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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1-14 11:27:39
  • 수정 2018-12-05 21: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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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암골딩의 소설 파리대왕 표지


우리나라 크리스찬들은 지성보다는 영성을 강조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런 내용을 말하는 연구 결과나 서적을 본 적은 없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면서 보고들은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은 ‘믿음은 설명할 수 없으니 일단 받아들여라’는 기조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일단 받아들여라’는 메시지까지는 수긍할 수 있지만 신앙 생활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의문이나 논리적 정합성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도 믿음이 부족한 현상처럼 간단하게 평가절하는 태도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영성을 강조하면 지성은 허접해도 되는 걸까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목사님이나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식한 예수님, 무식한 소리를 내뱉고도 자신이 무식한 소리를 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예수님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크리스찬들의 빈약한 지성을 심각하게 여기게 된 계기의 하나가 바로 영화와 소설로 접한 <파리대왕>이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목사님 중에도 영화를 소재로 설교를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 분 설교를 찾아본 적도 있었는데, 역시나 <파리대왕>을 소재로 한 설교는 없더군요.


우리나라에 많은 목사님들과 신학대학 교수, 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거기에 더해 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파리대왕>이 가진 종교적 상징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설명하시는 분들이 거의 안 계신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파리대왕>을 처음 접한 것은 비디오를 통해서였습니다. 대학 시절에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신문에 이 작품을 해설하는 글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흔해빠진(?) 노벨상 수상작의 하나려니, 그렇게 치부하고 잊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쯤 당시 유행하던 비디오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었고 비디오를 고르지 못하다가 속는 셈치고 집어든 것이 <파리대왕> 비디오였습니다. 무슨 마음을 먹고 그 작품을 골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새벽 1시쯤 비디오를 튼 뒤에 한번도 멈추지 않고, 거짓말 좀 보태자면 숨 한번 돌리지 못하고 꼬박 다 봤습니다. 비디오를 다 보고 나서도 충격 때문에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탓일까, 나에게는 이 작품이 ‘성경적 관점에서 해석한 인류 역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작품은 상황과 스토리 그리고 등장인물 등 전체가 일종의 상징입니다. 그런 상징은 방대한 문화적 축적과 역사적 배경, 서사적 자산이 있어야 문학 작품의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서양 문화의 배경 특히 헤브라이즘의 정신적 젓줄에서 받아먹은 신앙적 서사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그 상징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파리대왕의 원제 ‘Lord of the flies’는 명백하게 성경에 나오는 악마 바알제붑의 영어식 번안입니다. 이 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돼지 머리에 까맣게 달라붙은 파리떼들 그리고 그 돼지 머리가 섬에 표류한 소년들의 종교적 숭배의 대상 즉 우상이 된다는 사실에서 명백해집니다.


작품의 무대는 대양 속 외딴 무인도. 전쟁을 피해서 어디론가 가던 소년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그 섬에 표류해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이 겨우 13살. 우리나라로 치자면 초등학생들로만 구성된 사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른도 있기는 했지만 그는 불시착 과정에서 의식을 잃은 비행기 승무원으로서 그에게 어른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상황 자체가 매우 성경적입니다. 소년들은 원래 자신들이 속해 있었던 정상적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느닷없이 떨려나와 완전히 문명과 절연된 섬에서 자신들만의 힘으로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어른은 의식을 잃어서 소년들을 지도해줄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실락원(paradise lost) 자체입니다. 인간은 질서와 안정, 은혜로 가득찬 하나님의 세계에서 버림받고 그곳에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약속을 전해주는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의 역사는 그 제사장들이 현실적으로 무능하고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비행기 추락으로 의식을 잃고,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비행기 승무원은 바로 구약 세계에서의 이 제사장을 상징합니다.


나중에 이 승무원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숲으로 뛰어가 실종됩니다. 소년들은 섬의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괴성을 듣고 거기 괴물이 산다고 믿고 그 앞에 돼지머리를 막대기에 꽂아 올려둡니다.


일종의 제사를 드려 괴물을 달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 괴성은 숲속으로 뛰어들어간 승무원이 발작을 일으키며 죽기 직전에 지르는 비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제사장들이 자신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타락할 때 오히려 인간의 신앙을 왜곡하는 사교나 잘못된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학적 상징일 것입니다.


소년들은 자신들끼리 질서 유지를 위한 장치를 만듭니다. 가장 연장자인 랠프를 지도자로 뽑고, 커다란 소라 껍질을 부는 자가 회의를 소집하는 권한을 갖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질서를 상징합니다.


랠프는 섬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보다 어른들에게서 오는 구원(save)에 더 중점을 두는 지도자입니다. 섬의 높은 언덕에 모닥불을 피우고 동생들에게 그 불을 꺼트리지 말라고 강조하죠. 지나가는 배나 비행기가 그 연기를 보고 자신들을 구원해줄 가능성에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붉은머리 잭은 정반대 스타일입니다. 그는 구원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른들이 와서 구원해줄 것을 기다리느니 섬의 생활에 적응해 잘먹고 잘살자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래서 그는 섬에 사는 야생 돼지를 사냥해서 동생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가장 전형적인 두 개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는 언젠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save)이 올 것이라고 믿고 그 약속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언덕 위의 모닥불을 지키는 랠프의 태도가 그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가 성전의 불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을 연상시킵니다.


잭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젠가 어른들이 자기들을 구하려 와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당장 이 섬에서, 현재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생활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니 언덕 위의 모닥불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현실 생활 위주의 태도가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비극을 예고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소년들 사이의 리더십은 점차 랠프에게서 잭에게로 옮겨가게 됩니다. 아는 게 많지만 지독한 근시인 피기(지식인, 과학자를 상징)와 가장 도덕적인 성품과 판단력을 가진 사무엘(성경적인 예언자를 상징)이 랠프를 돕지만 상황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피기의 안경은 소년들이 불을 피우는 데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지만 결국 잭 일당에게 뺏기고 맙니다.


스토리는 점점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으로 치달아갑니다. 피기는 소년들이 굴린 바위에 맞아 죽고, 사무엘은 동굴 속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것을 알려주려고 해변에서 광란의 춤을 추는 소년들에게 달려가지만 오히려 괴물로 오인되어 소년들의 창에 난자되어 죽습니다. 이는 실제 현실 속 참된 지식인과 예언자들이 처하는 상황에 대한 문학적 전형화일 것입니다.


소년들은 이제 잭의 영향에 완전히 동화됩니다. 잭은 소년들의 얼굴에 울긋불긋한 색칠을 합니다. 우상과 그를 숭배하는 무리들을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그들의 성품도 점차 그 우상을 닮아갑니다.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침내 혼자 남은 랠프를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크지 않은 섬이지만 숲속에 숨어있는 랠프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년들은 섬에 불을 지릅니다. 산불을 피해, 동료였던 소년들에게 쫓겨 랠프는 토끼처럼 달아납니다. 먹이인 돼지를 잡던 나무창은 이제 동료이자 과거의 지도자였던 랠프를 죽이기 위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랠프는 쫓기다 쫓기다 결국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도망갑니다. 이제 도망갈 길은 없습니다. 소년들은 괴성을 지르며 최후의 타격을 가하기 위해 그에게 달려옵니다.


그때, 문득 랠프의 눈에 보이는 모습.


모래를 밟고 선 어떤 다리. 군화를 신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봅니다. 군복 바지와 허리띠 그리고 그 위의 상의와 마침내 장교 모자를 쓴 어른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 뒤로 보이는 군인들.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그보다 더 멀리 먼 바다에 거대한 해군 함정이 떠 있습니다.


랠프 뒤로 잭의 일당이 도착합니다. 괴성을 지르며 친구를 죽이기 위해서 살기등등하던 그 소년들은 갑자기 멈춰서서 초라한 어린애들이 됩니다. 단 몇 초 전과 지금 현실 사이의 그 처절한 괴리! 그들은 멍하게 서서 랠프와 장교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그들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물감은 그들이 장교와 원래 같은 세상에서 왔다는 사실을 잔인하게 부인합니다.


흐느껴 우는 랠프와 잭 일당을 바라보며 장교는 어이없다는 듯이 묻습니다.
“너희들 지금 여기에서 뭐하는 거냐?”


성경에서 이 장교의 발언과 거의 1대1로 매칭되는 발언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장 9절)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하나님의 대화법 가운데 하나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인간이 자신의 처지와 행동을 돌아보게 만드는 결정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던지는 최초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어야 하는 아담의 처지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상황입니다. 바로 전까지 하나님과 거리낌없이 마주 대하며 대화할 수 있었던 아담이 이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와 그 심각성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질문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파리대왕> 마지막 장면에서 장교가 소년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향해 던지는 질문과 동일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이 작품 마지막 장면은 바로 랠프가 그렇게 고대하던 어른들 세상으로의 회귀 즉 구원이 어떤 형태로 올 것인지를 거대한 상징으로 보여줍니다. 랠프가 그렇게 고심하며 지키려고 애썼던 모닥불은 결국 어른들을 부르지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잭 일당의 범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지른 산불이 거대한 연기가 되어 어른들이 눈길을 끌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 세상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임할 것인지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잭 일당이 자랑하던 나무창은 거대한 군함과 어른들의 무장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가요. 우리 인간 세상의 권세와 위력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유추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파리대왕>을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류 역사로 이해합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주위의 크리스찬들에게 전파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거의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딱 두 사람, 교회 고등학생 한 녀석이 ‘어마어마한 충격’이라며 작품에 푹 빠져든 적이 있었고, 젊은 전도사 한 분이 내 추천을 받아 비디오를 보고나서 ‘정말 놀랍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온 적이 있었습니다.


크리스찬들이 이 작품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크리스찬으로서 이해하는 성경 메시지의 핵심을 이 작품에서 읽은 게 사실입니다. 이 작품을 모르고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도 아무런 성경적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분들의 영성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건 성경 자체의 메시지도 거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 아닐까요.


한국 교회가 가진 문제의 핵심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외람되지만 감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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