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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1 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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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처방한다고 의사 주머니에 더 들어오는 돈은 없다. 머리 아픈 건 질색, 문케어 반대할 이유 없다

-쌈짓돈 털어 농약 사서 마신 환자들의 남은 보호자들마저 죽여야 하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만 한다

-보장을 늘리면서도 총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케어의 문제점을 여러 번 썼지만, 나는 사실 문케어 시행을 바라는 사람이다.

 

나는 월급쟁이 의사다. 비급여를 처방한다고 내 주머니에 더 들어오는 돈은 없다. 머리 아픈 건 질색이다. 앞으로도 월급 타먹고 사는 게 꿈이다. 경제적 이득 때문에, 문케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모든 의료에 보험을 적용해주면 좋겠다. 현장에서 환자를 볼 때, 보험이 안돼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공의 때, 선배가 이런 얘길 해주었다.

 

“네가 앞으로 응급실에서 보게 될 중환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냐?”

“가난에 짓눌려 죽길 택한 환자야. 마지막 남은 쌈짓돈 털어 농약을 사서, 그걸 마신 환자들이지.”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살면서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몇 번이나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지 궁금하다.

나는 돈 때문에 치료(생명)를 포기하는 사람을 부지기수로 만났다. 수 많은 가정의 어려운 역사를 들었고, 공감해 왔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한 푼이라도 부담을 줄이면서 효과를 보는 방안을 연구해 줬고, 때로는 남은 자원을 몰래 빼돌려 몇몇 치료를 공짜로 해 준 적도 있다.

 

내가 특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내 주위에 있는 의사들은 누구나 이렇게 행동한다.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사정 뿐 아니라, 경제적 사정까지 고민하는 건 힘든 일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눈 앞에 환자를 두고. 그 치료법을 돈으로 저울질하다 보면, 인간성이 말살당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치료비는 오히려 남은 보호자마저 죽이는 행위가 되고 말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만 한다. 그 무거운 결정은 언제나 의사의 몫이다.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돈 때문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어찌 없겠는가? 가능성이 아무리 낮은 환자라도, 끝까지 치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의사이기 이전에 나도 사람인데.

 

▲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고 의료 기술도 발전하고 총의료비는 늘어난다


문케어 이후가 기다려진다. 앞으로는 이런 고민 없이, 모든 환자에게 마음껏 치료를 펼칠 수 있을테니까.

 

물론 걱정되는 바는 있다. 정책 실현을 위해 현재 비급여 시장의 규모를 파악했을 것이다. 지금 가진 재정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애초에 비급여로 처방내지 못한 환자가 무수히 많다. 비싼 가격 때문에 처음부터 비급여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이 많다. 이 모든 환자가 처방 대상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비용은 현재 계산을 아득히 넘어설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급여 처방에 한해서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욕구가 일치한다. 급여 처방은 많이 할수록 둘 모두에게 좋다. 환자는 비싼 처방을 공짜로 해서 좋고, 의사는 매출이 늘어서 좋다. 처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처방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의료의 특수성은 그걸 쉽지 않게 할 것이다.

 

의료에서 검사 결과는 객관적이지만, 검사를 시행하는 이유는 주관적이다. 어떤 검사와 치료를 왜 하느냐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달려 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간 문진 내용은 챠트에 활자로 기록될 뿐이다. 몇 줄 챠트를 읽고 환자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사와 치료의 필요 여부를 나중에 평가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모든 의사와 환자가 완벽하게 선량하지 않은 이상, 단 몇 줄 챠팅으로 도덕적 해이는 쉽게 일어날 것이다. 욕구가 일치한 의사와 환자는 감시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방안을 암묵적으로 함께 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감시 인력이 늘게될거고, 이 또한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감시하는 쪽과 피하려는 쪽은 끝없이 상대의 존재를 이유로 서로의 시장을 키울 것이다.

 

당연히 총 의료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보장을 늘리면서도 총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녹록치 않다.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고 의료 기술의 발전은 계속된다. 가만히 있어도 의료비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는 여기서 더 많은 보장이라는 돌을 하나 더 얹는 중이다.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복지의 확대에 찬성하고, 그 때문에 늘리는 세금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문케어를.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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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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