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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6 18:43:35
  • 수정 2018-01-26 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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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회색빛 디스토피아는 SF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이 없어진 세상이 곧 디스토피아
-지성인과 엘리트, 기업가 등 ‘아틀라스’가 지구를 짊어지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 끝장나
-평등주의 폐해 강조한 <아틀라스>가 미국에서 2천만 부 팔렸는데 한국에서는 ‘극우파’라며 퇴출

음울한 회색빛 디스토피아의 세상은 SF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통유리에 빨간 페인트로 X자가 그려진 채 ‘임대’라는 종이장이 붙어 있는 상가 건물 1층 매장들, 전력이 모자라 뿌옇게 불 밝혀진 편의점 매대 위에 듬성듬성 놓여 있는 허접한 상품들, 어느 때 더운 물이 끊길지 몰라 마음 졸이는 오랜만의 샤워, 기업이 다 사라져 없어지면 오게 될 이런 세상 역시 디스토피아다.

▲ <아틀라스>는 기업과 엘리트 등을 지구를 짊어진 거인신에 비유하고 있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아인 랜드(Ayn Rand, 1905~1982)는 기업이 사라지면,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몰락하면 오는 세상이 곧 디스토피아라는 것을 처음으로 설득력 있게 그린 소설가다. 그녀가 1957년에 쓴 소설 <아틀라스>(Atlas Shrugged)는 1999년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20세기의 위대한 책 100권을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 1위를 차지한 소설이었다.

미국에서 2000만 부 정도가 팔린 베스트셀러이고, 미국인이 성경 다음으로 사랑하는 책이라고 했는데, 한국의 독자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설이었다. 한국어 번역판은 2003년 민음사에서 5권으로 나왔으나,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반이니, 극우파와 연결돼 있다느니 하면서 아예 독서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한국에서는 역시 우파 책은 발도 붙이기 힘들다.

소설은 법과 규제의 무게에 짓눌려 기업이 사라져 없어져 가는 디스토피아의 미국을 그리고 있다. 제목에서 보듯 어깨를 움츠린 아틀라스(Atlas Shrugged)는 ‘지구를 짊어지기를 거부한 아틀라스’로 번역된다.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을 짊어지는 형벌을 받은 거인신(巨人神)이다. 아틀라스가 만약 어깨를 움찔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장 날 것이다. 아인 랜드는 이 세상을 짊어질, 이 세상을 끌고나갈 지성인과 엘리트, 기업가를 아틀라스에 비유했다.

철도회사 대표 대그니 태거트(여성이다)와 그의 연인이며 철강 업계의 거물인 행크 리어든은 그들의 생산품을 몰수하고,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약탈적 국가에 대항해 싸운다. 그들은 존 갤트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기업 총수들에게 기업을 포기하고 사라질 것을 종용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는다. 어느 날 파괴된 공장 안에서 이상한 전자 모터를 발견한 태거트와 리어든은 그 동안 사라져 버린 모든 기업 총수들과 갤트가 한 골짜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같으면 그들이 발견한 것은 컴퓨터 파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숨어 있는 장소가 골짜기라는 것도 어쩐지 심상치 않다. 실리콘 밸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PC도 없고 실리콘 밸리도 없던 1957년이다.

여하튼 갤트는 골짜기에서 반정부 활동을 주도하고, 마침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약탈적 정부가 전복되었음을 선언한다. 소설은 그들 모두가 이성과 개인주의 철학에 기반한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

추리소설 형태인 <아틀라스>는 정치 소설이자 일종의 계몽서다. 뉴딜 정책을 공격하고, 평등주의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당시, 미국 사회의 화두였던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문학적 버전인 셈이다.

아인 랜드는 190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 구 소련 당시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유태계 미국인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살던 평온한 삶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급격하게 변했다. 가족이 살고 있던 큰 아파트 1층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약국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오후 무장 군인들이 들이닥쳐 약국 문 앞에 붉은 딱지를 붙였다. 그리고 가게와 개인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했다.

어린 소녀는 부모가 오랜 시간 노력해서 번 재산을 하루아침에 생면부지의 사람들, 게다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자들의 공동 재산으로 만드는 공산주의 이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파트 발코니 아래에서는 혁명을 찬양하고, 노동자 세상을 외치는 무리들의 함성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과, 노력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노력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공산주의 체제의 경험은 그녀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다. 평생 전체주의와 싸울 것을 결심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객관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그녀의 핵심 사상은 국가나 집단의 영향을 최소화시켜야만 개인의 권리를 완전하게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모든 권리를 강조하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유일한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자본주의라는 개념 자체에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결과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다. 원래 자본주의란 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이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다만 그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소설이 나오던 당시 경제계에서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이 첨예했는데, 아인 랜드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하이에크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하이에크는 <노예가 되는 길>(The Road to Serfdom, 1944)에서 복지제도와 약자를 도우려는 온정주의가 결국은 개인을 나태하게 만들어 노예로 전락시킨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예로 들면서, 경쟁이 사라진 평등주의의 폐해와, 경쟁을 촉발하는 이기심의 미덕을 강조했다. 하이에크의 논리는 간명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거나 이와 유사한 혜택(복지제도)을 제공하면 당장은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개인의 자립심을 위축시켜, 그들로 하여금 정부에 손을 벌리고 의존하게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배를 채울 수 있게 되면 인간은 나태해지고, 노예근성을 갖게 된다.”

눈발 날리는 회색 빛 음울한 날씨의 광화문 광장, 무슨무슨 노조의 데모 대열 옆에 세련된 디자인의 빨간 버스가 눈길을 끈다. ‘박근혜 구속’, ‘재벌도 구속’. 저렇게 버스 하나를 영구적으로 디자인하여 색칠할 수 있는 고도의 자본력이라니! 그런데 그 자본을 절멸시켜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니!


['제3의 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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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역서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사상의 거장들’ 외 다수.
    저서 :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잉여의 미학’,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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