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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0-24 09:17:07
  • 수정 2018-10-25 07: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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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순방중 프랑스 도착해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7박 9일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최근 귀국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51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브뤼셀 아셈(ASEM)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교황청 등을 방문한다는 일정이었습니다.


이번 유럽순방의 성과에 대해 국내 언론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해외의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제재 완화 주장이 냉랭한 반응을 얻었다고 보도한 일본의 산케이신문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WSJ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순방이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무엇보다도 대북 압박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위험을 초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언론들의 보도도 그렇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유럽순방에서 가장 강조했던 대북제재 완화는 거의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대북제재의 필요성과 대의명분만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조선일보의 경우 [문 대통령 유럽 순방 사실상 외교 事故 아닌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국 외교는 ‘남북’에 빠져 방향 감각을 잃은 채 북핵 해결의 정도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이번 유럽 순방은 사실상 외교 사고(事故)나 마찬가지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번 아셈 정상회의가 19일 의장 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방법’으로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는 점입니다.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도 CVID 방식으로 없애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에 대한 정면 반박입니다. 정상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특정 국가 그것도 한국처럼 비중있는 국가 수반의 요구가 이렇게 공식적인 성명 형태로 반박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사고’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고 ‘참사’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결과입니다.


대조적인 것은 아베 일본총리의 외교 행보입니다. 아베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난 이틀 뒤인 17일에 마크롱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제재 완화 요청에는 정면으로 거부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베 총리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마치 작심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면박하기 위해서 일본-프랑스 두 정상이 만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갖게 됩니다.


이번 마크롱-아베 두 정상의 합의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나라가 방위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주로 해양 분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춘 이 협력 방안에는 자위대와 프랑스 군의 공동훈련 및 함정 상호 파견 확대 등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프랑스 두 나라의 방위협력 특히 해양 분야의 협력은 명백하게 중국에 대한 견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대일로 등 중국몽에 함께 하겠다고 밝힌 문재인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노선인 셈입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유럽 순방의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준비해간 대북제재 완화 메시지를 반박하고 무력화하고 봉쇄하기 위한 어떤 힘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조차 받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예상하고, 거기에 대한 대응을 조직화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그런 힘이 작용했다면 그것은 트럼프 미국 정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트럼프와 가까운 사이인 아베 총리의 행보와 발언을 지켜봐도 그렇고, 기타 이번 아셈 회의에서 제기된 사안에 대한 미국측 대응을 봐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 방문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 시간으로 18일 교황을 예방해 북한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교황이 내놓은 반응이 과연 방북 수락이냐 아니냐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즉각적인 거부 의사는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 예방 직후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났던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사망 원인을 ‘고문’으로 규정하고 사악한 행동이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과연 헤일리 대사의 발언이 문재인과 교황의 만남을 의식한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교황은 종교적 상징성이 큰 존재라는 점에서 ‘미국 시민이 북한 정권의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는 미국측 인사의 발언은 교황의 방북에 대해 던지는 매우 심각한 경고 메시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종교인 가톨릭의 수장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북한 정권과 체제의 정당성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인정해주는 결과가 되고, 이는 결국 정치와 외교적 측면에서 북한의 입지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헤일리 대사의 발언은 교황에게 “미국과 북한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이 꼭 과장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들어 트럼프 정부가 세계 각국 정부와 나아가 국제기구를 향해서도 “미국과 중국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교황의 북한 방문은 국제외교의 역학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갖습니다. 헤일리 대사의 ‘웜비어 고문 사망’ 주장은 거기에 대한 미국의 강한 태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셈회의 직후 유럽의회는 북한을 세계 최악의 종교자유 침해 국가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이란,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과 함께 세계 최악의 종교자유 침해국으로 꼽은 것입니다. 교황으로서는 북한 방문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적지않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메시지입니다. 종교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국제 외교무대에서 국가 간 역관계를 고려하며 교황청의 위상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교황 입장에서 과연 방북이 가능할지 의문스럽습니다.


사실, 교황의 방북에 대한 미국측의 견제 메시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순방 이전에 이미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순방 직전인 10월 10일에 워싱턴DC에서 열린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의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미북,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 개선이 필수”라고 강조하고,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교황 초청은 진정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 The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접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단체가 2001년 10월 외교정책 및 인권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출범한 단체라는 점,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그 행사를 비중있게 보도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발언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황의 방북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유럽순방에서 가장 큰 성과 아니, 어쩌면 거의 유일한 성과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성사된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국내의 언론보도만 믿고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것이라고 믿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총체적으로 판단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유럽순방은 크나큰 숙제를 떠안게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대북제재 완화 메시지는 차디찬 반응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 그리고 일본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이 원칙적으로 CVID 등에서 비타협적인 자세를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문제를 풀어보려고 갔다가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꼬이게 만든 결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북제재 완화라는 목표로 가는 길에는 훨씬 더 견고하고 높은 장벽이 세워졌습니다. 우리 속담으로 치자면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달고 온 셈이랄까요?


특히, 대북경협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의 국내 은행들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제재 완화 메시지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유럽 순방은 단순히 미국 정부를 상대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입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대북제재 완화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말 그대로 미국을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겠다는,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으로 돌리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유럽순방의 결과에 대한 참모진의 우려에도 “걱정말라”며 “이번 유럽순방의 성과는 매우 좋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두고 보라”며 향후 대북제재 완화나 김정은 서울방문, 종전선언 등이 계획대로 이뤄질 것이란 자신감을 피력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문재인정권이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근거도 있고 자신감이 있어서 하는 얘기겠지만 시쳇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깁니다. 요즘은 ‘정신승리’라는 표현도 많이 쓰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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