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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30 17: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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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할 때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발전하고 행복 느껴… 이런 발전은 오직 시장경제에서만 가능
-자본가-노동자가 생산성 향상을 공통의 관심사로 여겨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사회가 테일러의 목표
-사농공상 의식에 물든 우리 지식인들, 노동자 절대시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라는 말로 육체노동 경시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때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발전하고 행복을 느낀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의욕과 기쁨을 주는 이런 발전은 오직 활발한 시장경제에서만 나올 수 있다. 반면 경제가 정체된 사회에서는 언제 직업을 잃을지 몰라 불안해지고, 자신의 상황이 비참하게만 느껴지면서, 오로지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에만 기대를 하게 된다. (문근찬, in <오래된 새로운 전략>)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도 마르크스 열풍이 대단했다. 그러나 프레드릭 테일러(F. W. Taylor, 1856~1915)의 과학적 관리 운동 덕에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미국의 근로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중류층 시민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자유주의 국가의 중심축으로 남아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테일러리즘은 세밀한 연구를 통해 우선 각각의 작업들을 단순 조작들로 세분화하고,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한 후, 그것을 전체 공정으로 조직화하하는 방법이다. 이로써 노동자의 태만을 방지하고 최대의 능률을 발휘하게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차별적인 성과급제도를 채택하여 노동의욕을 고취시켰다.

이처럼 노동자의 움직임, 동선, 작업 범위 등을 표준화하여 생산 효율성을 높일 것을 주장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1911)은 출간 당시 노동조합과 자본가들 모두에게 배척을 받았다. 이 책의 내용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이라고 여긴 노동조합으로부터는 당연히 욕을 먹었지만, 자본가를 ‘돼지들’이라고 부르는 등 기업가의 탐욕에 대해서도 독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상가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작업이 단조롭게 세분화되어 노동자의 창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고, 노동자의 감정이 무시되며, 노동자들을 마치 상품과도 같이 언제나 교체 가능하므로 인간이 기계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 마디로 인간노동의 비인간화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상가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였다. 그는 <옥중수고(獄中手稿)(Prison Notebooks)>(1934)에서 테일러리즘이 “노동자의 지성·상상력·창의력을 억누르고 그들의 생산 활동을 오직 기계적·신체적인 측면으로만 환원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읍내에 설치된 공동 시계가 유럽의 새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었다면 테일러의 스톱워치는 미국의 새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었다”고 테일러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2004).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도 흔히 ‘다윈-마르크스-프로이트’가 ‘현대 세계를 창조한 삼위일체’로 인용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표하면서 “만약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마르크스는 빼고 테일러를 대신 집어넣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00여 년간 인류가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선진국 경제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 현장의 작업과정에 지식을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생산과정의 표준화와 합리화가 자본가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잘 구현된 것이 일본 사회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테일러는 생산성의 열매를 가장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이 소유주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었다. 테일러의 일관된 목표는 소유주와 노동자, 즉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가 생산성 향상에 공통의 관심을 갖고,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상호 협조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테일러의 사상을 지금까지 가장 근접하게 이해한 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자본가와 노동조합이었다.” (피터 드러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1993)

▲ 테일러리즘에 대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적대감은 뿌리가 깊다. 테일러리즘을 풍자한 만화.


그럼 테일러는 왜 그토록 왜곡되고,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일까? 지식인들의 노동 경시 풍조 때문이었다고 피터 드러커는 잘라 말한다.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슴 뜨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노동자를 절대시하면서,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라는 말로 끊임없이 육체노동을 경시하고 있지 않은가?

효율을 가장 중시하는 테일러리즘은 기업, 산업계를 넘어 미국 사회 전체의 새로운 프런티어 정신이 되었다. 이 프런티어의 정복으로 미국은 모든 면에서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하여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이른바 ‘디지털 테일러리즘(Digital Taylorism)’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미국에서 테일러는 당연히 마르크스보다 위대하다. 그러나 오직 미국에서만 그러할까? 우리가 아직 미국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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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역서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사상의 거장들’ 외 다수.
    저서 :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잉여의 미학’,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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