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숄츠 집권 사민당 역대 최악 성적 3위 추락]
독일 정치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좌파성향의 집권 사회민주당(SPD)이 3위로 추락한 반면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제1당을 차지하는 괴력을 발휘했기 떄문이다. 또한 미국의 일론머스크가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도 2위로 급부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눈여겨볼 점은 독일의 정치판이 프리드리히 메르츠 체제로 바뀌면서 그동안 집권해 왔던 올라프 숄츠 체제 종식은 물론이고, 그의 정적이었던 메르켈이 지배했던 독일사회를 뒤집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로이터통신은 24일(현지시간) “독일연방선거관리위원회의 최종 개표 결과에 따르면 299개 선거구 정당투표에서 기독민주당(CDU)이 22.6%, 기독사회당(CSU)이 6.0%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이들 연합만으로 28.6%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되었다”면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득표율 20.8%로 뒤를 이었고, 집권 사회민주당(SPD)은 16.4%로 제3당으로 전락했으며, SPD의 현 연립정부 파트너 녹색당은 11.6%, 막판 돌풍을 일으킨 좌파당은 8.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어 “전체 630석 가운데 CDU·CSU 연합이 208석, AfD 152석, SPD 120석, 녹색당 85석, 좌파당 64석을 확보할 것으로 집계됐다”면서 “CDU·CSU 연합과 SPD의 합계 의석수가 재적 절반(315석)을 넘기면서 일단 두 정당의 좌우 합작 대연정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CSU는 바이에른주에만 출마하고 CDU와 공동교섭단체를 꾸리는 자매정당이다.
CDU·CSU 연합은 곧바로 SPD와 연정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연정 구성에 성공할 경우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가 총리를 맡을 전망이다. 한편, 연임에 도전한 SPD 소속 올라프 숄츠 총리는 패배를 인정하고 연정 협상은 물론 차기 정부에서 입각하지 않겠다며 대연정 길을 열어줬다.
CDU·CSU 연합 주도로 연정이 구성되면 CDU 소속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2021년 12월 퇴진한 이후 3년여 만에 다시 보수 성향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변수는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한 AfD는 2013년 창당 이후 최고치이자 2021년 총선 때 10.4%에서 배로 뛴 득표율로 제2당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역사적 승리”라며 “우리는 CDU와 연정 협상에 열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정치적 변화도 불가능하다”며 연정에 참여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알리스 대표는 또 “다음번엔 우리가 제1당을 차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독일 정당들은 AfD가 민주주의를 해친다며 연정 구성을 비롯한 모든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흉악범죄에 지친 독일…난민정책이 총선 승패 갈라]
이번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초강경 난민 정책을 내세운 우파 정당들이 약진하면서 최근 잇따른 난민 흉악범죄와 이로 인한 반이민 정서가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의 설문에서 유권자들은 투표할 정당을 선택한 기준으로 국내 치안(18%)과 사회 보장(1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민(15%)과 경제성장(15%)이 뒤를 이었고, 한동안 독일 정가의 핵심 의제였던 환경·기후 정책에 따라 표를 던졌다는 유권자는 13%에 그쳤다.
'외국인이 독일에 너무 많이 유입돼 걱정된다'고 답한 유권자는 전체의 55%에 달했다. 투표한 정당별로는 극우 독일대안당(AfD) 지지자의 89%가 이같이 답했다.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지지자 중에서는 70%였다.
이와 관련해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최근 몇 달 동안 발생한 범죄로 인해 망명정책이 부각됐다”며 “이민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봉쇄로 이민자 유입이 줄면서 뒷전으로 밀렸지만 팬데믹 이전에도 역시 핵심 쟁점이었다”고 짚었다.
출구조사 결과 제1당을 예약한 CDU·CSU 연합은 국경을 완전히 폐쇄하고 이민자를 국경에서 바로 돌려보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는 이민자 '재이주'를 상징적 구호로 내걸고 제2당으로 올라선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난민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극우 정당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정치권 금기를 깨고 지난달 AfD의 찬성표를 합쳐 난민정책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강경책을 밀어붙였다. 극우 정당에 대한 '방화벽'을 깼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보지 않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앞만 본다”며 앞으로도 AfD와 난민정책에 협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 '獨총선 보수정당 승리'에 "독일과 미국에 굉장한 날"]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중도 보수가 승리하고 극우 정당이 약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관련,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보수 정당이 매우 크고 기대를 모았던 선거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독일과 미국에 굉장한 날(great day)”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선거 결과에 대해 “미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국민들은 수년간 지배해 온 에너지와 이민 등에서 비상식적인 의제에 지쳤다”라면서 독일 보수 정당에 “향후 더 많은 승리를 거두길 바란다”고 밝혔다.
[독일 총리 유력 메르츠, 메르켈 20년 정적 '정통 보수']
눈여겨볼 것은 제1당을 차지하면서 총리직을 예약한 프리드리히 메르츠(69) CDU 대표다. 메르츠 대표는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난민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총리로 취임하면 첫날 모든 국경을 통제하고 유효한 서류 없는 이민자의 입국을 실질적으로 금지하겠다”며 초강경 난민 대책을 예고했다.
딱딱한 인상에 2m 가까운 장신인 그는 1955년 11월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브릴론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방군 포병으로 복무했고 본과 마르부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독일화학산업협회 변호사로 일했다.
학생 시절 CDU에 입당한 그는 1989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뽑히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94년 연방의회에 입성한 뒤 2000년 CDU·CSU 원내대표를 맡았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20년 악연이 이때 시작됐다.
메르켈은 CDU 대표로 2002년 총선을 치른 뒤 메르츠를 밀어내고 CDU·CSU 원내대표 자리까지 차지했다. 메르츠는 2004년 결국 원내부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나며 메르켈과 권력투쟁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2009년에는 정계를 아예 떠나 변호사로 일했고 자산운용사 블랙록 독일법인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그는 2018년과 2021년 CDU 대표에 출마했으나 메르켈 당시 총리가 지원한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아르민 라셰트에게 번번이 밀렸다. 결국 메르켈 총리가 정계를 떠난 2021년 12월 세 번째 도전 끝에 당 대표로 당선됐다.
이와 관련, BBC는 “옛 공산권 동독 출신의 절제된 양자 화학자인 메르켈과 서독 출신의 변호사 메르츠는 눈을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고 소개했다.
메르츠 대표는 CDU 내에서도 보수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SPD와 연정을 꾸리더라도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한 메르켈 총리와 달리 우파 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르츠 대표는 과거부터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소득세·법인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15년 메르켈 당시 총리가 도입한 포용적 난민 정책도 일관되게 비판했다. 그는 메르켈 정부가 결정해 신호등 연정 때 시행된 탈원전을 재검토하고 지난해 4월 합법화한 기호용 대마초도 다시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그는 “독일이 안보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해 수십년간 이어져 온 미국에 대한 의존을 종식해야 한다”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가능한 한 빨리 유럽을 강화해 단계적으로 미국으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현지 언론들은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메르츠 대표가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SPD) 소속 숄츠 총리와 비교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호흡이 잘 맞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23일 “수년 전 앙겔라 메르켈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정부에서 물러났던 메르츠는 CDU 소속 전 총리 앙겔라 메르겔과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라고 분석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도 “메르츠는 100번 이상 미국을 방문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롤 모델 중 하나로 꼽는다”며 “역사상 독일 정부 수반이 이렇게 미국에 호의적인 적이 없었다”고 짚었다.
메르츠는 정계 복귀 전 미·독 친선 기구이자 로비 단체인 '아틀란틱-브뤼케'를 이끌며 '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TTIP)' 체결을 추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미 정치인 및 기업인들과도 두루 인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미국과 손발이 잘 맞을 것이라는 의미다.
메르츠도 지난달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거래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그는 “미국산 F-35 스텔스 전투기를 구입하고,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목표로 GDP 대비 2%를 제시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럼프 2기 들어선 지금, 미국은 기준을 상향해 GDP 대비 5% 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메르츠는 사실상 “트럼프와 협상을 통해 방위비 인상폭을 현실적인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러시아편을 드는 트럼프의 잇단 발언이나 유럽이 극우 유권자와 그들의 정당을 소외시킨다고 비판하면서 JD 밴스 부통령이 독일 선거에 간섭한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때론 대립도 불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