨어져버렸겠다며 확인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아내는 떨어진 과일을 한 바구니쯤 주워 올 것이다. 맛이야 제대로 들지 않았겠지만 아까워서라도 가져올 것이다.


아내와 반백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놀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 키, 작은 체구로 엄마로 아내로 누구의 몫도 아닌 내 몫이라는 사명과 책임감으로 그걸 다 이겨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번도 제대로 고맙다고 표현한 적도 없었던 것 같고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겉으로 내색도 하지 못했다.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지난해는 유달리 가물었다. 고구마를 심었는데 꼬챙이로 구멍을 파고 꽂아두었었다.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 팔뚝만한 고구마가 달려 나왔다. 어찌나 미안하고 감사한지 눈물이 나왔다. 그러면서 그걸 캐내고 있는 아내를 보며 아내의 삶이 저랬겠구나 생각이 되어 힐끔 한 번 쳐다보곤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저히 결실할 것 같지 않은 땅에서 열린 고구마처럼 아이들도 그래 주었다. 순전히 그 또한 땅의 힘이고 고구마의 생명력이었던 것처럼 아내의 힘이었다. 그 힘들고 바쁜 시간들을 지쳐왔음에도 저렇게 일을 만들어가며 해내는 아내가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다. 나는 늘 종합병원이다 싶게 부실한데 아내가 그렇지 않은 것이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시골에 다녀오면 아내는 얼마나 무엇을 가져올까. 그 또한 아내만의 힘이 만들어낸 작품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악어새쯤 될까. 아내에게서 거대한 악어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제야 아주 조금 철이 든 것일까. 아니다. 아직 멀었지만 이제야 아내라는 그 힘을 아주 조금 알게 된 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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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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