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트럼프 달래려 전기차 대미 수출제한 검토]
중국이 결국 관세폭탄 카드를 꺼내든 미국에 완전히 넙죽 엎드렸다. 중국의 대미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수출량을 자율적으로 통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그야말로 미국을 달래기 위한 중국의 조치라는 점에서 이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자(현지시간) 지면을 통해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자체 수출 제한에 나서기로 했다”면서 “중국 관리들은 전기자동차나 배터리와 같은 민감한 제품에 대해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면서 수출을 제한하는 1980년대의 일본식 전략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어 “중국은 지난 트럼프 1기 때는 무역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금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미국의 본격적인 관세폭탄 등의 무역보복을 받게 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일본이 미국의 압박에 대응했던 그 방식 그대로 스스로 무역을 통제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은 전기자동차나 배터리 등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상품의 대미 수출 물량을 통제해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와 기타 비관세 무역장벽들을 막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1980년대에 일본이 미국과의 심각한 무역갈등을 줄이기 위해 취한 자동차 수출자율규제(VER)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1981년 오일쇼크와 그에 뒤이은 일본차의 무차별 공세로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하자 일본은 자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량을 통제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관세 인상을 막은 적이 있다.
이 방식 그대로 중국은 미국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기차 및 배터리와 같은 품목에 대해 과거 일본식의 자율 통제에 나서게 된다면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들의 비판, 곧 중국 당국의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거 밀어내기 수출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제조업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비난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내부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과잉생산한 제품을 수출해 다른 나라에 불황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비난해왔다.
이에 대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중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불균형한 경제”라고 비난한 데 이어, 지난달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통화에서도 중국의 무역 불균형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총 20%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내달 2일에는 상호관세도 추가로 발표할 계획이다.
이렇게 미국의 관세폭탄에 직면한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부문의 미국 현지 투자기회 확보를 대가로 자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의 대미 수출 제한을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美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던 시진핑, 왜 고개 숙였을까?]
중국이 미국의 관세폭탄과 맞물려 사실상 항복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지난 3월 4일만 해도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관세전쟁에 대해 “중국의 경제는 강력하며 중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월 4일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경기 침체, 미국과의 무역전쟁 격화, 트럼프 행정부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면서 미국의 압박에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리창 총리는 3월의 양회 개막식에서 “경제가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경제성장의 추세는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 경제라는 거대한 배는 계속해서 파도를 가르며 미래를 향해 꾸준히 항해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지도부는 과감하게 미국을 향해 보복 관세를 부과했으며, 중국 외교부는 “우리는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시진핑은 지난 4년간 방치하면서 성장보다는 억제를 가해 왔던 IT기업 지도자들을 불러 민영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주창했지만 중국 공산당 핵심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대미 외교의 방식을 ’투쟁‘이 아닌 ’비굴한 항복‘으로 바꾼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견제‘, 상상 초월에 중국도 경악]
시진핑의 중국이 이렇게 돌연 미국을 향해 자세를 낮춘 배경에는 중국 경제의 어려운 현실도 있지만, 트럼프 2기 초반부터 미국에 강경하게 맞선다면 중국을 향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60% 관세를 예고했지만, 취임후 일단 10% 추가 관세만 발표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후 추가 관세 10%가 부과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통과의례 정도로만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중국도 미국의 농산물 등을 향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의 자존심을 위한 조치였지 본격적으로 미국과 맞붙겠다는 의지는 아니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투자각서‘는 중국이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각서는 “중국 등 6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포함한 모든 법적 수단을 이용해 미국의 기술, 핵심 기반 시설, 의료, 농업, 에너지, 원자재, 기타 전략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중국의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생명공학 등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도 제한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마틴 코젬퍼는 “중국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양보안으로 대규모 대미 투자를 제안하고 싶어 한 만큼 실망스러울 것”이라고 봤다.
컨설팅업체 로듐그룹 집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 대선 관망세 속에 지난해 4분기 중국 기업들의 북미(캐나다·멕시코 포함) 신규 투자 발표액은 1억9천100만 달러(약 2천72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90% 넘게 줄어든 바 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당시 저점보다 낮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 각서에는 개인과 기업에 이중과세를 면제해주는 미중 세금 협정 및 중국 기업의 미국 상장시 사용되는 가변이익실체(VIE·Variable Interest Entities) 관련 합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충격을 주었다.
이에 대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코젬퍼는 “이러한 협약을 없애면 투자자들이 세금이 매겨질지 모르는 만큼 매우 불확실하고 복잡해진다”고 평가했다. 당연히 최우선적으로 중국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조선·해운 산업을 겨냥한 조치도 내놨다. 중국의 전 세계 조선 산업 점유율은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연히 중국의 조선업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선사 및 중국산 선박과 관련한 국제 해상 운송 서비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공고했다. 중국에서 제조된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하려면 수억원의 입항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2천950억 달러(약 421조원) 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으며 이를 바로 잡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잇따라 발표한 대중국 견제책들로 인해 협상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중국 입장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 정책에 강대강으로 대결해서는 결코 승산도 없고 또한 모든 피해를 중국이 입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국 당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인 전기차와 배터리 등에 대한 자율 수출 규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내 입지 약화도 트럼프 강공의 배경]
그런데 눈여겨볼 것 중의 하나는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압박 정책 강경론의 배경에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내 입지 약화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신문이 23일,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시진핑, 인사권-정책결정권마저 빼앗겼다”는 제목의 정세분석(유튜브 3237회)을 통해서도 설명한 바 있지만,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였던 시진핑 주석이 중국내 공산당 핵심세력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인사권이나 정책 수행까지 제동이 걸린 상황이라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다시말해 미중간 충돌 상황에서 칼자루를 완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고,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의 대결에서도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강공을 펼칠 수밖에 없고, 시진핑은 역으로 중국내 입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오히려 미국의 선처를 구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월초만 하더라도 ’미국과 한판 붙자‘던 중국이 갑자기 꼬리를 내린 배경에는 이러한 정치적 함수가 담겨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시진핑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상황을 돌파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과연 위기를 맞은 시진핑에게 손을 내밀지, 아니면 더욱 흔드는 정책을 펼치게 될지 주목된다. 이는 오롯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에 달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