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워싱턴의 모스크바 포용은 트럼프의 의도된 계획”]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럽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용하고 있는 것은 모스크바와 베이징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자칫 트럼프의 이러한 구상이 1970년대 닉슨과 키신저의 책략과는 달리 서방 세계의 분열만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그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을 갑작스럽고 열정적으로 포용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모스크바와 베이징, 이 두 강대국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려는 전략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이 두 강대국은 오랫동안 미국의 국제 질서 지배를 종식시키려 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어 “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1970년대 초, 미국 정책을 뒤집고 공산주의 중국과 친하게 지내면서 마오쩌둥과 소련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려 했던 닉슨 대통령의 움직임에 빗대어 트럼프의 이 전략을 ‘역 닉슨(reverse Nixon)’이라 부른다”면서 “당시 닉슨 책략은 냉전 시대 지정학을 재설정하고 중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고 짚었다.
WSJ은 “그러나 2022년에 ‘무한한 우정’을 선언했던 중국과 러시아의 두 독재국가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면서 “두 나라는 군사 및 정보 협력을 강화하고 외교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은 군사 산업에 사용되는 컴퓨터 칩과 공작 기계를 포함하여 러시아에 필수적인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의 ‘역 닉슨’ 책략, 서방세계 분열시킬 수도]
문제는 워싱턴이 이러한 전략을 수행하면서 러시아를 지지하고 우크라이나를 등지는 방향으로 선회함으로써, 미국이 이미 유럽의 동맹국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WSJ은 “유럽은 미국 최대의 무역 파트너이자 최고의 해외 투자자”라면서 “미국의 외교 정책이 갑작스럽게 전환되면서, 아시아의 파트너들도 동요하고 있다”고 짚었다.
WSJ은 이어 “지난 19일, 트럼프는 러시아의 선전을 그대로 따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독재자라고 부르며 비난했고, 푸틴이 2022년에 소국인 우크라이나에 전면적인 침공을 명령하면서 시작된 전쟁을 키이우가 시작했다고 비난했다”면서 “여기에 최근 뮌헨에서 JD 밴스 부통령이 유럽 지도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약화되고 있다는 징후로 말미암아 수십 년 만에 미국과 대서양 횡단 동맹국 간의 관계에 가장 큰 균열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WSJ은 “리처드 닉슨과 그의 국가 안보 보좌관인 헨리 키신저가 1970년대 초반에 중국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모스크바와 베이징 사이에 이미 존재하던 갈등을 이용했다”면서 “그 결과 중국과 소련은 1969년에 국경 전쟁을 치렀고, 서로를 공산주의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협력은 소련의 세계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전 국무부 고위 관료 출신으로 현재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에반 파이겐바움(Evan Feigenbaum)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역 닉슨(reverse Nixon)’ 전략의 반대에 해당된다”면서 “트럼프는 이념적 친화성과 공유된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두 강대국 간의 협정을 분열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인데, 문제는 트럼프의 이러한 작업이 오히려 서방을 분열시키고 러시아는 미국과 협력하기도 하지만 중국과도 동시에 더욱 밀착할 우려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WSJ은 이에 대해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적 고통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이란과 북한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면서 “이란과 북한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에 탄약, 드론, 미사일을 공급했고 특히 북한은 병력까지 지원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미국은 바로 이렇게 러시아가 이란,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더욱 밀착하게 되면 이러한 연대가 미국에겐 전략적 위협요소라 판단했고, 이에 따라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적대세력의 공동전선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푸틴의 러시아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미 국무장관은 지난 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 고위 관리들과 회담을 마친 후 “공통 관심사에 대해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미국에 “중국과 거리두기 할 것” 약속]
WSJ은 이와 관련해 “회담을 앞두고 러시아 정부와 제휴 관계에 있는 싱크탱크가 크렘린을 위해 작성한 브리핑 메모를 서방 정부가 입수했는데, 이 메모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의 일환으로 민감한 기술 및 군사 문제에 관한 중국과의 협력을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WSJ은 이어 “또한 모스크바는 중국의 전략적 역량을 강화할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유럽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수출 재개를 제한하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의 판매를 허용하도록 할 수도 있다는 약속과 함께 미국 기업들에게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의 광물 매장지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제안도 포함되었다”고 설명했다.
WSJ은 “이러한 조건은 트럼프의 국제 문제에 대한 거래적 접근 방식에 어필하도록 고안된 것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러시아가 실제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유럽정책분석센터의 최고경영자인 알리나 폴리아코바는 “중국은 이미 러시아가 보유한 대부분의 중요한 군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더 발전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제안사항은 별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미국을 유혹하기 위한 제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폴리아코바는 이어 “워싱턴이 우크라이나를 포기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중국에게 대만에 대한 잠재적인 군사적 침략에 대해 더 개방적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11월에 핼리팩스 안보 포럼에서 발언한 미국 해군 사령관 사무엘 파파로(Samuel Paparo) 제독도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거래적 공생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 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WSJ은 “푸틴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는 또 다른, 더 근본적인 역학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전략적이고 영구적이지만, 적어도 미국이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한 미국과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짚었다.
결국 트럼프는 4년 후면 백악관에서 물러날 것이고, 푸틴은 차기 미국 행정부가 급격하게 반대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년 중간선거에서도 미국의 정책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베를린에 있는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소장인 알렉산더 가브예프(Alexander Gabuev)는 “러시아는 중국이 자국의 거대한 이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계속 지배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중국과 거리두기를 하거나 소외시킨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를 이간질하여 분리시킨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 경고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푸틴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결코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관계 개선이 3년간의 전쟁으로부터 피폐해진 러시아의 문제점들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는 물론이고 유럽 세계를 향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도 트럼프를 통해 이룰 수도 있다고 푸틴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파리 싱크탱크인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소장 토마스 고마르는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가 제안하는 것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는 동시에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 역시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왜 미국이 깨닫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사실 중국은 지금 트럼프와 푸틴간의 우호적 관계 형성을 우려하면서도 사실상의 전략적 횡재를 누리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 사이에 갈등 관계를 조성하고 분리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는데, 중국만의 힘으로는 그러한 전략이 먹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뜻밖에 미국의 트럼프가 중국이 원하던 사항을 이뤄주고 있어서 중국으로서는 횡재에 가까운 이득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분리시키고자 푸틴을 전격 포용하는 정책을 채택했지만, 사실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중국이 가장 미소지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중국-러시아, 전략적 입지 강화 시도]
이런 가운데 크렘린은 중국측에 우크라이나 종전과 관련된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타스 통신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러 고위급 회담 이후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과 접촉하는 것은 물론이고, 브릭스(BRICS) 동료들에게 알리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브릭스는 원년 멤버인 브라질, 인도,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더해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가 합류해 총 10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지난 20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진행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별도로 회담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이 구상하는 중국과 러시아간의 분열 확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WSJ의 지적이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낳게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외교적 대전환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두고 보면 알겠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더 지배적이다.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