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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2-02 21:39:19
  • 수정 2018-12-02 21: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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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이영일 학형의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출판 기념회에 다녀왔다. 4.19 세대의 정치회고록을 읽고 느낀 독후감을 보낸다.


▲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책 표지

[이영일의 회고록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4.19 主役의 한사람 이영일은 이제 나이 80이 되어서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회고하면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직 대통령 세 분을 미워할 수 없다고 말한다.


著者 이영일은 日帝 末期에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해방을 맞아 분단된 남한에서 미군정하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곧이어 6.25 戰亂을 견디고 대학에 입학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른바 미국식 機能主義 American functionalism 문명의 세례를 받은 한글세대에 속한다.


그를 비롯한 4.19세대들은 이승만 정부의 운영이 대학에서 배운 자유 민주주의 절차가 부정 선거로 얼룩지고 기업인들의 부정축재로 시장경제의 질서가 교과서대로 바로서지 않았다는 정치 현실에 맞서 당시 이영일과 같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3학년 故 李秀正이 쓴 선언문에서 밝혔듯이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진리의 상아탑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와”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그러나 저자는 4.19후 서울대에서 시작한 전국대학생 민족통일연맹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만난 친북인사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이승만의 小南韓單政路線 비판이 남로당을 앞세운 북한 조선노동당의 한반도 공산화 선전 전략이었다는 사실을 간파하면서부터 남한에서 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미국식 기능주의 문명을 심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성취를 이룬 이승만의 건국 공로를 재평가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 지난 11월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출판기념회


5.16 쿠데타 후 저자는 민족통일연맹 활동으로 혁명재판에서 7년형을 받았으나 아직 학생신분이라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배려로 형 면제조치를 받고 1년 가까운 서대문 형무소 생활을 면한다. 그리고 1965년 한독당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징역을 살고 무죄로 석방되기도 했다.

이런 前歷 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려서 제대로 된 취직도 힘들었다.


그런 어려운 와중에서 저자는 혁명이후를 준비하지 못한 4.19를 반성하고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혁명적 조치를 평가하는 사회과학도로 성숙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4.19와 5.16은 쌍둥이 관계라는 저자의 인식은 과연 놀라운 통찰이다. 불과 1년여 시간차로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두 사건은 20세기 한국근현대사에서 미국식 기능주의 문명을 수용하면서 농업사회에서 근대적 산업사회로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았는가.


▲ 지난 11월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출판기념회


저자 이영일이 우여곡절 끝에 통일원에 들어가서 박정희 시대 통일정책수립에 참여하듯이 많은 4.19세대들은 박정희 시대 정부, 학계, 언론, 대기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박정희 시대, 특히 70년대 4.19세대들은 아직 30대 청년들이어서 사회각계에서 유망한 중견이었을 뿐 아직 지도적인 지위에 오를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박정희 이후 박정희 키즈(kids)들이 집권한 80년대야 말로 4.19세대들이 40대에서 50대를 바라보면서 사회각계의 지도층으로 부상하던 시기를 만난다.


저자 이영일도 5공화국시대 신군부의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전두환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으로 권력주체가 되었다.


그가 至近에서 본 전두환은 “지금껏 알고 지낸 여타의 정치인들과 다르게 대통령을 꿈꿔온 적은 없으나 시대가 자신에게 대통령직을 떠맡겼을 때 이를 용기 있게 받아들인 지도자”였다는 것.


▲ 지난 11월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출판기념회


그래서 저자는 전두환의 단임 정신을 실천하여 약속을 지킨 것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김대중 사형집행을 막고 신병치료 명분으로 미국에 가도록 한 전두환 대통령의 조치는 레이건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조건이었다는 항간의 인식과는 달리 “단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포석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중화학 공업 프로젝트 등 여러 가지 일을 벌여만 놓고 죽은 미완의 산업화 功績이 전두환 정부의 성공적인 경제발전 성과가 없었다면 역사적으로 평가받기 힘들다는 관점을 내놓았다.


한국의 정치경제사에서 1980년대 한국경제의 追越발전이 김재익이라는 경제 가정교사와 三低라는 국제경제의 好材에 힘입었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에서 유능한 경제 관료를 選任하고 국제경제적 好期를 놓치지 않은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해주신 분들마다 이 시국에 이런 책을 낸 저자의 용기를 언급하였다. 아마도 저자가 이승만 박정희에 이어 요즘 우리사회에서 bête noire 로 매도되고 있는 전두환까지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으로 그분의 잊혀진 공적을 평가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저자 이영일은 時流에 따라 소신을 꺾거나 자신과의 史的인 인연에 휘둘리는 그런 나약한 지식인이 아니다. 4.19 시절 내가 기억하는 이영일은 통일한국의 문화선전상이라는 꿈을 토로했던 남다른 visionary 였다.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저자: 이영일

 -출판사: HadA (070-7090-1177)

 -374쪽

 -18,000원


[평자: 김준길]

<서울대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필리핀 아태대학 한국학 프로그램 주임교수, 駐美공보공사, 駐佛 공보관, 서울신문 견습기자, 同사회부차장, 한국일보 주간부,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 역임/경기고~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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