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두테르테, '마약과의 전쟁' ICC 영장집행 체포]
필리핀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2016∼2022년 재임)에 대해 반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발부한 체포 영장을 11일 집행, 그를 체포했다. 이로써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과 두테르테 가문과의 싸움은 일단락됐다.
로이터통신은 11일, “필리핀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요청에 따라 홍콩을 방문하고 이날 오전 귀국하던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경찰이 체포했다”면서 “ICC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임기 동안 마약과의 전쟁으로 벌어진 대규모 살상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인터폴을 통해 그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성명에서 “이날 아침 일찍 인터폴을 통해 ICC 체포 영장을 전달받았다”면서 “구금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의사의 검진을 받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혔다.
필리핀 현지 매체들의 보도에 의하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전날 홍콩에서 “ICC가 영장을 발부하면 체포될 준비가 됐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을 옹호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막내딸 베로니카가 찍어 현지 매체에 전달한 영상에 따르면, 그는 이날 공항에서 전격 체포되자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이냐”라면서 큰 소리로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변호사와 보좌진은 “당국이 그를 불법 체포했으며, 경찰에 구금된 그를 면담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허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두테르테는 앞으로 ICC에 인계돼 조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는 현재 마닐라의 빌라모르 공군 기지에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필리핀 대통령실이 구금된 두테르테의 신병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으며, 어떤 혐의를 적용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테르테에 대한 체포 방침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사실상 공지되어 왔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전 대통령 사이가 크게 악화한 가운데 마르코스 행정부가 지난해 11월, ICC의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해 기존의 '조사 불가' 방침을 바꿔 두테르테에 대한 ICC의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13일, 루커스 버사민 필리핀 행정장관은 성명을 내고 “ICC가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인터폴에 조회해 적색수배(국제체포수배)를 필리핀 당국에 보내면 정부는 적색수배를 존중해야 할 요청으로 간주할 의무가 있다고 느낄 것”이라면서 “이 경우 국내 법 집행 기관은 확립된 규약에 따라 인터폴에 전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의회의 마약과의 전쟁 조사위원회에 출석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나는 숨길 것이 없다. 내가 한 행동은 내 나라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변명이나 사과는 하지 않겠다. 내가 지옥에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올해 79세인 그는 “나는 이미 늙었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ICC는 전혀 무섭지 않다. 그들은 여기 언제든지 올 수 있다. ICC에 서둘러서 여기 와서 내일 조사를 시작하라고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 의회에서 “마약 용의자 사살을 위한 암살단이 있었다”면서 “내 명령에 따른 경찰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전적으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약과의 전쟁’ 관련 반인륜적 범죄에 연루된 두테르테]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ICC의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지난 2021년 6월 15일,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실의 파투 벤수다 검사가 “필리핀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인륜 범죄가 있었다고 볼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서 ICC에 정식 조사 개시를 요청하면서 비롯됐다. ICC가 문제를 제기한 당시에는 두테르테가 현직 대통령이었다.
두테르테는 대통령 취임 직후 마약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이 '전쟁' 중에 경찰의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체포와 구금, 소탕과정에서의 잔혹행위 등 범죄 수준의 인권침해가 빈번하다는 지적엔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와 관련해 벤수다 검사는 57쪽 분량의 문서를 통해 자신이 2018년 2월 개시한 예비조사에서 2016년 7월과 2019년 3월 사이에 필리핀 경찰의 반인륜 범죄와 살인이 있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벤수다 검사는 이어 “필리핀 보안군 관계자들이 공식적인 법 집행 절차 없이 수천명의 마약 복용 및 기타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자경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경찰로부터 돈을 받고 시민들을 살해했다”고 말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재직하는 동안 1만2000명에서 3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망자 중엔 미성년자들도 있다.
이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실은 지난 2020년 12월 내놓은 예비조사 결과 보고서에서도 “필리핀 경찰의 소탕 작전에 살해되거나, 체포·구금상태에서 사망한 이들이 5천300명을 넘는다”면서, “경찰이 생명을 위협할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적절하지도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벤수다 검사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부시장으로 근무했던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난 고문 및 기타 비인도적 행위도 조사 대상에 포함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벤수다 검사의 보고서에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범죄자에 대해 살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또한 두테르테의 마약 전쟁에는 고문과 비인도적 행위가 ‘수사’라는 이유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음도 밝혀졌다.
[두테르테 가문과 마르코스 대통령과의 갈등이 ICC이첩 계기]
그런데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테르테에 대한 ICC 조사 요구를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 거부해 왔다. 정치적 파트너였던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사라 두테르테는 아버지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퇴임 이후 마르코스와 손을 잡고 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정치적 동맹 관계는 지속성을 기치로 내걸어 필리핀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프로젝트와 서비스를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8년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사라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차기 대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둘 사이의 우정도 깨어졌다. 결국 두 권력이 충돌하면서 사라 두테르테는 탄핵 위기에 몰렸다. 헌법 위반, 부패, 공공 신뢰 배신 혐의를 인정됐기 떄문이다. 그는 기밀 예산을 오용하고 대통령 및 영부인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두테르테 부녀 모두 5월의 총선을 앞두고 ‘험악한 입’을 선보이면서 문제가 됐다. 지난 2월 13일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중간선거 유세장에서 “폭탄 테러로 상원의원 15명을 죽여야 한다”며 “이들을 없애면 정당 후보자들이 출마할 수 있는 의석이 늘어나고 우리 모두(PDP라반 정당 후보)가 상원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발언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지자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정치 집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농담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실제 테러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며 17일 그를 불법 발언·반란 선동 혐의로 법무부에 고발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유엔 인권조사단을 악어에게 던져버리라”거나 “예뻐서 성폭행 당한다”는 등 과격한 발언으로 비판받았다. 그의 가족 역시 막말로 정치생명이 끝날 처지다.
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도 지난해 11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경호원에게 내가 피살되면 대통령과 영부인, 하원 의장을 암살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가 반란 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두테르테와 마르코스 간 가장 이견을 보이는 것 중의 하나는 외교노선이다. 두테르테는 철저하게 친중노선을 고수하고 있지만 마르코스 현 대통령은 강력한 친미노선을 걷고 있다. 이 때문에 두 가문간 신경전도 치열했다.
일단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ICC의 요청으로 체포되면서 앞으로 더 이상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ICC가 공식 조사에 들어가고 재판에 이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고 이로인한 정치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역시 탄핵 가능성이 높은데다 아버지가 ICC의 수사 및 재판을 받게 되면서 함께 정치적 이미지 추락은 어쩔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써 마르코스 가문과 두테르테 가문과의 전쟁은 마르코스 현직 대통령 가문의 승리로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는 5월 총선에서도 마르코스의 집권당이 결국 승리하는 쪽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마르코스 대통령의 필리핀은 더욱 강경한 친미 반중 노선을 걸으면서 외교적 입지도 강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