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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2 15:02:35
  • 수정 2018-01-22 17: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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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한 미국과 영국에서 여느 선진국보다 기대수명 낮고 10대 미혼모 많아

-가난한 어린이는 뇌가 제대로 발육하지 못해 어른이 돼서도 중산층 출신과의 경쟁에서 패배

-가혹한 환경에 살면서 젊어서 죽을 운명인 동물은 자구책으로 일찍 새끼 낳아 얼른 성장시켜

금융위기 등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1%(수퍼부자) vs 99%(서민층)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미국 금융계의 중심지인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시위를 벌일 만도 했다. 2011년 9월 17일 시위대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운동을 전개해 세계적인 반향을 이끌어 냈다.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우리는 99%다(We are the 99%)”였다. 1%의 수퍼부자가 경제력을 독점하는 양극화 현상을 이만큼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10억 달러 이상 재산을 가진 부호는 전 세계적으로 1226명이다. 그러나 상위 소득 1%에 들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2010년 현재 연간 소득이 세금 공제 전에 35만 달러이면 상위 1%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3분의 1은 기업체 임원, 14%는 금융 부문 종사자, 16%는 의사이다. 1%의 수퍼부자가 미국 경제력의 40%를 지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기대수명이 짧은 여성일수록 어린 나이에 첫아이를 임신한다


미국 사회처럼 극소수에게 부가 몰리는 소득 불균형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될수록 범죄가 급증함은 물론 경제적 소외계층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의 사회적 요인을 분석하는 연구로 유명한 ‘화이트홀 스터디(Whitehall study)’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에서 20~64세의 남녀 공무원에 대해 건강상태, 특히 심폐질환과 사망률을 조사하는 이 연구는 2단계로 진행된다. 1967년부터 10년 동안 남자 1만8000명을 대상으로 1단계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85년 시작된 2단계 연구는 남녀 1만여 명에 대해 공무원 직급과 사망 원인의 상관관계를 분석 중이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로 학습 능력 떨어져

이 연구를 주도하는 영국 칼리지런던대(UCL)의 유행병학자인 마이클 마모트에 따르면 최하위 직급의 공무원은 최상위 관료보다 심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컸으며, 직급이 낮아질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결국 건강이 나빠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마모트는 사회경제적 지위(SES)가 낮은 하위 직급 공무원은 소득 불균형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유행병학자인 노팅엄대의 리처드 윌킨스와 요크대의 케이트 피게트 역시 2009년 3월 함께 펴낸 <정신의 수준(The Spirit Level)>에서 마모트와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빈곤 그 자체보다 빈부 격차가 질병, 사망률, 10대 미혼모, 폭력 따위의 사회적 문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경제적 양극화가 가장 극심한 미국과 영국에서 여느 선진국보다 기대수명이 낮고 10대 미혼모가 많은 것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소득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회학자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끝내 가난하게 살아가는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가령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1867)에서 가난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가 자신의 보수를 능가하는 가치를 생산하고서도 이 잉여가치를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1959년 미국 인류학자인 오스카 루이스(1914~1970)는 ‘빈곤의 문화(culture of poverty)’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루이스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까닭은 사회적 요인보다는 개인이 속한 집단의 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의 어느 이론도 가난의 대물림 현상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론이 인지신경과학 분야에서 발표되었다. 인지신경과학은 지각·언어·기억·학습과 같은 인지 기능이 뇌의 신경회로에서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융합학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마사 파라는 어린 시절 가난이 인지 능력의 발달을 저해해 성인이 된 뒤 사회경제적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을 내놓은 것이다.

2006년 <뇌 연구(Brain Research)> 9월 19일자에 실린 논문에서 파라는 궁핍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 중산층 자녀보다 용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작업기억은 가령 바둑을 둘 때 포석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당면한 과제와 관련된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다. 작업기억은 언어의 이해, 읽기, 문제 해결에 대한 결정적인 능력이다. 파라에 따르면 가난한 어린이는 열악한 환경에서 뇌가 제대로 발육하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중산층 가정 출신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결국 사회경제적으로 하위계층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라의 획기적인 연구 결과는 미국 코넬대의 게리 에번스와 미셸 샘버그에 의해 이론적 타당성이 확인되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어린이들의 뇌 기능 발육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밝혀내기 위해 백인 남녀가 엇비슷하게 섞인 195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실험 대상자들이 평생 동안 받는 스트레스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혈압·비만·호르몬 등의 수치를 조합한 지수의 값을 산출했다. 이 지수의 값이 높은 사람은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중산층 가정 출신보다 이 지수가 더 높게 나타났다. 작업기억의 용량 역시 차이가 났다. 중산층 출신의 작업기억은 평균 9.4건을 보유하지만 빈곤층 출신은 8.5건에 머물렀다. 두 가지 연구 결과에서 가난한 사람은 어린 시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작업기억이 손상당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2009년 <미 국립과학원 회보(PNAS)> 온라인판 3월 30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가난이 대물림되는 까닭은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서민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건강이 악화되고, 그런 가난한 부모를 둔 탓에 평생 동안 밑바닥 삶을 꾸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말이 있긴 하다. 집안 살림이 궁핍한 것은 가족의 무능 탓이므로 제3자가 나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각종 사회문제를 순전히 당사자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복지국가 건설을 꿈꾸는 서구의 진보 좌파 정치인들은 사회 밑바닥 계층의 빈곤과 반사회적 성향에 대해 사회구조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이 정치적 정당성과는 별개로 생물학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아버지 사랑 많이 받을수록 머리 좋아

가혹한 환경에 살면서 병에 걸리기 쉽고 젊어서 죽을 운명인 동물은 자구책으로 일찍 새끼를 낳아 얼른 성장시킨다. 고달픈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 역시 10대에 자식을 낳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미시간대의 보비 로는 세계 각국의 여성이 아이를 갖는 시기와 기대수명의 관계를 분석했다. 2008년 계간 <비교문화 연구(Cross-Cultural Research)> 8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기대수명이 짧은 여성일수록 어린 나이에 첫아이를 임신한다고 보고했다. 영국 뉴캐슬대의 대니얼 네틀은 선진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했다. 영국의 8000 가구를 분석한 결과 가장 궁핍한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50년에 불과해 부유한 사람보다 20년 가까이 적었다.

2010년 격월간 <행동생태학(Behavioral Ecology)> 3~4월호에 ‘빨리빨리 살아버리고 일찍 죽는다(Dying young and Living fast)’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가난한 여자는 어린 나이에 첫아기를 임신하며 단기간에 여러 자식을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10대에 서둘러 어머니가 되는 현상은 미국 흑인사회에서도 확인되었다. 부유한 사회의 여인이 30대에 첫 임신을 하는 반면 가난한 지역의 여자가 20대 이전에 출산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밝혀진 셈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무책임한 아버지 때문에 지능 발달도 더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은 도박이나 범죄에 휩쓸리기 쉽고 바람을 피울 가능성도 크다. 아버지가 가출한 가정에서 자란 소녀는 성적으로 조숙해 어려서 임신을 하기 쉽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지능 발달도 더디다. 2008년 격월간 <진화와 인간행동(Evolution and Human Behavior)> 11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네틀은 1958년 3월 영국에서 태어난 1만7000명을 분석한 결과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식일수록 지능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궁핍한 집안의 딸들에게 조기출산이 열악한 환경에 대처하는 생물학적 전략이라면 이는 결코 개인의 선택으로 볼 수만은 없는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2010년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는 7월 17일자 커버스토리에서 가령 많은 예산을 투입해 성교육을 강화하더라도 10대 미혼모를 줄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일자리가 제공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희망을 걸게끔 누구나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공명정대한 사회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하층 서민의 복지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경제적 과제는 소득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빈곤감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99%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점령하라’ 시위 이후 각국 정부는 살인적인 청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으며 대기업의 탐욕을 다스리거나 수퍼부자의 초고액 연봉을 규제하는 법령도 만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발표되는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큰 틀에서 엇비슷한 것도 그 때문이다. 12월 19일 ‘점령하라’ 세대의 표심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출처 : 중앙SUNDAY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있다> (2012. 11. 18)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이인식 inplant@hanmail.net / 지식융합연구소장/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은 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로 불린다. 조선일보, 중앙선데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겨레 등 신문에 550편 이상의 고정칼럼, 월간조선, 과학동아, 나라경제 등 잡지에 170편 이상의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저서로 는 ‘4차산업혁명은 없다’,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 등 49종이 있다. 청색기술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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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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