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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양정상회담에 대한 언론보도, 황당하고 민망할 정도 - [한동대 송인호 교수의 글] - 언론, 자유·민주·인권·정의 가치 지키는 파수꾼역할 다해야 - ‘인권과 정의’ 이슈가 간과된 평양정상회담, 억류자 석방 없어 아쉬워
  • 기사등록 2018-09-30 13:51:47
  • 수정 2018-09-30 14: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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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 송인호 교수가 “평양정상회담”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글을 지난 9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용이 좋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하여 이 글을 전재한다.


▲ 북한 공연단이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남북정상회담 축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중 문재인 대통령 방문을 환영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평양=뉴시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3차 정상회담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합의문의 문언만 엄격하게 분석한다면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기존 합의를 반복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래도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게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1992년에 이미 ‘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까지 체결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음에도 제1차 북핵 위기, ‘한반도 비핵화’ 문구를 둘러싼 남북한의 해석의 차이(북한은 남한 내 핵무기 철폐 뿐만 아니라 미국의 남한에 대한 핵우산 철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해왔지요) 등의 이유로 흐지부지된 적이 있는 것처럼, 여전히 이행이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제재 국면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번 대화를 통해 군사분야에서 기존에 북한에서 요구하던 여러 사안에 대해 우리가 상당부분 유연한 태도로 양보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한 만큼 북한에 대해 더욱 검증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즉, 신중하고 냉철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한미동맹의 약화 위험성이 존재하는 사안인 만큼 역발상의 관여정책을 추진해본다고 하더라도 한미동맹의 견고화 방안 및 보완책, 만일 북한 비핵화 속도가 현저히 지연되거나 북미관계가 우리의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를 대비하여 조건부핵개발선언 등 다양한 대책의 적합성을 검토하여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00여 년 전 역사가 증명하듯 안보 문제에서는 외국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상대에 대해 막연한 희망적 사고에 기해 방심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며, 철저한 자주적 유비무환의 자세가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대북 정책과 관련하여, 독일이 통일된 지 이제 거의 30년이 되어가지만, 1960년대부터 ‘대화와 협력’, 그리고 ‘인권과 정의’라는 투 트랙 정책을 중도우파 기민당 정권과 중도좌파 사민당 정권간의 주기적인 교체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온 서독의 사례가 남북관계에 주는 시사점은 여전히 크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비핵화 이슈를 둘러싼 교착 상황 속에서 ‘북한에 대한 적극적 관여를 통한 비핵화 견인’이라는 발상의 전환 전략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권과 정의’의 이슈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한국인 억류자 석방문제입니다.


몇 년 전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임현수, 케네스 배 등 여러 사람이 비슷한 사유(간첩, 선교행위)로 북한 당국에 체포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 주민들 돕는 사업을 하면서 이미 북한과의 협력사업을 하던 분들인데 북한 측의 사실상 초청을 받고 북한에 들어갔다가 체포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캐나다 국적인 임현수, 미국 국적인 케네스 배 등은 모두 석방이 되었고, 그 외 미국인 억류자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 전에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혐의로 억류된 한국인 억류자들은 올해 이루어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류되어 있는 겁니다.


정말 북한 김정은 정권이 신뢰와 우정을 보여주고 싶다면 북미정상회담 전 미국인 억류자들을 석방한 것처럼 이번 3차 정상회담 전에 석방을 했어야 합니다. 우리 정부도 지난 5월, 7월, 청와대와 통일부 관계자가 석방을 위해 물 밑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번 3차 정상회담에서 그렇게 우리 대표단을 극진히 대접한다고 선전하면서 여전히 한국인 억류자들은 석방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추석을 앞두고 있는 이 시기에 석방을 했다면 억류자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정말 남북 관계가 조금씩이라도 변화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북한의 현 정권을 조금이라도 신뢰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억류자 미석방 사안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진심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여전히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역시 3차 정상회담 과정에서 억류자 석방 사안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인지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큽니다.


▲ 북한 공연단이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남북정상회담 축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평양=뉴시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한편 이번 평양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제일 아쉽고 심지어 황당하기까지 한 부분은 바로 언론의 태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직접 대화의 상대방인 정부는 때로는 사안에 따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겉으로는 어느 정도 북한 정권의 장단에 맞춰주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언론과 전문가들은 대북 정책의 여러 측면들을 냉철하게 분석, 비판하면서, 정부의 정책 방향의 긍정적, 부정적인 측면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어 대북정책의 균형적 시각을 찾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정부의 역할과 언론, 전문가의 역할은 다릅니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가 정부의 대북 협상력을 더 높여줄 수 있습니다. 결국 거시적으로 협업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여준 대부분의 언론의 태도는 특히 지난 70년 간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국제사회로부터 아동인권 침해를 이유로 비판받는 집단체조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강제 동원된 1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놓고 아장아장, 귀엽다, 너무 멋진 장면이라고 극찬하는 모습, 새벽부터 강제 동원되어 길거리에서 환영하는 인파들을 바라보며 평화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김정은 답방시 서울 시민들은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인지 지적하는 언론의 모습...


과거 30~40여 년 전, 우리도 중고생들 위주로 집단 매스 게임이 있었고, 국가적 행사시 길거리에 도열해서 반강제적으로 손을 흔들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체제 분위기를 국민들의 손으로 바꾸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수개월간의 인권침해적 강제동원이 이루어지는 아동들의 집단체조와 강제동원된 시민들의 인위적인 환영 열기를 ‘언론’이 ‘찬양’하다니요. 이미 2014년부터 유엔에 의해, 인권침해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 촉구 결의가 이루어진 북한의 최고통치자에 대한 온갖 미화가 ‘언론’과 정치권에 등장하는 것 역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북한산 송이를 미상봉이산가족에게 보내도록 했다는 북한 측의 말을 대단한 선심처럼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자체를 더 확대하지 않았던 북한 측의 기존 행태를 지적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태도입니다.


백두산 천지의 감동에만 빠져드는 감상적인 마음을 얼른 추스리고 평양 밖의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수 십만 명의 고통과 수백만 명의 계급제적 억압 하에 있는 기층 민중들을 떠올리는 자세, 이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자유’와 ‘인권’, ‘민주’를 외치며 발전시켜온 ‘인권감수성’ 아닐 런지요? 언론의 역할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해주는 역할이라고 봅니다.


전략적 인내, 대화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중심을 지키는 자세, 평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는 소중한 것이지만 교전상태가 아닌이상 그 자체를 무조건적인 절대적 목적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평화, ‘인권과 정의’가 수반되는 평화를 지혜롭게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단순한 감상에서 벗어나 중심을 잡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도 거시적인 방향의 측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권 이슈를 경원시하는 것으로 인식(오인)되어 국민들과 국제사회로부터 자칫 배척되지 않도록 단어 하나 문장 한줄까지 더욱 세심하게 신경쓰는 자세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고, 언론은 ‘자유와 민주’,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후배 세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대로 이 시기를 설명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덧붙임 : 정부의 핵심 관계자가 ‘우리 사회의 일각에는 모든 것을 비판, 비관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을 어느 회의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아마도 이번 평양정상회담을 비판하는 측의 이야기가 듣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마치 반대자들을 매도하는 것 같은 표현, 일방적으로 정부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주장과 논리를 펼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의 통치권 수권 이념에 반한다고 봅니다.


우리 헌법은 ‘권력의 집중’을 옹호하고 “대중이 부여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부를 감히 비판할 수 있느냐”라는 형식논리로 일체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선출된 권력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택할 수 있고, 다수 뜻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님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 70년 전 출발은 비슷했으나 70년 후 정치, 경제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남북한의 근본적 이유인 것입니다.


즉,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할 책임이 정부에게 있는 것입니다. 설사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일말의 긍정적 기능을 생각해서 비판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설사 긍정적인 기능이 전혀 없더라도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할 책임은 끝까지 정부에게 있습니다.


만일 정부 관계자가 그런 식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배척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를 존중하여 더욱 더 국민 다수가 지지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통일 이슈는 더욱 더 전국민적인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가 필요한 분야이고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는 대화와 설득에서 오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방향이, 바로 전체주의적 억압적 하향식 국민적 합의 도출이 아니라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과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였으니까 말입니다.


다시한번 이 땅에 비핵화와 함께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회복되는 정의로운 평화가 속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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