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앙마이 풍경 [추부길]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린 소설가 백영옥의 ‘버리면 심플해 진다고?’라는 칼럼을 읽으며 정말 많은 공감을 했다.

백영옥 씨는 이 글에서 '제티슨(Jettison)'이란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제티슨’이란 비행기나 선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짐을 바다에 버려 무게를 줄이는 걸 의미한다. 비상시에는 사람의 생명을 제외한 물건은 버리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비행기가 항공유를 공중에 쏟아 폭발 가능성을 줄이는 것도 '제티슨'의 일종이다.

삶에서도 정말 ‘제티슨’이 필요하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심플하게 산다’는 것이 바로 ‘삶에서의 제티슨 잘하기’를 뜻하기도 할 것이다. 백영옥 씨는 그래서 “잘 버리는 일의 핵심은 의외로 무엇을 간직할지 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나는 이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았다. 정말 잘 버리기 위해서는 진짜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 가슴 속 깊이 되물어 봐야 할 것이 바로 “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내 인생의 목적지는 과연 무엇이며, 어디이며, 어떻게 가고자 하는가?“

그 핵심을 기억한다면 그 외의 주변거리들은 소소한 것으로 변하고야 만다. 가야할 방향이 뚜렷한데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나안 땅에 이르는 것이었다. 광야의 삶에 복잡다단한 것들이 필요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갔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다른 그 무엇도 필요치 않았다. 그야말로 심플한 삶 그 자체였다.

잘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버리는 삶이 능사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 인생에 있어 최고의 의미가 있는 것은 목숨처럼 여기면서 지키되 그 외의 허다한 것은 초개(草芥)같이 여기는 그 마음만 있다면 인생은 훨씬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더 진한 행복의 맛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백영옥 씨는 이러한 ‘버리기’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숨구멍’이라 했다. 바람이 거센 제주에서의 돌담이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바로 돌 사이의 숨구멍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 숨구멍이 우리들에게 또 다른 시야를 열어준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가슴에 품게 만든다. 뭔가를 더 소유했다고 여유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 저것을 다 비웠기 때문에 더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백이 주는 풍요’, ‘비움이 주는 만족’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버린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책들마저도 아낌없이 비우고 있다. ”1년에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을 책이라면 과감히 버린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어찌 책만 대상이겠는가? 정말 나의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다 버리겠다는 생각을 다지고 또 다지고 있다. 욕심도 버리려 많이 애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고 앞으로 더 마음을 더 다지면서 애써야 할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아야 하겠다는 결단의 실천이다.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다시 채워 넣지 않는 것도 더불어 소중하기 때문이다.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 갔더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도 찾아오고 평안도 깃든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하다.

‘철이 든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진짜 행복의 의미를 깨달아 가고 버려야 할 것들이 눈에 조금씩 보이는 지금, 행복의 순도도 점점 진해져 가고 있다. 그런 내가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