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은 약과, “무역에 종말 가져올 것” 주장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해양산업 패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중국 선박에 대해 거액의 입항료를 부과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트럼프 정부의 뜻대로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마다 엄청난 금액의 입항 수수료를 물게 된다면 이는 중국에겐 대재앙이 될 것이고, 세계의 무역시스템을 완전히 뒤흔들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충격파가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24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조선·해운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 100만~300만 달러(약 15억 원-44억원)의 입항 수수료를 물릴 것을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실행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면서 “이러한 계획은 세계 무역에 관세전쟁보다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이 제안이 공개되자 해운 항만 업계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24일부터 이틀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화주와 중국 조선업계 등 각계 대표 수십명이 참석한 가운데 관련 청문회가 열린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공청회에선 USTR이 중국 선사, 선박에 부과하는 수수료와 제한 조치에 대한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USTR은 작년 4월 미국 5개 노동조합의 청원으로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산업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 1월 중국이 이들 산업을 지배하려고 불공정하게 경쟁해 미국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이후 지난 2월 미국에 입항하는 중국 해운사와 중국산 선박으로 미국에 입항하는 해운사에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해운사의 전체 선단에서 중국산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중국 조선소에 주문한 선박이 많을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내게 하는 방안이다. 또 해상으로 수출하는 모든 미국 상품의 일정 비율을 미국 해운사가 운영하는 미국 국적 미국산 선박으로 운송하게 하자는 제안도 있다.
이같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글로벌 해운사들이 중국산 선박의 구매를 꺼릴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한국 조선업이 반사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청회에서 업계 의견을 수렴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서명을 하면 곧바로 시행된다.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USTR의 중국 조선업 견제책이 비록 중국의 해양굴기를 막기 위한 방안이기는 하지만, USTR의 방안대로 시행된다면 전 세계의 해운 및 조선 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 해운·조선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선박은 중국이 약 70%를 수주했다.
또한 해운사들이 보유한 중국산 선박도 상당하다. 노르웨이 컨테이너 운임 분석업체 제네타(Xeneta)에 따르면 중국산 컨테이너선 비중이 높은 선사는 COSCO(64%), ZIM(41%), CMA CGM(41%), ONE(27%), Hapag-Lloyd(21%)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한국은 중국산 선박의 보유율아 낮은 편인데, HMM의 보유선박 82척 중 중국선박은 단 4척에 불과하고, SM상선은 선박 12척에 용선 2척이 있는데 바로 그 용선 2척이 중국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트럼프 정부에서 중국산 선박에 대해 입항료를 부과하게 된다면 중국산 선박을 근거리 노선에 투입하게 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장 미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 해소 방안이 관건]
중요한 것은 USTR의 중국산 선박에 대한 입항세 부과가 잠재적으로 미국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미국 상품의 가격이 너무 비싸지고, 물류 허브가 미국에서 벗어나 캐나다와 멕시코로 옮겨질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의 주요 항구에도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글로벌 운임과 미국 내 물가 상승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전미소매업연맹의 공급망 및 관세 정책 담당 조나단 골드 부사장은 “전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 항만 수수료를 관세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면서 “해운업체들은 비용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특정 항로에서 철수할 것이며, 따라서 오클랜드, 찰스턴, 델라웨어, 필라델피아 등 소규모 항구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청문회에 참석하는 세계해운위원회의 조 크레이멕 최고경영자(CEO)는 “USTR이 제안한 수백만 달러의 항만 입항료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 소비자와 기업, 특히 농부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물가를 올리며 일자리를 위협하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불어 해상 운송업계의 베테랑으로, 관련 책을 쓴 존 맥코운도 “무역에 철퇴를 가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한꺼번에 해버리면 무역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조선업에겐 치명타,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을 것]
그러한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선박에 대한 엄청난 입항 수수료 부과는 사실상 독과점으로 가는 중국의 조선업 전반을 흔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경제의 기반마저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산 선박에 대한 입항료 부과는 차질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은 지난 수십년간 조선, 물류 및 해양 산업에서 지배력을 확대해왔다. 블룸버그는 USTR의 자료를 인용해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화물선 제조 비중은 1999년 5%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를 넘는다”면서 “한국과 일본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 조선소는 지난해 세계 선박 톤수의 53%를 인도했다.
중국의 조선업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2002년 주룽지 당시 총리가 “중국은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 될 수 있다”면서 국가주도산업으로 밀어붙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전 세계 선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은 이후 고속철도망이나 주요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할 때 그러했던 것처럼 중앙정부 주도로 국가 기간산업으로 조선업을 육성했다. 실제로 한 추정치에 따르면 900억 달러(약 132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조선사에 투입했다. 이러한 중국 당국의 적극적 조선업 성장 지원이 지금의 중국조선업을 만든 것이다.
[중국 조선업 성장사에 자극받은 미국]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바로 이러한 중국의 조선업 성장 스토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중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도 조선업의 대약진운동을 해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조선업을 견제하는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 중국의 산업 기반을 흔드는 또다른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의 핵심 멤버들을 흥분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조선업 부활을 꿈꾸게 된 것은 미국 해군의 처참한 현실 때문이다. 미국 해군에 따르면 중국의 조선 능력은 미국의 232배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세스존스는 “미중간 태평양에서의 긴장이 장기적인 무력충돌로 이어질 경우, 이 격차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아마추어는 전략을 말하고, 프로는 물류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역사적으로 전쟁중인 군대는 장기적인 물류지원을 위해 반드시 선박이 필요했고, 단지 군함만으로는 부족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대형 상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국 미국이 중국산 선박에 대해 과도한 입항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중국의 조선업 위축이라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고, 이는 당장 중국 해군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미국이 이번에 중국산 선박에 입항료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한다 할지라도 미국의 조선산업이 다시 본궤도에 들어서려면 10여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에는 동맹국들의 협조를 받아 미국과 동맹국들의 조선산업이 함께 중국산을 대체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중국의 해양 지배력에 맞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도 이와 관련해 “현재 조선업에서의 미국 비중은 0.01%에 불과하다”면서 “USTR은 오랜 기간 거의 멈춰 있던 미국 상선 조선 분야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선박에 관한 한 글로벌 공급 및 가격 책정 등에 있어 이미 중국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USTR의 이러한 조치는 그러한 조선업 시장의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업계 추정에 따르면 USTR의 제안대로 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컨테이너선의 약 83%, 차량 운반선의 약 3분의 2와 유조선의 3분의 1가량이 수수료를 물게 된다. 결국 여기에 해당되는 중국산 선박들이 한국산이나 일본산 선박으로 교체를 추진하든지, 아니면 엄청난 수수료를 감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물건을 보내는 화주가 중국 해운사, 중국산 선박을 피하려 한다면 당연히 한국이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항만을 오갈 때마다 중국산 배에 수십억원의 수수료가 부과되면 화주가 한국, 일본산 선박을 찾을 수 있다”면서 “공청회에서 어떤 수수료가 부과될지 구체적인 사안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한화그룹은 미국의 중국 조선·해운업 견제 정책을 지지하고 돕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화해운은 “미국이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 운반선 등 상업용 선단을 건조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USTR이 제안한 정책이 없으면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데 필요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세계 최대 선박 중개업체인 클락슨리서치 서비스는 “항만 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미국이 400억~520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조선산업을 부활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해운사 CMA CGM은 향후 4년간 미국 국적 선박 건조에 200억달러(약 29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중국 조선업을 향한 트럼프 행정부의 칼날은 세계 조선업 판도를 뒤흔드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경제 기반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굳세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