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조원 고객' 美 해군 놓고 K조선 급부상]
지난 13일, 미 해군 군수지원함을 단 6개월만에 완전히 새롭게 변신시키는 수리작업을 완료하고 당당하게 출항시킨 바 있는 K조선이 이제 1500조원에 달하는 미 해군 시장을 향해 본격 달려가고 있다. K조선은 미 해군뿐만 아니라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대형 수주 계약도 이어지면서 올해도 수주잔치를 예약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지난 17일만 해도 잇달아 총 15척의 선박 건조에 수주액만 약 4조 3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들 조선사의 수주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중국 조선사와 경쟁하여 따낸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조선업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중국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등을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또한 중국에서 건조되거나 중국 국적을 가진 선박에 대해 미국 항구에 접안할 때마다 최대 150만 달러(약 21억원))의 항구 이용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 중국의 조선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빈틈을 K-조선이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K조선의 미래는 활짝 열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강 미 해군이 K조선의 핵심 고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가 대 중국 압박인 상황에서 미국의 자체 조선산업만으로는 중국과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은 K조선의 힘을 빌어 난관을 돌파해 나가려 하고 있다.
이미 노후 함정에 대한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시작한 K조선은 이제 1500조원을 쥔 ‘큰 손’ 미 해군을 가장 중요한 고객으로, 미 해군 전력을 유지하고 보수하며 강화하는 데 있어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미 해군 시장에 가장 먼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MRO사업부터 뛰어들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진행된 미 해군 7함대 소속 군수지원함 1척에 대한 MRO 입찰에 첫 도전장을 냈다. 이미 두 건의 미 함정 MRO사업을 따냈던 한화오션 역시 이 입찰에 뛰어들어 K조선끼리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미 해군이 올해 발주할 MRO사업만 10여 척으로 한화오션이 수주한 군수지원함(월리 쉬라)과 급유함(유콘)처럼 비전투함이 우선 대상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들 비전투함의 수주 단가가 척당 300억 원 정도지만 전투함의 MRO는 단가도 급격히 상승하고 물량 또한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미 해군의 MRO 전체 시장 규모는 연간 약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MRO사업은 사실상 미 해군과의 사업에 있어 전초전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미 해군 사업은 ‘함정 제작 수주’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조선산업으로는 절대적으로 역부족이어서 미 해군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의 지원을 받아 함정을 건조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현행법상 미 해군 함정의 건조는 미국 내 조선소에서만 가능하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이 법을 개정할 것으로 보이고, 개정 전이라도 대통령의 특별 명령으로 해외에서도 함정 건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K조선이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공화당은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월 공화당 상원의원 마이크 리(Mike Lee)와 존 커티스(John Curtis)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공동 발의했다.
미국의 현행법에 의하면, 해군·해안경비대 함선 또는 그 선체나 상부 구조물의 주요 부품은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될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에 대한 예외를 승인하는 것이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한다고 결정하면 해당 예외를 승인할 수 있다.
그런데 두 공화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골자는 대통령의 예외 승인 결정에 ▲해군 또는 해외경비대 함선을 건조하는 외국 조선소는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어야 한다 ▲외국 조선소에서의 함선 건조 비용이 미국 조선소에서의 함선 건조 비용보다 낮아야 한다 ▲해군 장관 또는 해안경비대 사령관은 해당 외국 조선소가 미국 함선을 건조하기 전에, 외국 조선소가 중국기업 또는 중국에 소재한 다국적 기업이 소유ㆍ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인증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추가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미 해군 군함을 건조하기 위한 FCL(시설보안인증) 취득이 필수적이나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국내 조선업계는 특수선 제작 자격이 있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국내 조선소에서 FCL 취득과 관계없이 미 군함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동맹국 중 미 해군·해안경비대 함선을 미국 조선소보다 저렴하게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조선소를 보유한 국가는 사실상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로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상선 및 함선 건조 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 백악관에 선박건조실(Office of Shipbuilding)을 새로 설치하고 특별 조세 혜택을 제공할 계획을 언급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관련 행정명령 초안을 작성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한화오션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미 해군 군함을 건조하기 위한 FCL(시설보안인증) 취득 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미 해군이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함정 건조는 향후 30년간 총 364척의 신규 함정을 제작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만 무려 1조750억 달러(약 1500조원) 규모다. 이는 년평균 385억 달러(약 56조원) 규모다.
[K조선, 미 해군의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능력 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미 해군 관련 MRO와 함정 건조에 있어 K조선이 그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큰 생산능력을 보유한 조선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수상함 부문에서의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MRO부터 미래 군함 건조 사업까지 대응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것은 이미 국내 최신예 구축함인 이지스함(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의 모든 기본설계를 수행한 바 있어서다. 이외에도 △울산급 배치-I/II/III급 호위함 △4500톤급 광개토-II급 구축함 △8000톤급 이지스구축함 등 건조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해군 함정 운용 토털 솔루션 제공 체계통합업체'라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미 해군 MRO 2건(월리 쉬라, 유콘)을 선제적으로 수주했던 것이다.
눈여겨볼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K조선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사업가 시절이었던 지난 1998년 6월,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함께 거제시 옥포만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해 100m 높이의 초대형 크레인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던 적이 있다. 당시 대우조선소 관계자는 트럼프에게 ‘세계에서 가장 큰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한국의 조선산업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하루 만에 진행된 한미정상간 통화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을 건넸고, 이후 틈만 나면 K-조선에 러브콜을 보내왔던 것이다.
[중국 해군에 역전당한 미 해군, “K조선이 美자존심 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가장 분노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미 해군이 중국의 해군에게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미 규모 면에서 미 해군은 중국에 역전당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234척의 함정을 보유해 미국(219척)을 앞질렀다. 이 격차는 2030년이면 200대 이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과 패권 다툼을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제는 미국의 조선업만으로는 미 해군을 강건하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200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왔기 떄문이다. 과거 400여 개에 달했던 미국 내 조선소는 현재 겨우 21개밖에 남지 않았다. 건조 능력도 1970년만 하더라도 연간 15~25척을 만들어냈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5척 건조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런 능력이라면 미국은 결코 강한 해군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래서 동맹국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해군력을 증강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미 미국은 RSF(지역 유지보수 프레임워크) 정책을 가동, 한국 등 동맹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RSF는 동맹국 역량을 활용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MRO(유지·보수·정비)를 수행하는 전략이다. 이는 미국 본토 중심의 정비 방식에서 벗어나 동맹국의 산업 기반을 적극 활용해 정비 효율성을 높이고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기도 한 한국이 미 해군의 최대 파트너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 조선사들은 명실상부 미국의 동맹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앞선 기술력을 갖춘 곳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면 상당한 장애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K조선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돌파하는데 최대 무기될 수도]
그런데 더욱 더 눈여겨볼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될 겻으로 보이는데 이때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K조선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미국을 찾아 관세 적용 제외를 요청하면서 '조선업 분야 협력 강화'를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미 간 조선 협력이 군함 건조까지 확대될 경우 한국의 협상력은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K-조선사들이 미 해군의 전략적 파트너가 된다면 양국 간 우호관계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K조선은 대한민국의 국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 산업으로 부상했으며, 앞으로 미 해군의 대 중국 억제전략을 펼치는 핵심 강국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제2의 반도체’라고도 할 수 있는 K조선산업의 웅비를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이 결코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