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승전 기념일 퍼레이드에 나란히 선 시진핑과 푸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7일(현지 시간) 모스크바에 도착해 나흘간의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시진핑은 이번 방문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우의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면서 호기롭게 중러 밀착을 과시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정작 중국이 경제적 차원에서 손을 내밀어야 할 유럽의 등을 돌리게 한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8일, “러시아는 중국과의 동맹 강화를 보여주는 승전 기념일 퍼레이드를 열게 된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퍼레이드의 가장 중요한 손님이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는 이어 “시진핑 주석은 지난 7일 베이징 공항을 출발하기 직전 러시아와 중국간의 유대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중국 외교부도 중러 두 정상의 공동 이해가 정치적 상호 신뢰를 더욱 심화시키고, 전략적 협력을 더욱 강화시키며, 국제사회에 더 많은 안정과 긍정적 에너지를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더타임스는 “날이 갈수록 외교적으로 고립되어가고 있는 푸틴 입장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이 정말 반가운 일”이라면서 결국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은 단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임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러시아 관영매체 '로시스카야 가제타'에 실은 '역사를 거울로 삼아 함께 미래를 열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세계는 정의(公道)를 바라지 패도(覇道)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어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려면 대결이 아니라 대화를, 동맹 만들기가 아니라 파트너 되기를,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을 견지해야 한다”며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면서 각자 합리적 우려를 모두 고려하고, 국제 규칙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시진핑이 사용한 '패도', '대결', '동맹 만들기' 등의 표현은 모두 중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를 비판할 때 자주 써온 단어들로, 결국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진핑 주석은 8일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서방세계의 일방주의와 괴롭힘에 맞서 러시아와 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했다.
시진핑의 러시아 국빈방문은 2023년 3월 이후 2년 만이고, 전승절 열병식 참석은 승전 70주년이던 2015년 이후 10년 만이다. 또한 양 정상은 올해들어 1월 화상회담, 2월 전화 통화에 이어 올해 들어 세 번째 대화를 갖는 것으로, 이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오는 8월 말에서 9월 초에는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중러 밀착의 후유증, 유럽과의 관계에 찬물]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더불어 9일의 퍼레이드 단상에 나란히 서서 깊은 유대 관계를 과시했지만, 이러한 외교적 밀착이 가져올 후유증을 시진핑 주석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원래 시진핑이 구상했던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으로 미국과 유럽간의 외교적 관계도 무너지면서 중국이 유럽과 밀착할 수 있는 기회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유럽’, 그리고 군사적 측면에서는 ‘중국+러시아’라는 외교적 무기로 미국과 맞짱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시말해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으로 중국의 수출길이 막히더라도 미국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유럽과 손을 맞잡고 새로운 수출 영역을 창조해 간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미국과의 분쟁에서 잃어버린 손실을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국은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실로 오는 7월, 중국과 유럽간 정상회담을 베이징에서 열기로 합의까지 했다.
실제로 트럼프 취임 100일까지만 해도 세상의 판도가 그렇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들어 관세전쟁 문제가 중국의 생각과는 다르게 급물살을 타면서 유럽과 미국간 관세문제가 순조롭게 풀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들이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8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이 아주 긍정적인 무역협정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것”이라면서 “영국 뿐 아니라 서방세계의 주요 국가들과도 좋은 분위기의 관세 협정을 마무리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관세전쟁 문제로 미국과 유럽간에 불협화음이 아니라 긍정적인 웃음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징조는 이미 있었다. 지난 7일, 뮌헨안보회의(MSC)가 워싱턴 DC에서 주최한 ‘뮌헨 리더스 미팅(Munich Leaders Meeting)’ 행사에 참석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월, 유럽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로 미국과 유럽의 일심동체를 강조해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매년 2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MSC는 세계 최대 규모 안보 회의 중 하나로 미국에선 부통령이 참석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밴스는 지난 2월 사실상의 국제 무대 데뷔전이었던 이 행사에서 유럽을 향해 언론 자유 탄압, 이민 정책 실패 등을 강하게 꾸짖으며 오랜 가치 동맹인 유럽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겼다. 이로 인해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결국 전후 자유질서의 기반인 대서양동맹이 흔들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약 100일 만에 다시만난 밴스 부통령은 “미국과 유럽이 근본적으로 같은 운명, (하나의) 팀에 속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우리가 의견 차이를 갖지 않을 것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 사이에 단단한 벽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은 분명히 ‘원팀’이라고 확인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밴스는 한동안 러시아에 우호적이었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냉소적 반응을 보여 왔었는데 이날 발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밴스는 한마디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유럽에 ‘공공의 적’이 된 러시아에 대해서도 각을 세웠다.
밴스는 우크라이나 종전협상과 관련해 “러시아가 전쟁 종식을 위한 일정한 요건의 조합들과 (우크라이나가 해야 할) 양보의 조합들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이 서로 환하게 웃는 관세협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확인한 것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가 얼마전과 같이 등을 지는 마이너스적 관계가 아닌 플러스 지위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유럽간의 분열을 기대했던 시진핑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속내 복잡한 시진핑, 유럽과의 관계 풀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과 러시아가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최악의 관계라는 점이다. 그런 러시아에 중국의 시진핑은 ’강철같은 유대를 갖는 최우호국‘이라고 칭찬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쳐 패권국들의 도전을 막아내겠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듣는 유럽의 입장이 어떨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러니 시진핑의 속내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에 힘으로 맞서야 중국이 살아갈 길도 열린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패권 전쟁에는 러시아의 손이 필요하지만,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입는 피해를 회복하려면 유럽의 도움이 절실한데 바로 그 유럽은 러시아와 적대적이라는 딜레마가 시진핑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유럽 사회는 우크라이나 종전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올 년말 안에 EU의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주석은 대략난감의 현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시 주석은 러시아 방문에 앞서 6일 “건강하고 안정적인 중국-EU 관계”를 강조하고 유럽의회 의원들에 대한 제재도 풀었다. 유럽과의 관계 개선이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7일,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붉은 광장에 선 모습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간접 지원했다는 모습을 유럽에 더욱 각인시킬 수 있다”면서 “이런 모습은 미국과 무역전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유럽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마치 손은 푸틴을 잡고 있으면서 눈길은 유럽에 돌리고 있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진핑이 최근 들어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가 결별에 가까운 관계 악화가 아니라 오히려 다시 대서양 동맹의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역시 중국과 싸움을 펼치려면 대서양동맹을 포함한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 결속이 긴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흐름이 이렇기 때문에 시진핑은 몸은 러시아에 가 있지만 마음은 주지 않는 관계, 곧 실질적으로 러시아에 경제적 지원 같은 도움은 주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수석 연구원 마티유 불레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시 주석의 승전 기념일 축하행사 참석은 상징이 실질을 압도하는 것”이라며 “외면적인 친밀함의 이면에 양국 관계의 본질은 훨씬 더 복잡하다”고 풀이했다.
불레그 연구원은 이어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 협력 관계이면서 실제로는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면서 “시 주석의 방문기간 여러 협력 조치가 발표돼도 중요한 것은 후속 조치인데, 중국으로 향하는 ‘시베리아 힘 2’ 가스관 건설이 10년 전에 제안되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시진핑 주석은 지금 몸은 러시아에 있지만 마음은 유럽에 있다. 그래서 유럽과 눈을 마주치고 싶어하는 그런 형국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시진핑의 위험한 줄타기 외교가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