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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5 11:56:07
  • 수정 2018-01-26 08: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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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세상을 적백(赤白)이나 흑백(黑白)으로만 보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색맹들이 유달리 많다
-최승호PD가 MBC사장 됐다고, 전격적으로 배현진 앵커 하차시켰다고 환호하는 게 정상적인 행동인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금감위, 공영방송국 등을 권력이 흔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세상은 총천연색인데 흑백으로만 보는 색맹이 있다. 사람 중에는 극히 드물지만, 동물 중에는 이런 색맹이 많다. 개가 대표적이다.

▲ 한국에는 세상을 적백(赤白)으로만 보는 정치적 색맹들이 유달리 많다


한국에는 세상을 적백(赤白)이나 흑백(黑白)으로만 보는 정치적 색맹들이 유달리 많다. 자칭 보수에는 적백 색맹이, 자칭 진보에는 흑백 색맹이 넘쳐난다.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와 정의, 민주와 공화, 진짜 변화와 개혁의 적은 이런 정치적 색맹들이 아닐까.

조선에서는 사문난적 프레임을 휘두르던 인간들이 일종의 색맹이었다. 해방 공간에서는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 프레임을 휘두르던 인간들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종북좌익 프레임을 휘두르던 인간들이다. 이들은 적백색맹이라고 봐야한다. 지금은 선-악, 민주-독재, 개혁-적폐, 노동-자본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인간들이다. 최악의 흑백색맹은 선=민주=개혁=노동을 등치시키는 인간들이다.

최승호PD가 MBC 사장 됐다고 환호하고, 최승호가 취임과 동시에 후임도 정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배현진 앵커를 하차시킨 것에 대해 환호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놀랐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더 놀랐다.

민주주의 상식에 의하면 언론, 특히 공영방송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권력과 자본(광고주)이다. 한국에서는 하나가 더 추가되는데, 바로 오로지 자신의 자유, 권리, 이익을 높이는 데 여념이 없는 노조다. 게다가 정치적 흑백 색맹이 많은 나라에서는 편향된 PD의 패악질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MBC의 광우병 관련 보도 등이 그 전형이다. 사실 공공을 팔아서 엄청난 국가독점 지대를 누리는 공공기관 자체가 적폐의 양산 공장이다. 이 공공기관을 통할하는 정치가 적백 혹은 흑백 색맹이면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진다.

대한민국은 소비자 선택권이 잘 작동하는 곳,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은 세계 수준에 올라간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지금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문화상품(한류) 등은 세계적 차원에서는 무한 경쟁이 일어나는 산업이다. 물론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등은 국내적 차원에서는 독과점화되어, 소비자나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을 꽤 하지만, 어쨌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곳은 거의가 독과점화된 곳이다. 특히 국가=정치가 쥐고 흔드는 곳은 예외가 없다. 당연히 국가독점 분야(공기업과 공공기관 등)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KBS가 있는데, MBC가 왜 공공기관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MBC 등 거대한 공공기관을 통째로 민영화하면 안 될 것이다. 가치생산 사슬을 잘게 쪼개서 경쟁 시장에 내몰아야 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과도기적으로 지배구조와 운영구조를 최대한 공공성, 중립성, 전문성에 충실하도록 짜야 한다. 방송위, 방문진, MBC 사장과 편집국 등이 다 권력, 자본, 노조와 편향된 PD및 편집책임자가 함부로 농단하지 못하도록 짜야 한다. 그런데 최승호PD는 소신과 강단이야 그 누구 못지않아 보이지만, PD로서의 편향은 심각해 보인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그가 광우병 보도 관련 어떤 해명을 했는지 모르겠다. 노조 유착과 권력 유착 가능성도 꽤 높다. 적폐로 지목된 전임 사장보다 부적절한 편향과 유착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배현진 앵커 전격 교체도, 배 앵커를 적폐 세력으로 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인사조치다. 그가 앵커로서 부저절한 언행을 했다면 몰라도 그런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색맹들은 민주공화주의의 상식과 공영방송의 기본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민주공화주의와 공영방송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으니 정치적 흑백 색맹이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 MBC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은 MBC가 뚜렷한 이유 없이 공공기관(공영방송)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정권 교체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심한 몸살을 앓는다. 가장 최근에 추가된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낸, ‘공공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모르쇠하는 것이다.

근원적으로는 한국 정치권이 선거 승패, 선거제도, 정당체제, 권력구조(대통령과 국회의 권한과 책임 등)에는 엄청난 관심을 보이지만, 권력의 위상(국가와 시장및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945년 시점에 연합국에 의해 해방된 나라 중에서, 국제결정(신탁통치 등)을 두고 (찬반) 둘로 나뉘어 격렬하게 싸운 나라는 왜 대한민국밖에 없을까? 왜 우리 민족은 세계적 차원의 냉전 구도가 형성되기 전에 먼저 격렬한 좌우, 남북 간의 갈등을 연출했을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이 쥐고 흔드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권력이 개인, 가족, 문중, 기업의 생명, 재산, 자유, 명예 등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고, 나눠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중국, 인도, 이슬람권 등은 한반도와 달리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정치체들이 치열하게 경쟁=전쟁을 했기에 국가권력이 민이나 공동체의 입장에서 대체할 수 없는(도피, 이주, 반란 등으로 거역할 수없는) 슈퍼 갑은 아니었다. 침략 전쟁이든 정치체 방위 전쟁이든 왕조(지배층)의 명운을 좌우하는 전쟁은 병력과 물자를 공급하는 생산자=민(피지배층)의 지위와 역할을 끌어올리고, 권력의 슈퍼갑적 지위를 끌어 내리는 측면이 있다.

또 유럽, 중국 등은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되기 훨씬 이전에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여 교환(상거래)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자조, 자치, 연대의 공동체(마을, 상공인조합, 지방 등)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갈라파고스나 다름없는, 자루 모양의 한반도를 지배한 조선은 정치체 간의 경쟁은 거의 없었고(그래서 가족주의, 사농공상 신분질서, 시장및 상공업 경시, 문관 우위 등 유교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권력=폭력을 통해 일방적으로 수취하거나, 제공하거나, 나누었다. 요컨대 눈치 볼 다른 경쟁 정치체도 없고(영토 지배 목적의 침략은 임진왜란 외에는 없었다), 서로 합의(계약)에 의해 교환을 하는 시장도 너무나 왜소하고, 아니 백안시하고, 온통 배제와 차별의 신분질서와 권력으로 굴러가는 조선사회는 불신, 증오, 균열, 갈등과 권력을 탐하는 욕망이 들끓는 압력 밭솥을 방불케 했다.

일제의 패망으로 압력밥솥을 열어젖히자 그 안에서 내연하고 있던 불신, 증오, 균열과 토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동아시아와 세계를 풍미하던 사상과 문화–계급 투쟁(전쟁)을 통해 모순을 해결하는 사회주의와 파시즘–가, 당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가진 좌익을 지배하면서 통일민주공화국을 위한 민족의 대단결(정치연합)은 더 멀어졌다.

그래서 북쪽의 권력집단들은 2차대전에서 엄청난 피를 흘린 두 승전국 미국과 소련의 협조를 잘 이끌어내는 등, 이들을 잘 이용하여 먼저 통일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소련 군정을 등에 업고, 북쪽에서라도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적폐를 최단 시일 내에 일소해서–민주개혁을 급속도로 추진해서-한반도 차원에서 자신들의 힘(혁명 역량)의 우위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친일을 빌미로 기독교와 자산가들을 악랄하게 탄압했고, 이들은 대거 월남해서 악에 받친 반공세력이 되었다.

남한에서도 좌익은 미국과 소련을 잘 이용해서, 먼저 통일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압도적 힘과 명분의 우위를 이용해서 급격히 좌익 천하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에 적화나 분단으로 가는 흐름을 간파한 이승만은 미군정의 엄호를 받아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좌익을 힘으로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 이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우리는 안다.

사실 한국에서 권력을 잡으면 개인, 기업과 정치적 경쟁자의 생명, 재산, 자유, 명예는 다 권력의 손아귀에 든 작은 노랑병아리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맘만 먹으면 이 작은 노랑병아리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인 역사가 말해 주듯이,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단도 별로 없고, 사후 보복도 쉽지 않다.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법원, 국정원, 선관위, 공정위, 금감위, 공영방송국 등은 야만적 폭력의 견제자가 아니라, 오히려 유력한 집행수단이다.

YS와 DJ 등 정치적 경쟁자들이 1987년에 정치연합을 하지 않은 것은 한 명이 정권을 잡으면, 상대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신컨대 YS나 DJ는 어느 하나가 권력을 잡고, 상대의 정치자금을 캐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정치자금 외에도 경쟁자나 미운 놈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수단은 많다. 검찰의 표적수사, 국세청의 표적조사, 감사원의 표적 감사가 대표적이다. 노무현을 부엉이 바위로 몰아간 표적 조사와 수사는 지금도,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근에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과 (공영방송 이사진을 몰아내는 데 사용한) 법인카드 유용, 방송국 허가 취소 등이 신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몇 년 뒤 정권교체기에도 과거에 사용된 적 없는 신무기들이 여럿 등장할 것이다. 현실과 괴리가 큰 한국 법에는 전임 권력을 죽일 수 있는 수많은 무기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미션(정치적 소명)이 뒤로 가고, 포지션(자리=권력)이 앞으로 온 것은 세비를 받든지, 공천헌금을 받든지, 기업의 입법 로비를 받을 수 있는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지 않으면, 합법적 방식으로는 정치적 생명은커녕 경제적, 육체적 생명도 부지할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판에서 미션이 사라진 것은 권력의 과잉, 집중, 저열과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리더십이 책임져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

요컨대 한국 정치의 선진화, 생산적 정치경쟁과 대승적 정치협력(선진국식 정치연합의 일상화)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권력의 과잉을 해소해야 한다. 이게 정치선진화와 경제선진화 등 모든 것의 근본이다. 특히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금감위, 공영방송국 등을 권력이 함부로 흔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규제 자체를 줄여야 하지만, 규제(법령)에 애매한 요소(자의적 해석 여지)를 줄어야 한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망국으로부터도, 남북 분단과 전쟁으로부터도, YS-DJ 분열로부터도,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도 이 나라와 이 진보는 배운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적백 색맹자들도 그랬듯이, 흑백 색맹자들도 하나같이 자신을 선으로, 상대를 궤멸시켜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천년 왕국을 꿈꾼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상대는 더 빨리 부활한다. 내 안에도 적폐 많고 상대에게도 개혁이 많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는 지금 한국은 유력 정치세력들이 서로 대승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인 모순부조리가 너무나 많은데, 정치적 색맹 정권은 거의 예외없이 이 모순부조리를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세상을 적백 혹은 흑백으로만 보는 색맹이 많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있다. 인간은 원래 선악이나 피아로 세상을 분별하는 색맹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색깔을 구분한다. 하지만 혹독한 폭력을 겪으면 그 상처(트라우마)로 인해 분별력이 퇴화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은 전쟁, 분단, 독재라는 역사적 상처와 저열한 정치의 동원 책략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유아적 이해가 결합하여 적백 색맹과 흑백 색맹이 많아 진 것이다.

그렇기에 문재인정권은 이명박정권이 2008~2009년에 노무현과 진보 세력을 궤멸시키려 하다가 초래한 사태(그게 바로 지금이다)를 보고 배워야 한다.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보는 사람들은 과거 이명박근혜에 대해서도 이를 갈았지만, 지금 문재인과 최승호에 환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혀를 차다가 아예 이를 간다. 1980년대 전두환의 폭정을 보고 느끼던 그 치떨리던 노여움을 느낀다. 흑백 색맹자나 적백 색맹자들은 자유와 정의, 민주와 공화, 진짜 변화와 개혁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역사의 법정에서 내려질 심판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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