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2-07 16:01:06
기사수정
-인건비를 정부가 부담하느냐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공무원은 정부가 파악한 수준의 두 배
-유럽의 선두주자 프랑스가 산업혁명에서 영국에 뒤진 가장 커다란 이유도 관료제도 문제점
-공무원 선호하는 프랑스 낙후되어 유럽의 병자화… 판검사•공무원 선호하는 한국은 어떨까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수를 줄여야 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공무원 신분으로 공무원 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건비를 정부가 부담하느냐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공무원 수는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두 배 수준으로 많다.

 

공직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료사회는 자기 조직을 스스로 팽창시키는 본능적 활동을 한다. 모든 관료조직은 스스로 비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파킨슨의 법칙’이라고 한다. 업무가 적어지거나 심지어 사라져도 공무원 수는 늘어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가 산업혁명에서 영국에 뒤진 커다란 이유의 하나도 바로 관료제도 때문이었다. 과거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으로 중세 때까지 프랑스는 도로와 운하 시스템이 영국보다 우수했다. 중앙집권적 정부와 체계화된 사법제도도 가지고 있었다. 16세기에 이미 봉건제가 소멸되고, 재산권도 명확했으며, 양도 가능한 소유권이 널리 확산되어 상업도 발전하고 있었다. 17세기에는 데카르트(1596~1650)와 파스칼(1623~1662) 등 과학적 계몽주의도 탄생하여 이념적 근거도 탄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에서는 영국에 뒤졌다.

 

▲ 프랑스가 산업혁명에서 영국에 뒤진 것도 관료제도 때문이었다.


중앙집권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관료주의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샤를르 7세 때(15세기) 공직 판매를 시작했고, 특히 프랑수아 1세(16세기) 시절에는 공직판매에서 오는 수입이 재정의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아무 일거리가 없는 공직도 비싼 값에 판매되었는데, 이는 공직자들에게는 인두세, 간접세, 염세 등이 면제되었기 때문이다.

 

상인과 수공업자들의 조합인 길드도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17세기에 프랑스 전역은 약 30개의 시장(市場)으로 나뉘어 자급자족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길드가 독점적 특권을 누렸다. 길드는 물론 직접적인 공직은 아니지만, 국왕이 길드에게 독점을 허락하는 대가로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를 준 공무원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독점권을 얻은 길드는 경쟁을 질식시키고 혁신을 가로막았다. 이후 200년 간 길드는 지속되었다.

 

왕정은 길드를 통해 산업의 생산과정을 지배했다. 예를 들어 옷감 염색을 규정하는 조항이 317개나 되었다. 옷감은 여섯 번이나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어떤 옷은 1,376개의 실로 만들어야 했고, 어떤 옷은 2,368개의 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도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제했다. 동물 뼈로 만들게 되어 있는 단추를 다른 소재로 제작한 것이 발견되면 벌금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수색하여 처벌했다. 양털은 반드시 5~6월에 깎을 수 있고, 검은 양은 도살할 수 없었으며, 톱날의 숫자도 정해 있었다. 특정 면직물의 생산, 수입은 물론 심지어는 착용까지 금지시켰다. 18세기에 이런 규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1만 6천명 이상이 교수형과 능지처참으로 처형되었다.

 

모든 것을 독점하고 시장을 왜곡한 길드는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제품 가격이 고정되고, 신참자의 진입을 방해했으며, 혁신과 창의성을 가로막아 사회를 좀 더 가난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더군다나 각 길드가 마치 비밀결사 같은 폐쇄성을 갖게 됨으로써 노동 이동이 제한되고, 자본의 이동도 제한되었다. 이와 같은 왕실의 감시와 길드의 통제가 프랑스의 경제발전을 저해시킨 요인이었다. 영국에서는 1624년에 독점법이 제정되어서 국왕이 자의적으로 독점권을 부여할 수 없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 이후에도 독점이 사라지지 않았다.

 

징세청부업자도 일종의 준 공무원이었다. 왕정 정부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기 위해 민간인에게 징세 업무를 맡겼다. 향후 거둘 세금 예상액을 민간업자들에게 입찰 붙여서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업자에게 6년간 징세업무를 맡기는 식이었다. 낙찰금액의 상당 부분을 선금으로 왕에게 미리 바친다는 조건하에 약 10%의 수수료를 챙겼는데, 이것이 더욱 조세부담을 높이고 생산의욕을 떨어트렸다. 징세청부업자는 왕에게 어음을 주었고, 왕은 이를 채무상환에 사용하였으며, 이 어음은 다시 징세청부업자에게 할인되었다. 이렇게 해서 징세청부업자들은 전국의 금융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래서 징세청부업은 매우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징세청부업자들은 성문 앞에서 파리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에 대해 간접세인 입시세(入市稅, octroi)를 부과했다. 그러자 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야밤에 굴을 파서 물건을 들여오거나, 성안으로 자루를 던지는 등 여러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러자 징세청부업자들은 파리 전체 시가지에 높이 3m에 길이 23km의 성벽을 쌓았는데, 이것을 ‘징세청부인의 벽’이라고 불렀다.

 

프랑스 조세의 주된 원천은 직접세인 타이유(taille)와 1701년에 도입된 인두세 등이었는데, 대부분의 귀족과 성직자들은 면제되었다. 그래서 돈 많은 평민들(bourgeois)은 귀족 신분이나 성직을 돈으로 매입하였다. 어느 마을에서는 한 세대 만에 세금 명부에 있는 성씨 중의 80% 이상이 면세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17세기의 유명한 희극 작가 몰리에르의 <서민 귀족>(Bourgeois gentilhomme)은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네덜란드나 영국의 젊은이들이 제조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기를 원하고 있을 때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징세청부업자나 정부 관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상업이나 제조업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자기 자식은 관리가 되기를 원했다. 고위층의 사람은 아들이 회계법원 참사원이 되기를 바랐고, 하층민들은 자기 아들이 서기가 되기를 바랐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인들은 공무원을 가장 선호한다. 발전하는 독일에 비해 프랑스는 점차 낙후되어 유럽의 병자가 되어가고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와 공무원을 가장 존경하고 선호하는 한국 사회는 과연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최승노, 김승욱 in 『오래된 새로운 비전』을 읽고)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4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역서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사상의 거장들’ 외 다수.
    저서 :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잉여의 미학’,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외 다수.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최신 기사더보기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