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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1 20:54:32
  • 수정 2018-01-22 17: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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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목동병원의 감염 경로로 ‘영양제 나누는 과정’ 유력. 여러 주사기에 나누면서 감염원 유입된 듯

-우리나라 중환자실 간호사 숫자는 환자 대비 1 대 3 이상 흔해. 시간과 노동 절약 강요하는 시스템

-의료계는 우리 사회의 압축판. 모든 분야에서 제값을 지불하지 않고 성과를 올려야 하는 문제 심각

이대목동병원의 감염 경로로 ‘영양제를 나누는 과정’이 유력하다고 한다. 한 병의 스모프리피드를 여러 주사기에 나눠 담는 과정에서, 감염원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 이대목동병원의 감염 경로로 ‘영양제를 나누는 과정’이 유력하다고 한다.


주사제를 여러 개로 나누는 과정은 위험하다. 술기를 무균 상태로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감염 리스크가 올라간다. 아무리 조심해도 위험을 0으로 낮출수는 없다. 그렇다연 굳이 이렇게 위험한 행위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의협회장이 나서서 해명한 모양이다. 조금만 쓰고 남은 걸 폐기하면, 쓰지 않고 버린 용량은 값을 쳐주지 않는다고. 그러니 여러번 쓸 수밖에 없었다 한다. 덕분에 때 아닌 수가 논쟁이 일고 있다.

*

보험 기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지 어쩐지. 하지만 내 경험상, 이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뭔가 의사들 쪽에서 똥볼을 차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바빠서 귀찮지만, 굳이 글을 남기는 이유다.)

*

나는 신생아 중환자실 사정은 잘 모른다. 하지만 주치의 심정은 잘 안다. 어린아이들 처방도 적지 않게 해보았다.

의사 입장에서 신경 쓰는 건 오더뿐이다. 0.2 바이알의 주사제를 투여하려고 맘 먹으면? 챠트에 0.2라고 입력하는 걸로 끝이다. 0.2 바이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지시한 그 용량이 정확히 환아에게 투여되기만 하면 그만이다.

총 책임자라든가, 지도와 관리의 의무가 있니 하는 형식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그런 책임 문제는 어차피 본질과는 거리가 먼, 정치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아다시피, 현장이 돌아가는 원리는 각자 맡은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주치의는 처방을 내고, 간호사는 그 처방대로 투여한다.

*

처방은 중요하다. 처방을 내야 약물이 준비되니까. 또 하나 중요한 이유. 환자에게 한 모든 행위는 기록이 남아야 한다. 그건 환자의 권리이고 의사의 의무이다. 동시에 의사가 스스로를 지키는 행위이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물을 처방을 내지 않으면, 나중에 고소당해도 해명할 증거가 사라지니까. 의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해서도 기록이 남아야 한다.

환아에게 영양제를 투여하기로 했다면, 처방을 반드시 내야 한다. 당연히 모든 환아에게 처방을 냈을 것이다. 삭감이 걱정되면 처방을 안내거나, 비급여를 궁리하든지 했을 것이다.

거기서 굳이, ‘내가 맡은 환아 수가 5명이니, 1병으로 나눠 쓰면 4명분 삭감을 피해서 본전치기가 되겠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그런 저울질을 하는 천재가 있단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생각해보자. 환자 처방 업무창에,

“앞 사람에게 쓰고 남은 주사제 0.2바이알 주고, 다음 환자에게 또 써야하니까 나머지는 꼭 아껴두세요.”

라고 친절히 코멘트를 남길 주치의가 있을까? 내가 아는 대한민국의 모든 주치의들은 귀찮아서라도 딱 한 줄 오더 남길 거다.

“0.2개 정맥 내 투여.”

이대목동병원은 대학병원이다. 주치의는 병원 오너가 아니다. 월급쟁이다. 병원 경영 악화를 고민할 이유는 없다. 맡고 있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0.2 바이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처방 낼 뿐이다.

*

그렇다면 간호사가 굳이 의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또한 병원 경영에 고민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간호사들은 삭감과도 관련이 없다. 아무튼 스모프리피드 1병을 간호사가 여러 주사로 나눈 건 밝혀진 사실이다. 그럼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한 걸까?

혹시 의사나 간호사가 부수입을 염두에 두었을까? 5병을 부당청구해서 1병만 쓰고 4병 남으면 이득이 남는다고 하던데. 남는 건 어떤 방식으로 돈으로 환산되는 걸까? 설마 의사나 간호사가 남은 4병을 들고 다니면서, 환자들에게 현금으로 살 생각 있냐고 물어보는 걸까? 이유는 해당 간호사만이 알겠지만, 내 생각에는 돈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그냥 쉬우니까 그랬을 거 같다. 그렇게 해 왔으니까 관례적으로.

*

원칙적인 절차는 이렇다.

처방이 나올 때마다 새 주사제를 약국에서 가지고 와야 한다. 그 후 상자를 뜯고 약제를 꺼내 뚜껑을 깐다. 처방 나온 용량을 정확히 주사제로 뽑고, 나머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말로 하면 쉬운 일인데, 실제로는 상당한 노동량을 필요로 하는 행위다. 1개의 큰 병 두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뽑아서 쓰면 절차가 훨씬 쉬워진다.

5병을 가져와서 5개의 주사기를 만드는 건, 같은 행위를 5번 똑같이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1병을 가져와서 5개의 주사기를 만들면, 공통된 부분의 절차는 생략해도 된다. 시간과 노동이 줄어든다. 당연히 위험한 행위다. 하지만 지금껏 별 사고가 없었고. 보통 다들 그런 식으로 일을 해왔다면,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기도 한다. 그런 사소함이 결국 큰 사고를 불러오는 법이고.

*

그저 간호사가 편하려고, 해서는 안 될 행위를 저지른 범죄(?)에 불과하다면, 이번 사고의 책임 또한 시스템이라는 주장은 가치 없는 주장일까? 그건 아니다.

의료계는 우리 사회의 압축판이다.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성과를 올리는 시스템이다. 자기 분야에서 정해진 규칙을 넘어서는 유도리를 발휘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해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가성비라 불리는 가격 대비 효과를 중시하다 보니 더욱 그렇다. 가성비 좋은 식당의 비결이, 실제로는 최저임금이든 뭐든 인력을 갈아넣거나, 중국산이나 싸구려 원료를 썼다는 폭로는 이제 낯설지도 않다.

원래 싼 게 비지떡이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

중환자실 간호사의 적정 숫자는 환자 1명당 간호사 1명, 최악의 경우에도 1 대 2는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1 대 3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도 흔하다. 그들이 발로 뛰어서 우리 의료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때론 끼니도 걸러가며 뛰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해내기 위해, 주사제를 나누는 유도리를 발휘한 게 과연 맞아죽을 죄일까?

주사제를 나눔으로써 아낀 시간으로, 다른 죽어가는 환자를 제때 돌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렇게 구한 환자가 한 다스도 넘을지 모른다. 그들이 발휘하는 유도리가 비단 주사제를 나누는 일 뿐일까? 중환자실, 아니 간호사, 아니 병원 모든 분야에서, 그런 유도리가 발휘되는 공간은 열거할 수도 없을만큼 많다.

*

우리는 애초에 정상적으로 의료를 굴릴 수 있는 시스템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로 뛰어서 어떻게든 해내고 있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언젠간 이렇게 사고가 터지는 게 필연인 것이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주사제를 나눠쓰는 그런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대신 중환자실의 침상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중환자실은 아무리 최첨단 설비가 되어도, 간호사가 없으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건 현재 누워 있는 환자의 절반이 치료 기회를 잃게 된다는 얘기다. 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면 수익 악화로 병원도 문을 닫을 테고. 결국 환자는 아파도 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

모두 제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결과다. 우리 수준이 올라가면서 그 부작용이 하나씩 나타나는 게 작금의 현실이라고 본다. 이런 사건이 터지고 또 터지고 누적되면서 더 많은 발전을 이루리라 믿는다. 당사자의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민주주의만 후불제인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의료도 후불제다. 아니 온 나라 모든 분야가 후불제의 빚을 지고 있다.

*

메르스는 그때가 아니어도 언제고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콩나물 시루같은 우리 의료 환경에서 메르스가 발생하지 않았던 건, 그저 운이 좋았거나, 잘 은폐되었을 따름이다. 물론 사고가 터진 이후 우리의 감염 관리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당연히 이번 사건 이후로, 주사제를 나눠 쓰는 행위는 많은 부분에서 지양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메르스를 완벽히 대처할 수 있을까? 내가 감염 관리의 권위자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희 병원 응급실에 정원을 두 배 초과한 환자가 누워 있습니다. 발열 환자 하나가 몇 시간 만에 중동을 다녀왔다는 실토를 했습니다. 이제 응급실을 폐쇄하면 새로운 응급 환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현재 응급실에 있는 환자들은 어디로 쫓아내야 합니까?”

답변은 심플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수 밖에 없지요.”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조용수 semi-moon@hanmail.net/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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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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