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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6 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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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와 메이지유신, 서구식 근대화 통해 축적한 합리적 요소가 해방 이후 소멸
-연좌제, 보도연맹 대학살, 가족/씨족간 보복과 재산 강탈, 강간 등 야만 시대로 회귀
-국가권력 만능주의, 가족주의, 약탈주의와 지대추구가 문화와 시장생태계 황폐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봤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박열의 지성과 기지가 번득이는 법정투쟁 방식, 가네코 후미코 역을 한 배우의 빼어난 연기, 1920년대 일본 ‘다이쇼 데모크라시’ 가 풍미하던 시절의 사회 분위기 등이었다.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랬듯이, 1920년대 박열은 재판정을 선전선동의 장으로 활용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이 유럽과 미국 못지않은 문명국으로 보이려고, 현대적 사법 절차(형사소송절차)를 준수하려고 적지 않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근대적 사법절차 및 다이쇼데모크라시 세력과 조선인 6천명을 학살한 자경단 및 내무대신(3.1운동 당시 조선 총독부 내무책임자)의 ‘야만’ 간의 긴장과 갈등이 심했던 듯하다. 수사와 재판 과정 자체가 말로만 듣던 다이쇼데모크라시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관련자료

 

 


해방공간에 넘치던 야만의 수수께기

 

그런데 1945~53년 시기 한반도에서 벌어진 좌우익 갈등과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근대적 사법절차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아무리 문명사회라 할지라도 군대 대 군대의 전쟁에서는 모든 문명이 휴지조각이 된다. 하지만 민간 대 민간, 군인 대 민간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이는 살인이고, 전쟁 범죄가 된다.

 

1980년대 내내 나는 1945~53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상상을 초월한 야만에 대한 증언을 들으면서 당혹해하고 분개하고 몸서리쳤다(개인적으로 자서전, 수기, 평전을 참 좋아하는데, 그 때문에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것이 더 소설 같으니…).

 

해방을 계기로 에도시대를 거쳐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식 근대화 과정을 통해 축적한 일본 문명을 완전히 쓸어내 버리자, 인권, 재산권, 법치, 사법절차, 개인주의, 상대주의와 완전히 담쌓은 말기 조선 문명(악습)이 일거에 부활했다. 제주, 거창, 함양 등 전국에서 행해진 대량 학살, 연좌제, 보도연맹 대학살, 가족/씨족간 상호 보복 학살, 사적 감정에 의한 살해, 재산 강탈과 강간 등.

 

일찍부터 나는 제주도 내 본적지(신촌) 옆집 아버지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4.3 당시 유격대장이던 이덕구의 젖먹이 아들을 토벌대가 (나중에 후환을 없앤다고) 머리에 총을 쏴서 죽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주의 이덕우라는 놈이 저지른 만행,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의 입산 경위, 경남과 전북 일대 좌익 부역자들과 가족들이 대거 지리산으로 들어간 경위 등 무수한 얘기들을 들으며 몸서리쳤다.

 

솔직히 아직도 나는 왜 그렇게 잔악한 ‘가족 연좌죄’에 근거한 고문과 학살극이 벌어졌는지 그 심리와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아주 괴이한 일이다.

 

이해 안 가는 것은 그 뿐 아니다.

 

1946년 당시부터 좌익은 미국을 미제국주의라 부르며 대결주의적으로 나갔다. 당시 미국이 어떤 나라였나? 강대한 일본을 패망시켜 조선을 해방하고, 나치독일의 침공에 허덕이던 소련에 엄청난 전쟁 물자를 제공하였고, 당시로는 유일한 핵무장 국가였다. 그런데 그런 미국과 어떻게 그리도 일찍 대결주의적 자세로 나갔는지? 그 때 보여줬던 무모함, 편협함(국제감각 제로), 허장성세 등이 지금 북한과 남한 내 극좌 꼴통들의 태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남한은 일제 철수 후 말기 조선 문명이 부활했지만, 곧바로 미국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사실 미국 문명은 기독교 선교사를 통해 19세기 후반부터 들어와서 바닥을 깔아놓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깔아둔 법적, 제도적 인프라는 거의 그대로 썼다. 이병철, 정주영 등 기업가들은 일본으로부터 기술과 설비를 들여와서 한국 경제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일본이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면서, (부품에 주력한 대만과 달리)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가전, LCD 등에서 일본과 정면 대결의 길로 갔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북한은 일제 철수 후, 남한처럼 말기 조선 문명이 부활했지만, 동시에 스탈린 시대 소련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그런데 남한과 달리 일본 문명이 가진 합리적인 핵심을 대체로 무시해 버렸다. 미국-유럽 문명도 마찬가지로 무시해 버렸다. 결국 후진 문명 2개가 중첩되고 융합된 결과가 지금의 괴이한 국가 북한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공공성은 사익 추구를 위장하는 명분

 

북한이야 실패 국가라 치고, 문제는 남한이다.

이제 전환기의 포연과 안개가 걷히고 보니, 대한민국 역시 말기 조선 문명이 스물스물 기어 나와 대한민국을 거의 삼켜버릴 지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조선 문명이 낳은 가장 강하고 질긴 악덕이 국가주의=권력 만능주의다. 이놈은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관주주의로, 시장경제를 관치경제로 변질시키고 있다. 국가는 시장이나 사회(커뮤니티)와 달리 강제로 자원(세금, 자산, 인력 등)을 수취(수용, 징발, 징집)하고 운용할 수 있다. 이 명분은 국민 전체의 이익(국리민복) 증진, 곧 공공성(public)이다.

 

시장과 사회는 기본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와 요구(사적 이익)를 받아 안지만, 국가는 국민 전체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는다. 그런데 공공성(public)은 아무래도 애매할 수밖에 없다. 국민 전체의 이해와 요구는 관점에 따라, 시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또 계량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공공성의 이름으로, 자신의 가치와 판단을 강제적, 폭력적으로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 국가의 핵심 권능이자 약점이다.

 

그렇기에 국가의 관여, 개입 영역이 많을수록, 국가에 대한 민주공화적 통제가 허술할수록 국가 운영자들의 지성과 덕성이 부실할수록, 국가는 온 사회를 착취하고 억누르는 괴물로 변신하게 되어 있다. 또 국가가 괴물에 근접할수록 국가권력 쟁탈전은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권력에 근접하는 것, 즉 국가 부문 종사자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된다. 이는 조선의 쇠락, 북한의 야만, 지난 20여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점진적 쇠락 현상 등을 설명해주는 핵심 배경이다.

 

20세기에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거의 예외 없이 일당독재, 개인숭배로 내달린 이유는, 자본가들의 반발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간섭 분쇄의 필요성(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 때문이 아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국가가 시장을 내쫓고, 가치와 자원을 일방적으로 분배하는 한, 인간의 불만과 불신을 잠재울 방법이 독재나 기본권(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억압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창의와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효용)을 추구하다가, 시장에서 한계를 절감하지 않는 한, 신이 가치와 자원을 분배한다고 해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관피아와 공공 귀족, 직장계급의 뿌리가 조선 시대

 

또 하나 조선 문명이 낳은 강하고 질긴 악덕이 바로 가족주의다.

 

가족주의란 ‘가족을 개개의 가족 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 인간관계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확대 적용하려는 주의’이다(두산백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은 위계와 서열이 있다. 안(내부자)과 밖(외부자)의 구별이 뚜렷하다. 가족(가장)의 부, 권력, 지위는 가족 성원에게도 상속된다. 무임승차를 허용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가족·친족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집단이 취약했다. 20세기 이후 기업, 종교단체, 노동조합, 협동조합, 직능단체, 향우회, 동창회, 동호회 등 무수히 많은 단체가 생겨나긴 했지만 이들은 보편적, 포괄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이나 산업, 업종, 지역 노동자들의 이익을 의식하지도 않고 대변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종업원으로서의 이익만 추구한다. 단위 기업 차원에서는 노사가 대립하지만,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담합한다. 한국의 중간집단은 대체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지향한다.

 

하나 같이 안(내부자)과 밖(외부자)을 가르는 벽이 높다. 외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당연시한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면 가족의 부, 권력, 지위가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집단의 구성원이 되면 집단의 부, 권력, 지위가 자기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무임승차, 즉 집단의 지대(렌트)를 개인적으로 향유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가족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뚜렷한, 땅(소속)의 역할을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랑, 존중, 배려의 가족 윤리는 가족 안에만 존재한다. 사회 전반에는 가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결합하여 만든 위계와 서열이 지배한다. 외부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도 존재한다. 내부자가 되기만 하면, 별 기여가 없어도 집단이 가진 부와 권력과 지위, 혹은 권리와 이익과 혜택을 향유할 수 있다는 생각도 흔들림이 없다.

 

이는 결국 좋은 직장(소속) 진입경쟁으로, 위(위치)로 올라가려는 승진 경쟁으로 나타난다. 직장이나 부서에서 전직과 현직, 동문이나 동향 선배와 후배를 가족처럼 엮어, 서로 상부상조하게 하면서, 수많은 마피아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지대추구다.

 

국가는 본래 공공=도덕의 이름으로 강탈과 재분배를 하는 존재다. 민주주의 이전에는 공공은 허울이었고, 본인(권력집단)들을 위해서 강탈을 했다. 그래서 조선, 북한 등 권력의 힘이 강한 나라는 예외 없이 사회 저변에 약탈주의가 거세게 흐른다. 권력을 통해 자원을 분배하고 사회를 운영하는 곳은 예외 없이 위계와 서열이 분명하다. 백성이나 인민을 ‘사농공상’이나 ‘당성’을 기준으로 등급화한다. 특권과 특혜 혹은 배제와 차별이 내면화되어 있다. 조선은 군사부일체를 내세워 가족 윤리와 국가 윤리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였다.

 

1907년 12월 1만 의병의 총대장(13도창의총대장) 이인영이 의병 전쟁 중 부친 사망 소식을 듣고, 지휘권을 다른 사람(허위)에게 넘기고 낙향하여 장례를 치르고, 이후 의병총대장 복귀를 종용받았으나 번번히 3년 상을 이유로 복귀하지 않은 것은 공적 윤리와 사적 윤리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가주의는 권력만능주의고, 애매모호한 도덕=공공지상주의다. 또한 약탈주의, 위계서열주의, 위선적 도덕(명분)주의를 필요로 한다. 가족주의는 위계서열주의, 외부자와 내부자 차별, 내부자에 대한 무임승차 주의를 내장하고 있다.

 

요컨대 조선에서 유래하는 국가주의와 가족주의가 낳은 악덕이 관피아와 공공양반사회, 직장계급 사회가 아닌가 한다.

 

권리에 상응하여 누군가가 질 부담은 안중에 없다

 

역사를 30년, 50년씩 끊어서 보면 지금 러시아의 모습, 북한의 모습, 남미의 모습 등에서 역사적 유산이 얼마나 강고한지 절감하게 된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절감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수많은 인생들이 바다에 쟁기질한 농부라는 것을!

 

지난 30여 년 동안 역사의 주도권을 쥔 민주화 세력에게는 자주 민주 통일 저항 투쟁 권리 쟁취 같은 개념은 있었지만 보편적 문명 개념이 없었다. 유럽-미국 문명과 일본 문명이 어떤 정신과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 잘 보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한국의 근현대사도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심했고….

 

안창호 등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선각자 중 일부는 무실역행-충의용감과 이상촌 계획 등 나로부터 출발해서(나부터 훌륭한 문명인이되어), 내 이웃을 바꾸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든다는 운동과 정치의 기본에 충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나라가 없었고 권력이라는 수단은 일제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는 권력이라는 사회변혁의 수단이자, 개인의 먹거리가 생기면서, 문명 건설의 기본을 잊어 버렸다. 19세기 독일 사민주의 운동이나 노동운동은 국가의 개입, 지원을 거부하고, 노동자들끼리 혹은 노동과 자본이 비용을 2대 1로 분담하여 자치적으로 사회보험제도 등을 건설하려고 하였다.

 

1880년대 초 프로이센이 공적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할 당시, 그 창안자 비스마르크 수장은 보험료를 기업이 2/3, 국가가 1/3을 분담하거나 아니면 기업이 모두 부담하는 방식, 한마디로 무상보험을 제공하여 노동자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은 비스마르크식 ‘과도한 국가개입과 중앙통제의 효율성에 회의하고 반발하여’ 국가 부조를 완전히 배제하고, 보험당사자(노동자)가 2/3, 기업이 1/3을 분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보험조합 집행기구도 보험료 부담 비율에 따라 노동자가 2/3, 사용자가 1/3을 차지하였다. 또한 보험조합도 지역이나 직종에 따라 분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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