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신복룡 칼럼] 외치(外治)가 內政에 우선할 수는 없다 - 한국, 자유민주주의적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복수(復讐)중심제下 - 적어도 지금 북핵보다 더 시급하고 두려운 것은 민생의 불안과 불만
  • 기사등록 2019-01-21 11:54:38
  • 수정 2019-01-21 12:13:13
기사수정
지인인 신복룡 교수가 지난 1월 15일 마르코 글방에 회원들 간의 소통을 위해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여기에 전재한다.
신복룡 교수는 건국대 정외과 석좌교수로 한국근현대사와 한국정치사상사를 전공했으며, 건국대 중앙(상허)도서관장, 건국대 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한국정치학회 학술상"(2001·2011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이가 일흔이 넘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도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從心所慾不踰矩)던데 그것은 성현이나 하시는 말씀이고, 저 같은 필부들은 이 나이에도 분노를 느끼며 삽니다.
서생이 하늘을 향하여 주먹질한다고 세상이 바꿔지기야 하겠습니까마는,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는 치기(稚氣)로 쓴 글입니다. 문득 황현(黃玹) 선생이 죽으면서 쓴 시 "이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글줄이나 읽은 사람 노릇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難作人間識字人)라는 글이 생각나 마음이 쓸쓸하고 허허롭습니다. [필자 주]


▲ 세종대왕 어진 {WT DB]



세종(世宗)을 공부하노라면 하나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그 허다한 대내외의 치적이 한글 창제라는 하나의 업적에 모두 묻혀버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만약 그가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더라면 그만한 명군(明君)이 될 수 있었을까를 장담할 수 없지만, ​한글이 아니더라도 그가 조선 왕조에서 손꼽는 현군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


그는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선린으로 이끌었고, ​북방을 안정시키고, 과학문명과 어문학의 발전은 당나라 태종의 정관(貞觀) 시대에 못지않았고, 오랜 관찰과 시험 끝에 토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한글 창제에 묻혀 버렸다.


역사를 돌아보노라면 광해군(光海君)도 훌륭한 반면교사가 된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에 외환(外患)이 가장 적었고, 동북아에서 균형 외교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군주가 곧 광해군이었다.


조선왕조에서 그의 시대에 국방과 외교가 가장 안정되었다. 그는 임진왜란의 현장에서 풍천노숙하면서 전쟁이 왜 일어났고, 조선은 왜 패퇴했으며, ​민심은 왜 왕에게 돌멩이를 던져야 했는지를 훌륭하게 학습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의 전후(戰後) 처리에 탁월했고 북방을 안정시켰다. ​그럼에도 그는 내치에 실패함으로써 왕도 아닌 군(君)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몰락하고 곧 이어 병자호란이 일어나 국토가 피폐해졌을 뿐만 아니라 청한종번(淸韓宗藩)이라는 건국 이래 최악의 국치를 겪었다.


이러한 사례는 다만 동양이나 한국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일세를 풍미한 나폴레옹은 줄리어스 시저 이래 최대의 제국을 이루었지만 그는 내정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총장 푸쉐 (Joseph Foushé:1759-1820)의 충성을 잃었을 때 제국마저 잃었다. ​그는 천하를 장악하면 프랑스 제국이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리라고 오판했다. 그런 상황에서 믿었던 탈레랑(Charles de Talleyrand:1754-1838)마저 정적 메테르니히(Klemens von Metternich:1773-1859)와 손을 잡았을 때 프랑스제국의 몰락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 필자 신복룡 교수


[지금은 내치가 중요한 격동기]


한국의 근현대사에 어느 한때 격동이 아니었을까만 지금이야말로 한 공화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로에 서 있다. 기능주의자들의 보는 눈은 다르겠지만, ​역사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역사는 500년을 한 시대로 하는 왕조가 이어진 다음 ​100년을 주기로 하는 춘추전국시절이 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역사의 순환이 어긋난 적이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전국시절 100년의 8-9부 능선에 서 있다.


대관령의 빗물이 간발의 차로 동쪽으로 흐르면 창해가 되고 서쪽으로 흐르면 황해가 되듯이 역사의 운명이 결정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내치의 안정과 내공을 쌓는 것이다. ​일본의 명치(明治)시대에 정한론(征韓論)이 그토록 빗발치듯하고 조급한 다이묘(大名)들이 조선 정벌을 외치며 사쓰마(薩摩)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1877)에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은인자중하며 내공을 쌓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혁명기의 격정, 이른바 자코방 멘탈리티(Jacobin mentality)에 휩쓸려 가고 있다.​ 외침과 질주, 조급한 공명심과 과거사에 대한 정죄(定罪), 머리띠와 깃발, ​그리고 복수심으로 국정의 우선순위에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자유민주주의적 대통령중심제가 아니라 복수(復讐)중심제라고 하는 이상한 정치제도 아래 살고 있다. 기무사령관 역임의 우리나라 육군 대장은 자살할 일이 아니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의 빈소에는 현역 장성이 없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격동기의 지식인들은 이 점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북한의 핵은 차순위(次順位)이다. 물론 북한 핵의 해체가 중요하다. 전쟁 없는 한반도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정의 안정이다.


경제를 보는 눈이 어찌 그리 다른가? ​최고지도자는 ​“세계가 지금 한국의 경제에 대하여 찬탄(讚嘆)한다”고 말하고, ​​국민들은 “어렵다고 한탄(恨歎)한다.”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그런 말을 들으며 우리는 대통령이 연설 담당 비서가 써준 “한탄”을 “찬탄”으로 오독(誤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어리둥절했다.


누군가는 착각하고 있고, 틀렸다. ​틀린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틀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더 무섭다고 공자(孔子)는 가르치고 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 북한의 핵보다 더 시급하고 두려운 것은 민생의 불안과 불만이다.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는 지지자도 많지만, 내가 보기에 분명히 민심은 흉흉하다. 그런 불만이 외치의 업적으로 치환(置換)되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무서운 오산이다.


외치의 치적으로 잠시 지지도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믿을 만한 지탱력이 아니다.


역사에서 민중의 요구를 불합리하게 거부한 지도자는 그들의 손에 사라졌고, ​​민중을 과신하여 그들과 함께 질주한 지도자들은 그들과 함께 몰락했다. ​민중은 믿고 의지할 곳이 아니다.


통일이 역사의 지상 과업임에는 틀림없으나 지금은 아니다. ​북한의 핵 문제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났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미국과 북한의 문제이며, 그 싸움은 오래 갈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이길 승산은 그리 크지 않다. ​


무기가 우수한 나라가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했다면 성채를 쌓지 않은 스파르타와 베트남은 벌써 멸망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북한이 핵을 스스로 포기하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순진하고 어리석으며 북한을 모르는 생각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
그런 가정 위에서 미래를 고민하고 구상해야 한다.


[세종(世宗)이라면]


그러므로 지금 한국의 지도자들이 몰입할 일은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그 참혹했던 IMF 시절보다 어렵다는 것은 이제 천하의 공론이 되었으며, 전두환 시대의 “향수”(?)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 세종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백성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하늘이다.” (“食爲民天”:『實錄』 29/4/15) ​


국민에게는 역사니 민족이니 하는 것보다 나의 삶이 소중하다. ​이는 그들이 애국자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인간은 가까운 것, 작은 행복에서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케이크는 내 손의 감자 한 알만 못하다. 다시 호소하건대, 안을 돌아보자. 구중궁궐에서 국민의 신음이 안 들린다면, ​누구인가는 곁에서 직위를 걸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차피 권력의 주변에는 “영혼의 노숙자”(spiritual homeless)가 더 많았다. ​​지금의 국민의 아프고 고달픈 삶은 그들이 호강하고 외유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충신이 넘쳐나던 시대도 없었지만 충신이 넘쳐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몇 사람이 이 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것이다. ​그런 인물이 없다면, 이 나라의 미래도 없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316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