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의 좌절 끝에 산산 조각난 월가의 중국 계획]
미국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IB)들이 결국 중국에서의 성장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시장을 포기하는 수순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중국 시장에 미련을 가져왔지만 더 이상 버틴다는 것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월가는 미국 당국의 규제, 중국의 경기침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와 인력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면서 “중국이 약 5년 전 은행 시스템을 대외에 개방했을 당시의 낙관주의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지난 12월 중순, 월스트리트의 최대 은행 대표들이 미국 재무부 관리들과 만나 고객들이 잠재적인 국가 안보 위험을 야기하는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데 있어 새로운 규칙을 어떻게 준수할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났는데,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의 은행 관계자들은 회의에서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거래가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지, 복잡한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어떤 보고가 필요한지에 대한 답변보다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중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중국내 시장 변동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변동성도 강하고 어찌보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현재 양국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전망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이어 “실제로 월가 대형 IB들은 최근 2년간 대출, 거래, 투자 등 중국에 대한 노출액을 5분의 1가량 축소했다”면서 “골드만삭스는 중국 직원수가 2022년 정점 대비 15% 감소해 현재 약 400명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데, 당초 골드만삭스는 600명까지 직원을 늘릴 계획이었으나 거래 감소로 인력을 줄이고 있으며, 더 이상 중국에 대한 익스포저 데이터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는 2023년 중국 사업부에서 대규모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중국 법인장과 자산관리 수장을 교체하는 한편 홍콩 경영진 2명을 중국 지역 공동 대표로 임명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JP모건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러시아와 유사한 전면적인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철수를 준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하고 있다”“면서 ”여기에는 중국에서 중요한 고객과 기업 데이터를 제거하거나 재배치하는 비상 계획이 포함된다“고 전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지난해 중국과 홍콩에서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중국 본토에서의 사업 확장을 보류하고, 홍콩을 중심으로 파생상품과 선물 거래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씨티은행도 중국 내 소비자 금융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씨티그룹이 추진하던 중국 증권 사업 진출 게획은 미국 규제 당국이 데이터와 관련 리스크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지시하면서 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그룹도 중국 본토 투자은행 인력을 2019년 대비 절반으로 줄여 지난해 말 기준 50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는 불과 몇 년 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고, 골드만삭스도 중국 시장에 대한 장밋빛 시나리오에 따라 인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그 과정에서 겪은 모험에 관한 책을 집필한 실리콘밸리 은행의 전 CEO인 켄 윌콕스는 “월스트리트 은행들은 모두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면서 “중국 공산당이 오랜 기간 동안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해 “한때 중국에 대한 공언을 서슴지 않았던 월스트리트 최대 은행의 리더들은 이제 더 조용해졌다”면서 “대부분의 경우, 전략이 움츠러들고, 비용을 최소화하며, 실수나 평판 위험을 피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이어 “이 수동적인 전략은 과감한 움직임을 위한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으며,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지 않는 한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대부분의 은행에서 고위급 글로벌 회의에서 중국은 아시아 의제에서 크게 제외되었다”면서 “일본과 인도의 매출 증가로 타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일부 경영진은 중국이 부양책을 내놓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망이 의미 있게 개선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시장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는 월가 투자은행들]
중국 시장이 이렇게 어렵다보니 월가의 은행들마저 의미있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당연히 예전에 세웠던 야심찬 계획들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실제로 중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은행들의 익스포저는 최근 2년간 20% 감소했고,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주요 글로벌 은행 4곳의 2023년 기준 중국 내 총 순이익은 3370만 달러(약 480억 원)에 그쳤는데, 이는 2030년까지 총 90억 달러의 이익을 달성하겠다고 했던 진출 초창기 월가 전체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특히 골드만삭스 증권 부문은 2023년까지 5년 동안 중국에서 6700만 달러의 순익을 냈는데,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이 은행이 보고한 130억 달러가 넘는 글로벌 순익의 0.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월가 은행들의 중국에서 퇴각 조짐이 최근 2년 동안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면서 “여러 차례의 구조조정을 거친 후,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더는 줄일 수 없을 정도로 인력을 감축했으며, 현재는 중국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한 채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시장 전망이 어두운데다 중국정부 태도도 문제]
문제는 중국 경제가 반등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 경제는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그 여파로 중국 증시는 최근 4년 중 3년 동안 폭락했으며, 대규모 기업공개(IPO) 물량은 찾기 어렵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전쟁이 발발하면서 양국의 긴장이 고조, 월가의 중국 사업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규정을 강화하고 있으며 규정 또한 모호한 것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월가 주요 은행 수장들은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재무부 관계자들과 만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새로운 투자 규제를 준수하는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안법 자문을 제공하는 미국 로펌 아킨 검프 스트라우스 하우어&펠트의 파트너인 크리스천 데이비스는 “은행들은 이 규제에 따라 일부 거래를 제안하는 것조차 더 신중할 수 있다”며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또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중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점도 월가 은행들이 중국 사업을 축소하는 이유로 거론된다”면서 “지난 2020년 마윈이 이끄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가 무산된 사례는 월가 투자 계획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앤트그룹은 사상 최대인 350억달러 규모 IPO를 추진했지만, 마윈이 중국 당국을 비판한 뒤 정부가 11시간 만에 상장을 취소하면서 씨티그룹과 JP모건은 막대한 인수 수수료 기회를 놓치게 되면서 금융시장에선 ‘차이나 리스크’가 확대됐다. 이후 중국 IPO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으며, 글로벌 은행들은 중국 본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홍콩에서 2차 상장 거래만 주선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으로 월가의 중국 시장 전략이 더욱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모든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서도 예외·면제 없는 25% 관세 부과를 예고, 글로벌 무역 전쟁이 더욱 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켄 윌콕스 실리콘밸리뱅크(SVB) 전 CEO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이며, 미중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 CEO들은 중국에 대해 실망을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낙관적인 태도를 일단은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이 중국 시장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골드만삭스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 직원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을 구상했던 시기의 거침없는 낙관론과는 대조적으로, 지금의 분위기는 암울하다”면서 “이제 그러한 야심찬 계획들은 산산조각 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중국 시장은 이제 미국의 월스트리트마저 포기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중국 시장의 미래가 없다는 뜻이고, 지금의 시진핑 체제하에서 더 이상 경제적 안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중국 상황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