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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7 15: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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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대망’을 쓸 때는 고대하고 기대하고 희망을 건다는 의미… 대망(待望)이라고 쓰는 게 맞다
-유래(由來)는 어떤 현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따지는 것, 유례(類例)는 같거나 비슷한 어떤 사례
-標識의 識은 지식(知識) 등 안다는 의미로 쓸 때는 ‘식’이지만 적는다는 의미일 때는 ‘지’로 읽어야죠


大望과 待望, 一絲不亂

가령 ‘대망의 2018년’ 이런 말을 한자로 쓸 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 상당한 지식인들, 나름 글을 쓰는 분들조차 ‘大望의 2018년’ 이렇게 쓰곤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라는 일본 소설가가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대망(大望)>이라고 붙였던 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저 대망(大望)은 아마 큰 야망이라는 의미로 만든 단어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대망’을 쓸 때는 대개 저런 의미가 아니다. 고대하고 기대하고 희망을 건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대망(待望)이라고 쓰는 게 맞다. 기다리고 바란다는 뜻이다. ‘대망의 어쩌구 저쩌구’ 하는 단어를 한자로 쓸 때 아주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망(待望)이라고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하긴, 요즘은 틀리게 쓰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그거 틀렸다고 지적하기도 뻘쭘하다. ‘대망’이야 한자로 쓰지만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뭐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일사불란은 또 경우가 좀 다르다.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나 시인, 기자라는 사람들이 ‘일사분란’이라고 계속해서 쓰는 것 보면 민망하다. 저런 분들이 책 내면 출판사 편집자가 또 조심스럽게 고쳐주겠지.

 

一絲不亂… 실 하나도 엉키지 않도록 질서정연하다… 대충 이런 의미다. 젊은 분들이야 한자를 배울 기회가 드물어서 그런다지만,

분명 한자어를 일상적으로 읽고 썼던 세대에 속하는 지식인들이 저리 쓰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나는 한글전용론자다. 그래도 한자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移舍, 移徙, 人事異動

중학교 때까지 ‘이사 간다’ 할 때의 이사라는 단어의 한자가 이사(移舍)라고 생각하다가 실제로는 이사(移徙)라는 걸 알고 충격을 먹은 적이 있다. 아니, 집을 옮겨간다는 건데 당연히 移舍라고 쓰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移舍라고 쓰면 사람이 옮겨가는 게 아니고, 집을 들어서 옮긴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이사 간다 할 때의 이사는 移徙가 맞다. 저 徙는 ‘옮길 사’다.

 

기업이나 정부부처의 인사이동도 人事移動이 아니고 人事異動이라는 걸 알았을 때도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니 人事異動이 맞다는 걸 알게 됐다.

 

▲ 나는 한글전용론자지만 한자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래와 유례

사람들이 또 많이 헷갈리는 게 ‘유래’와 ‘유례’의 차이이다.

 

유래(由來)는 말미암을 유, 올 래 즉 어떤 단어나 현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따질 때 쓰는 단어이다. 가령 “강강수월래 민속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에게 우리 군대의 위세를 커 보이게 하려고 추석을 전후하여 백성들을 동원해 춤과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할 경우에 주로 쓰는 단어이다.

 

유례(類例)는 무리 류, 법식 례 즉 같거나 비슷한 어떤 사례를 말하는 것이다. 종류별 사례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령 “그런 식의 법안 해석은 정부 안에서도 지금까지 유례(類例)가 없습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이런 경우에 쓰는 단어이다.

 

완전히 다른 단어이고, 헷갈리면 안되는 단어들인데 막 스까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엉터리 한자어 용례들이 평소에 무척 눈에 많이 띄는데 막상 쓰려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올 한 해, 이런 엉터리 한자어 사용이 눈에 띄는대로 한번 저격해볼까?

 

띄다, 띠다
한자는 아니지만 띄다, 띠다도 엄연히 다른 단어인데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띄다’는 ‘뜨이다’의 준말이다. 가령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을 말할 때 쓰는 단어이다. 가령 “페이스북에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않게 눈에 띈다”고 할 경우에 쓴다.

 

띠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사람들이 ‘띄다’와 헷갈리는 경우는 대개 어떤 속성 들을 지닌다는 의미로 쓸 때의 ‘띠다’이다. “그 보석은 밝은 녹색을 띠고 있다”고 할 경우에 쓰는 단어이다.

 

‘띄다’는 피동형, ‘띠다’는 능동형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심심풀이 파적
‘심심풀이 파적’이라는 표현을 보면 요즘 젊은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심심할 때 파전을 먹는 건데, 저 영감탱이가 맛이 훅 가서 오타를 내네…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단어에 가깝지만 나로서는 가끔 생각나서, 굳이 쓸 이유까지는 없지만

과거에는 비교적 익숙했던 단어가 지금은 사어(死語) 비슷해진 것이 안타까워서 한번 설명해본다.

 

심심풀이 파적에서 심심풀이는 순 우리말이지만, 파적은 한자어다. 즉 파적(破寂), 깨트릴 파, 고요할 적으로, 고요함을 깨트린다는 의미이다. 심심풀이 파적이란, 일상 생활이 워낙 무료하고 특별한 일이 없어서 지루한데 뭔가 그런 평이한 일상에 변화를 주는 취미 생활 등을 표현할 때 쓴다. 적을 쳐부술 때도 파적(破敵)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파적을 파적(破敵)의 뜻으로 쓴 경우는 거의 접해보지 못했다.

 

‘심심풀이 파적’이라는 표현을 굳이 살려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화는 다양성을 향해 가는 것이고, 어휘는 다양성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 요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표현에 담긴 어떤 여유와 멋 그런 게 그리워져서 기억에서 끄집어내본다.

 

표식, 표지, 패배, 패북
요즘 젊은 분들은 標識라는 한자를 대하면 아예 손을 내저으며 “물렀거라~” 할지도 모르지만, 나름 한자를 아는 분들도 ‘표식’이라고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건 ‘표식’이 아니라 ‘표지’라고 읽는 게 맞다.

 

우리말에 ‘표식’이라는 말은 표식(表式)이라는 말뿐이다. 어떤 의미를 나타내 보이는 일정한 방식으로 ‘재생산 표식, 확대 재생산 표식’ 등과 같이 쓰인다. 하지만 標識는 ‘표지’라고 해야 한다. 표시나 특징으로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標識의 識은 지식(知識) 등 안다는 의미로 쓸 때는 ‘식’이지만 적는다는 의미일 때는 ‘지’로 읽어야 한다. 북한에선 標識를 ‘표식’이라고 읽는다고 한다. 굳이 한자어를 복잡하게 발음할 필요가 있나, 우리가 알아서 쓰면 그만이지… 이런 접근 방식이리라. 하지만 같은 한자라도 의미하는 내용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는 꽤 많다.

 

가령 패배(敗北)할 때의 北 자는 북녘 북이기도 하지만, 달아날 배 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敗北는 패배라고 읽어야 한다. 쓰다 보니까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 시절에 5.18 광주항쟁을 놓고 국민적인 진상 규명 여론이 끓어오르자 당시 국방부가 5.18의 진상이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가 발표문을 낭독하던 것을 TV 중계도 하고, 라디오로도 방송을 했던 것 같은데 암튼 그때 그 관계자가 계속 패북, 패북 이렇게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속으로, 야 저기서 저 발표문 낭독할 정도면 그래도 육사 출신 고위 장교일텐데 세상에 敗北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나? 저런 놈들한테 우리가 이렇게 당하고 산단 말이여…? 이렇게 분개했던 기억.

 

지금 돌이켜보니 그 양반은 아마 21세기에 우리가 페북(facebook) 열심히 할 것을 미리 예견, 거기 너무 빠지면 인생 망가지고 패배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경고한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ㅠㅠ 그때 그 양반은 또 광주항쟁 당시 택시 기사들의 시위 부분을 읽으면서 ‘택시 기사’를 계속해서 ‘택시 운전병, 택시 운전병’ 이렇게 읽으시더만 ㅎㅎㅎㅎ 그 당시 참 황당했었다. 대한민국 수준이 이렇구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암튼 표식이라는 말 쓰기 없기. 표지라고 씁시다.

 

실은, 나도 대학교 때 학과에서 어학 세미나를 하면서 여럿이 둘러앉아 교재를 읽다가 標識를 ‘표식’이라고 읽었다. 그랬더니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 여학생이 여럿 있는 자리에서는 아무말 않고 있다가,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선배님, 그건 표식 아니고 표지라고 읽어야 해요.” 이래서 배운 거다. ㅠㅠ

 

여럿 있는 데서 망신 주지 않고 단 둘이 있을 때 알려준 그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군대까지 다녀와서 후배들 세미나에 함께 하는 선배를 배려해준 것이겠지. 그 덕분인지 그 후배 여학생과는 한참 뜨겁게 사귀는 사이까지 됐었다. 후일담은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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