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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2-10 09: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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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기업, 재산권 등의 인식과 마인드에서 19세기 한국은 일본 중국보다 엄청나게 뒤져
-사립유치원, 영풍석포제련소, 삼바 사태가 보여주는 후진적·자유말살적·경제 자해적 편향
-미국과 달리 우리는 변칙, 편법시대의 영웅들 범죄자 취급. 그들이 일군 기업군 거의 해체


▲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한.중.일의 경제순위가 19세기로 회귀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97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경제성장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의 저력을 얘기한다. 수천년 동안 축적된 사상, 제도, 국가경영 노하우, 장사 마인드 등. 솔직히 인도, 브라질, 소련, 중동, 아프리카와 비교하면 중국의 저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비해 월등한) 한국의 경제성장의 동인을 찾다가 한국의 저력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대체로 유교와 교육열, 자연환경이 각인시킨 근면성과 억척스러움 등을 들먹인다. 그와 더불어 미국, 일본과 냉전과 GATT체제 등을 얘기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자칭 민주, 진보 동네 사람들의 시장, 경제, 기업, 자유, 재산권, 노동권, 민주주의, 공화주의 등에 대한 인식을 살피다 보면, 지난 5천년 이래 드물게 반짝하던 시대 – 경제적으로 중국을 크게 앞서고, ppp로는 일본에 근접한 시대 – 가 거의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박지원이 열하일기(1780년대 초 출간)에서 통탄한 조선과, 이사벨 비숍 등이 경악한 조선(19세기 말)이 재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중국, 한국을 비교하면, 시장, 경제, 기업, 자유, 재산권, 부 등에 대한 인식과 마인드에서 한국은 두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후진적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사회 철학, 가치, 정책, 리더십 등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얘기했으니 오늘은 딱 하나만 얘기하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와 핵심 권력집단은 아무리 어벙하게 보여도, 예외없이 그 정치공동체 인민의 평균적인 안목(지성)보다 월등히 높은 안목(지성)을 갖고 있다. 물론 안목이 높다고 해서 국가경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는 보통 시민의 지성보다는 월등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 권력자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와 문재인은 아니다.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나름 빼어난 정치감각을 가지고 있고, 문재인 역시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할 정도로 고시에 특화된 머리는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가 경영자로서는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 사람이다.


특히 문재인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평범한 시민의 안목, 한마디로 수백만 촛불 시민의 중간 수준의 안목을 갖고 있다. 이것이 문재인의 (저지른 패악질에 비해) 놀라운 지지율의 비결이자, 대한민국 대재앙의 핵심 원인이다. 솔직히 나는 문재인 때문에 민주, 진보, 개혁에 환호하는 수백만 보통시민의 사고방식과 정서의 구조와 역사적 연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 며칠 사이에 사립유치원(3법), 영풍석포제련소,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 대한 민주, 진보 혹은 자칭 양심적 지식인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과 정서가 엄청나게 후진적이고, 자유말살적이고, 경제 자해적이고, 민주공화 파괴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사립유치원 회계 문제, 영풍석포제련소의 위치, 삼성의 변칙편법 상속 문제 등은 공히 당시 정치와 관료와 기업의 무지와 변칙, 편법의 산물이다. 변칙, 편법으로 성공한 발전의 유산이다.


사립유치원은 일부가 갑질과 좀도둑질을 좀 한다고 하지만, 비용 대비 편익 측면에서 국·공립유치원보다는 월등히 좋다. 진짜 큰 (세금) 도둑은 국·공립유치원, 국·공립학교, 공공기관, 공공부문 종사자들이다. 큰 도둑 있으니 좀도둑 봐주자는 것이 아니다. 개혁의 방향이 돈 엄청 들이고, 국가규제로 칭칭 감아서 사립을 국·공립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유럽 등 선진국이 국·공립이 대부분이라고 해서 처지와 조건이 전혀 다른 우리도 그걸 따라갈 수는 없다. 경로 의존성도 있고, 한국 특유의 공공부문의 성격도 있다.


그리고 세금 좀 지원했다고 해서, 거의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립)학교 수준의 규제를 받으라는 것도 여간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이 규제는 모든 사립유치원을 권력과 관료의 노예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정부지출이 늘고, 밀실에서 밀땅하며 만든, 법 같지 않은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권력과 관료의 노예로 전락하는 영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치의 품질은 결코 높아지지 않고, 자유, 민주, 공화와 보충성 원칙에 대한 이해 역시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금 좀 들어갔다고 해서 – 사실 이것도 바우처 방식으로 학부모에 준 것이다 -칼같이 감사를 해야 한다면, 운영비의 대부분을 국가로부터 받는 정당이야말로 공공성, 민주성, 책임성의 이름으로 까다롭고 투명한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운영 감사도 받아야 한다. 민주적으로 운영하는지 않는지!! 확신컨대 이거 제대로 하면 모든 정당이 아마 민주 참칭 혐의로 해산해야 할 것이다.


영풍석포제련소도 온 나라가 무지막지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지금은 영풍 빼놓고는 다 사라졌지만 일제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낙동강 상류에 수많은 광산들이 있었고, 이들이 엄청나게 많은 중금속 오염 물질을 배출했다. 당연히 상류 계곡에 퇴적이 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시민단체들은 지금 영풍에게 이 모든 오염 원인에 대한 독박을 씌우려 한다. 영풍석포제련소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오염의 원흉이고, 따라서 낙동강 오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단다. 허용만 되면, 영풍그룹과 영풍 대주주의 재산을 몽땅 빼앗아서 피해 보상하라고 할 것 같다. 낙동강 상류와 안동댐 오염과 영풍석포제련소의 인과관계를 차분히 따지는 지역 주민 등은 영풍에 매수된, 양심을 파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광우병 시위 때처럼 이들에게는 선악이 명명백백하다.


이재용 문제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도(회계 분식에 대한 디테일은 잘 모르지만), 그 원인은 말도 안되는 상속세율(최대 65%)에 있다. 몇 십억 증여 받아서 몇 조원의 자산을 만든 이재용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내 지인 중에도 제법 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에 완전히 반하는 세계 최악의 약탈적 상속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 상속세법을 온전히 지키면 – 절대로 지킬 리가 없지만 – 모든 기업은 결국 국민연금 소유가 되지 않을 수없다. 포스코 KT 농협 대우조선해양처럼 되어, 정권의 전리품이 된다는 얘기다. 이전 정권이 임명한 경영자와 이사는 주로 검찰 표적 수사와 국세청 먼지털기 조사를 통해서 사소한 비리 혐의라도 잡아 끌어내린다. 독점 업역이 있는 공기업이야 그래도 망하지 않겠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하는 민간기업은 생존하고 발전할 수가 없다. 이게 가능하다면 사회주의가 왜 망했겠나?
언급한 복잡미묘한 현안들은 각각 수많은 쟁점을 갖고 있어서 짧게 얘기할 수 없다. 아마 실정법을 들이대면 위법, 편법 시비 거리가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 너나 할 것 없이 무지막지한 시대가 남긴 역사적 유산(이게 적폐일 수 없다)을 어떤 방향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너무 없다. 미국도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 기업들의 행동이 어땠는가? 록펠러, 카네기, 에디슨, 밴터빌트 등이 한 짓을 보라. 미국은 이들이 만든 기업, 이들 기업군에 속해있던 기업들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변칙, 편법 시대의 영웅들을 거의 다 범죄자로 만들고, 그들이 일군 기업군들을 거의 해체했다. 그래서 채권단 등에서 전문경영인이라고 내려보냈지만 제대로 일군 기업 많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이다.


사립유치원, 영풍석포제련소, 이재용에 대해서도 그 놈의 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법 정신이 무엇인지도 묻지 않고, 그저 법 어겼으니 단죄하라는 목소리만 크다. 그리고 목소리 큰 놈은 이를 다음 선거에 써 먹으려 한다. 그리고 이런 자들이 만드는 선악 프레임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광우병 시위 때처럼 ‘우우’ 하며 미래를 작살낸다. 무지막지한 시대의 유산을 어떻게 처리하여 후세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 것인지 고민이 너무 없다.


지금 북한과 중국의 격차가 바로 18세기 말 조선과 청나라의 격차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 북한과 남한의 격차는 19세기 말 조선과 일본의 격차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니, 그 사고방식과 정서와 행태를 보니, 21세기 중반이나 말 쯤에는 18~19세기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 까 한다. 일본이 한참 앞서고, 중국이 중간, 우리는 현저하게 처지는 악몽같은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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