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협상 제안했다가 코너에 몰린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4개국 정상의 ‘30일간 휴전’ 수용 요구를 분명하게 거절하면서 대신 오는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전쟁 종결을 위한 양국 직접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즉각 수용을 촉구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휴전 여부와 관계없이 푸틴이 지정한 날 푸틴이 지정했던 튀르키예에서 기다릴테니 그곳으로 오라고 통보하면서 되려 푸틴이 회담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몰렸다. 이는 푸틴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푸틴이 과연 자신이 제안했던 휴전회담에 참석할지 눈길이 쏠린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이 결정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푸틴이 제안한 15일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권고로 돌연 참석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제 최종적 카드는 푸틴에게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분명한 것은 사실상 튀르키예에서의 평화회담을 푸틴이 먼저 제안한 것이지만, 푸틴은 그 회담을 진짜 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제안한 12일부터의 무조건적인 휴전 요구를 회피하기 위해 대뜸 15일 튀르키예에서 평화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것인데,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냉큼 받으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참석을 권유했고, 젤렌스키 역시 평화회담에 응하면서 이젠 푸틴이 어쩔 수 없이 참석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려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도 “지금 진행되는 이 과정은 매우 불안정하며 의구심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다”며 “이젠 트럼프 대통령까지 개입해 푸틴과 젤렌스키간의 직접적 평화회담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과연 푸틴이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집중된다”고 짚었다.
실제로 푸틴은 11일(현지시간) 밤 1시에 크렘린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오는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협상을 재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진지한 협상을 할 것”이라며 “그 목적은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장기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협상을 통해 러시아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도 준수하는 새로운 휴전, 진정한 휴전에 합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푸틴의 회담 제안 사실이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트루스소셜에 “종전을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과 함께 계속 일하겠다”며 “끝없는 ‘피바다’가 끝나고, 수십만명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푸틴의 제안을 즉각 동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는 목요일(15일) 튀르키예에서 푸틴을 기다리겠다. 직접”이라며 “이번에는 러시아인들이 핑계를 찾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일부터 완전하고 지속적인 휴전을 기다리고 있다”며 “이는 외교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하다. 살상을 지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이달 초 러시아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신규 제제를 제정하는 법안이 양당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이 제재에는 러시아산 석유, 석유 제품, 천연가스 또는 우라늄을 구매하는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 500%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유럽은 러시아가 휴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곧바로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을 결의했고, 이 내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승인을 했다”면서 “필요하다면 추가 제재도 불사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진짜 평화회담을 열 생각이 없었던 푸틴, 또다시 우크라 공격]
그렇다면 푸틴의 평화회담 제안은 과연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을까? 푸틴은 진짜 평화회담을 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AFP통신은 “푸틴은 협상을 제안한 11일 기자회견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전승절 휴전 제안에) 답변하지 않고 러시아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며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렸다”면서 “푸틴이 협상 제안을 하면서도 서방의 휴전 제안에는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두고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며 “푸틴은 여전히 시간을 벌려고 한다”고 다소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이렇게 평화회담과 관련된 제안과 성명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제안했던 12일부터의 휴전안에 대해 마치 확실한 거절 의사를 보여주는 듯 러시아는 곧바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격을 개시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12일 아침 텔레그램을 통해 “크렘린궁이 밤새 전국의 목표물을 향해 발사한 무인기 108대 중 55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러시아의 군사적 도발은 유럽 각국과 우크라이나가 제안한 휴전 즉각 발효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으로, 푸틴이 과연 평화회담을 열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푸틴, 평화회담 의도적으로 회피할 가능성]
그렇다면 푸틴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려 할까? 만약 푸틴과 젤렌스키가 이스탄불에서 대면할 경우, 두 사람의 만남은 2019년 12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독일·프랑스 정상과 함께 4자가 파리에서 '노르망디 형식'의 회담을 한 이후 5년 5개월 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푸틴이 오는 15일의 튀르키예 회담에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신 미국과 유럽 각국의 눈초리를 회피하기 위해 또다시 꼼수를 쓸 가능성이 있다. 일단 푸틴 자신이 회담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리인을 보내 형식적으로만 평화회담을 열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타스통신은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화가 2022년 중단된 이스탄불 협상은 물론 현재 상황을 모두 고려할 것이며, 러시아 측 대표단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초기인 2022년 3월 말 이스탄불에서 결렬된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재개하되 이후 전개된 전장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 위기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탄불에서 막판에 결렬된 협상 초안에는 우크라이나가 중립·비동맹 지위를 유지하고 외국 무기를 자국 영토에 배치하지 않는 대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안보 보장을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러시아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분쟁의 근본 원인 제거'의 핵심 내용과 관련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와 비군사화 등을 휴전의 핵심 요건으로 요구해왔다.
러시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지난 3월 30일 휴전을 제시했을 때도 푸틴은 “휴전은 장기적인 평화와 분쟁의 근본 원인 제거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를 사실상 거부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우크라이나와 진지한 협상을 할 것”이라며 “그 목적은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장기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현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기존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기자회견에서도 평화 협상을 재개해야 하지만 협상이 이스탄불 합의와 '오늘날의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은 여전히 푸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제재를 피하기 위해 대화하는 시늉만 하면서 시간을 끄는 특유의 기만술이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이 나올 때마다 부활절 30시간 휴전, 전승절 72시간 휴전 등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임시 휴전 기간에도 양국 간 교전이 이어졌다.
러시아는 이번 전승절 휴전이 종료되고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대화를 제안한 뒤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 바 있는데, 러시아는 북한의 군사 지원을 등에 업고 쿠르스크 지역을 상당 부분 수복하는 등 전장에서 우세하다는 점을 감안해 러시아가 이스탄불에서 회담 테이블은 열어둔 채 시간을 벌며 군사행동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또 하나, 러시아가 평화회담에 참석한다 해도 종전의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사실상 종전을 회피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푸틴은 그동안 크렘린이 2022년에 불법적으로 합병한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동부 4개 지역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이 지역은 지금도 러시아가 완전히 점령한 지역은 아니지만 그 곳에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현재 전선을 따라 분쟁을 어느 정도 동결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대부분의 영토를 모스크바의 손에 남겨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미국은 또한 러시아가 2014년 합병한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러시아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평화회담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아무리 푸틴과 젤렌스키가 만난다해도 결론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를 핑계로 푸틴은 전쟁을 지속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푸틴은 전쟁을 더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권력기반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한마디로 러시아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판단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푸틴이 국민을 위한 생각을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이 서방세계의 단호한 결단인데 미국과 유럽이 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