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러시아에서는 돈을 벌 방법이 없다” 경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의 종전이 다가오면서 한국 내에서 자동차 업계를 비롯해 일부 분야의 러시아 재진출이 시동을 걸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가 “종전이 된다해도 러시아에서 돈 벌 기회는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특히 미국 기업들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러시아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경고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FT는 12일(현지시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국제관계 프로그램 책임자 엘리나 리바코바의 기고글을 통해 “최근 미국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전과 함께 미국과 러시아간 관계가 증진된다면 미국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잠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면서 “그러나 러시아 경제는 이미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며, 4년후 미국의 정권이 바뀌게 되면 그때는 미국의 대 러시아 정책이 또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짚었다.
FT는 이어 “(이번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기업을 강제로 인수하고 또 투자자 권리에 대한 위협이 가해지면서 러시아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과 불확실한 보상을 수반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해 주었다”고 지적했다.
FT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에 짙은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상품 가격이 급등했던 러시아 시장의 영광의 시절을 기억한다. 당시 투자자들은 원유 가격이 1998년 배럴당 11달러에서 10년 후 배럴당 133달러로 치솟으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렇다 보니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까지 갖게 됐다.
그러나 그 기간에는 특수한 상황이 배경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때는 미국에서 그야말로 기록적인 소비를 기록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상당한 석유 수입국이었고, 러시아는 필요한 만큼의 석유를 생산했으며, EU는 러시아의 가스에 의존했다.
그러나 2014년을 넘어가면서 타이트 오일(tight oil)에 대한 기술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의 석유수입은 대폭 줄어들어 2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석유 수출은 급증했고, 미국은 가스 생산국으로서 러시아를 추월하여 유럽 시장에서 경쟁하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석유 수출이 급증하면서 엄청난 재정 수입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실질 임금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경제는 완전 활황기였다.
그 결과, 러시아의 신흥 중산층은 서구 제품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게 되었고, 미국 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 은행들은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진출하여 국내 기업들과 신중하고 선택적으로 협력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은 러시아의 호황을 누리는 시장에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그러다가 2012년 접어들면서 유가가 정체되자 러시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지 정부 채권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면서 루블은 안정화되어 가장 많이 거래되는 신흥 시장 통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이렇게 외국의 자산가들이 러시아 시장을 압도하게 되자 러시아 당국은 투자자들에게 점점 더 적대적이 되어갔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유코스 인수, 마그니츠키 살인 사건, 이케아 강탈, 러시아 기업과의 잦은 분쟁을 겪은 TNK-BP, 텔레노르의 강제 퇴출 등이 있다. 여기에 일부 외국 은행은 러시아 부패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렇게 러시아 정부당국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2022년부터 미국 기업들은 45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고, 국제 기업들은 총 1,700억 달러의 손실을 입게 됐다. 사실상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외국 기업들에게 러시아는 무덤이 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전쟁 경제로 유지되는 러시아, 소비자 경제는 숨쉴 틈 없다]
문제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물론 러시아는 이 전쟁이 3년 넘게 계속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드러난 바로는 대충 1주일 정도, 길어야 한달 정도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접수하고 전쟁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러시아의 계획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러시아의 군사력이 허우대만 멀쩡했지 그 속은 완전히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의 예상밖 선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FT는 이와 관련해 “현재 러시아의 경제 성장은 전쟁 관련 부문에 의존하고 있으며, 나머지 경제는 정체 상태에 있다”면서 “러시아가 미국이 자국의 방위 산업 기반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FT는 이어 “더구나 러시아 경제는 최근 높은 차입 비용, 노동력 부족, 수익성 있는 수출의 붕괴로 인해 성장세가 정체되었다”면서 “러시아는 유럽에 에너지를 판매하기를 열망하고 있지만, 미국이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이 설사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고 해서 유럽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를 수입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미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FT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재정적 손실은 러시아 경제에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점 또한 러시아에 투자를 하는 것을 심사숙고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러시아의 푸틴과 미국의 대통령간의 갈등이 벌어진다면 러시아에 투입한 수십억 달러가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모험을 감수하는게 과연 맞냐는 것이다.
FT는 “전후 상황이 이러함에도 서방기업의 투자자들이 러시아로 돌아가 투자하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실제로 미국의 자산관리회사들도 푸틴의 전쟁 기계에 투자하여 이미 수많은 연금 수급자들의 자산을 날려버렸는데 또 어찌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말이 과연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FT는 또한 “러시아의 반제재 조치로 인해 시장에 재진입하려면 블라디미르 푸틴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중국은 아예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 주목해야]
FT는 특히 “미국의 일부 사람들은 제재로 인해 투자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의 주요 무역 파트너인 중국은 이러한 제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중국은 수출에 국한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투자 프로젝트는 보류 상태”라고 짚었다.
FT는 이어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의 제재를 의식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러시아의 복잡한 행정 체계와 법치 부재를 투자에 대한 주요 장애물로 꼽고 있다”면서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미국 기업들은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FT는 그러면서 “미국의 기업들 가운데 러시아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있다면 기껏해야 러시아의 병든 석유 및 가스 산업을 지원하거나 러시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등, 부업으로 운영하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볼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로서는 러시아는 여전히 위험한 투자 대상”이라 짚었다.
[종전되면 러시아에 재진출한다는 한국 기업들]
그런데 FT의 이러한 경고가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의 언론들에서 자동차업계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러시아 재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어서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현지 파트너사와 회동을 가지고 신차 출시 계획을 밝혔다는 보도까지 나와 눈길을 끌었다.
C일보는 지난 11일, “자동차 업계가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규모”라면서 “현지 자동차 시장은 전쟁 이전 기준 2016년 130만대에서 2017년 159만대로, 2018년에는 180만대로 성장했는데, 이는 한국 시장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이어 “전쟁 직후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던 도요타자동차는 재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면서 “러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는 지난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러시아 딜러사 관계자들과 비밀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는 20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생산 공장을 설립했으며, 2007년부터 6세대 캠리와 라브4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전 세계 생산량 중 1%를 담당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습을 시작한 2022년 9월 현지 생산을 중단하고 폐쇄를 결정했다.
이 매체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재진출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면서 “현대차그룹은 전쟁 발생 이전까지 러시아 업체인 아브토파즈 다음으로 많은 판매 실적을 올릴 정도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바 있다”고 짚었다.
이렇게 한국의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종전 후 러시아 재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러시아로의 재진출을 구상하는 기업들이라면 FT의 경고를 한번쯤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