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러군 우크라서 철수해야 러 제재해제 동참”]
우크라이나-러시아간 전쟁 휴전을 두고 미국과 EU가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으나 사실상 EU의 요구를 미국이 거부할 경우 미-러간 종전협상 자체가 효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미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미국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부분 휴전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제재 해제' 가능성에는 거리를 뒀다”고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아니타 히퍼 EU 외교안보담당 수석 대변인은 전날 입장문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당한 침략이 끝나고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서 조건 없이 철수하는 것이 대러시아 제재를 개정·해제하는 주요 전제 조건”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전격적인 철수없이는 당장은 러시아의 제재 해제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히퍼 대변인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부분 휴전 합의는 환영한다”면서도 “러시아는 불법적이며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 전쟁을 끝내려는 진정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히퍼 대변인은 이어 “러시아는 말이 아닌 그들의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이 말해준다”고 꼬집었다.
히퍼 대변인의 이러한 반응은 전날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3자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에서 휴전하고 에너지 시설에 대해 30일간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면서 러시아는 농식품과 비료 수출에 대한 서방의 제재 해제를 부분 휴전 이행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고, 미국은 '돕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유럽의 입장을 정리한 셈이다
[EU가 제재 해제해 주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문제 심각]
사실 이제까지 미국은 EU를 완전히 제껴놓고 러시아와 종전협상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막상 러시아와 일차적 합의를 했지만 러시아가 원하는 제재 해제가 주로 유럽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EU의 동의 없는 종전 또는 휴전 방안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도 “러시아가 요구하는 제재 상당수가 EU 조치와 관련이 있다”면서 “EU는 지난해 7월부터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여러 곡물, 농식품에 일명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것이 직접적 제재는 아니지만 사실상 수입 금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에겐 정말 중요하다”고 짚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올해 1월에는 징벌적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나머지 농식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벨라루스산 비료 관세를 최고 10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추가 논의 중이다.
이와 별개로 은행 결제를 포함한 여러 부문에 걸쳐 16차례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를 채택해 시행 중이다. 현재 17차 제재안도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러시아에 대한 기존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하기 위해선 27개국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며 아직은 회원국 대부분이 제재 해제에 강력히 반대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유럽은 자체 제재 유지로 러시아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현재 서방 제재 가운데 대러시아 제재는 2만5천건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는 그다음 6개국(이란, 시리아, 북한, 벨라루스, 미얀마,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올해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직전까지 미국은 러시아에 약 6천500건의 제재를 가했는데, 유럽의 총 제재 건수는 미국보다 많다”면서 “그 뒤로 캐나다와 스위스, 유럽연합(EU), 프랑스, 영국, 호주, 일본이 뒤를 잇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가 바라는 제재 해제는 유럽에선 논의부터 금기시 된다”며 “유럽이 제재를 이어가면 러시아의 무역과 결제 시스템 접근, 외국인 투자가 모두 심각한 수준으로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니까 “미국이 제재를 끝내고 3년 새 90% 줄었던 대러시아 상품 무역을 되살린다고 해도 침공 직전 교역 규모 350억달러(51조원)는 EU의 대러시아 무역 2천580억유로(408조원)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작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이 말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러시아와 종전협정을 체결하고 독자적으로 제재를 해제한다 할지라도 유럽의 동의가 없는 휴전은 러시아의 경제적 활로를 열어주지 못하는 허울 좋은 제재 해제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러시아는 우선적으로 미국이 자국의 에너지 수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에너지가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천연가스에 대해 제재를 해제한다고 해서 러시아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면서 “러시아의 주력 가스 액화 프로젝트인 북극 LNG 2에 대한 제재 해제는 일부 수출을 재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스 과잉이 예상되는 2026년 이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면서 “실제로 천연가스 시장에서 2026년이면 과잉 공급이 예상되는 데다 러시아의 유럽행 가스관을 폐쇄한 것은 푸틴 대통령 본인이었던 만큼 러시아가 수출 재개를 바란다고 해서 유럽이 다시 구매하게 될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러시아가 전쟁 전 수입한 첨단 기계 등 고가 품목 상당량이 유럽산이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민수·군수 양용 품목 대부분이 미국산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다른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무기 부품 수출 제재는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견해다.
러시아가 진전을 기대하는 두 번째 분야는 국제 결제다. 러시아 은행이 주요 신용카드 네트워크인 마스터카드와 비자로부터 배제되고 있고, 메시지 시스템인 SWIFT와 미국에서 달러 거래를 처리하는 ‘교신’ 네트워크가 러시아의 해외 거래를 사실상 중단시켰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러시아 기업들이 주요 석유 구매국인 중국과 인도로부터 외화를 송금할 수 없게 되어 루블화가 약세를 보인 것이다. 그들은 또한 러시아 중앙은행이 소유하고 서방에 보관되어 있는 2,740억 유로의 자산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당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의 결제 시스템 접근 제한을 해제하면 러시아로선 숨통이 트일 수 있으나,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이 대부분 유럽에 있고 러시아 은행 대다수는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접근이 여전히 제한될 수 있다”면서 “결국 유럽 제재가 남아 있으면 미국 은행들로서도 러시아 관련 거래의 결제 승인을 주저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루블화 가치가 20% 오르는 등 러시아 경제 반등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는 했지만, 외국 기업들은 러시아가 합의를 깨고 제재가 복구될 가능성, 평판 손상, 주주 반발 등으로 여전히 투자를 경계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유럽 규제 당국이 외국 은행에 '러시아 연계 거래가 유럽 사업에 영향을 주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경고하거나, 러시아산 석유를 운송했던 유조선의 유럽 입항을 금지하는 등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더 있다”면서 “다만, 유럽이 이같은 방식을 고려할 정도라면 미국이 제시할 휴전안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일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말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 초기 유럽을 아예 무시하고 러시아와 일방적 종전안을 도출하거나 유럽사회의 동의없는 종전 또는 휴전안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면, 유럽사회는 미국의 종전 또는 휴전 방안에 전혀 동의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때는 미국과는 별개로 유럽사회가 직접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미국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제재 해제의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은 끝까지 유럽을 배제하고 푸틴과 종전안을 논의할까?].
문제는 트럼프의 외교 라인이 아직 유럽과 대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현재 미국과 러시아간의 휴전 및 종전 관련 논의 사항을 우크라이나를 통해 듣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한 유럽 소식통은 이런 미국의 태도에 “완전히 어리석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에 유럽은 언제나 미국보다 더 중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럽은 꽤 괜찮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무시당하고 위협당하면 유럽이 이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와 직접 협상을 진행하는 미국이 유럽에게 어떠한 카드를 내밀지 주목된다. 또한 러시아가 미국을 등에 업었다 할지라도 러시아가 유럽사회와 다시 긍정적 관계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종전 또는 휴전을 하고서도 러시아 경제에 별 도움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푸틴의 행보도 주목된다고 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