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종전협상, 美 “지금은 푸틴의 진정성 확인할 때”]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유럽도 제외한 채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미러 고위급회담을 시작하자 유럽 각국이 ‘동맹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격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미국은 러시아가 진정으로 종전회담을 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단계이며 나중에 때가 되면 우크라이나와 유럽 대표들도 함께 논의의 장으로 불러 모으게 될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의 진전이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18일, “미국 국무부의 태미 브루스 대변인은 미러고위급회담 장소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미국과 러시아 간 고위급 회담에 대해 ‘러시아가 평화를 위한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는지 판단하기 위한 단계’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태미 브루스 대변인은 이어 “이번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12일) 첫 통화에 따른 후속 조치”라며 “첫 번째 단계가 가능할지,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이것이 관리될 수 있을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루스 대변인은 “분명히 모든 이의 목표는 이번 회담이 진전을 이룰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우크라이나가 이번 회담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실제 평화를 위한 협상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 중동을 순방중이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도 전날,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배제되고 있다는 유럽의 불만에 대해 “지금 그들은 협상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히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 단독으로 러시아와 종전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한 셈이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재무장관, 키스 켈로그 특사 등 모두가 이번 주 유럽에 머물면서 동맹국들과 협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반박했다.
왈츠 보좌관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만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왈츠 보좌관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연달아 통화했다”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두 정상의 공통점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트럼프 대통령만이 자신들을 대화에 참여시킬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만이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왈츠 보좌관은 더불어 “종전 협상 후 유럽의 안보는 장기적인 군사 안보 보장 측면에서 유럽 스스로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중 3분의 1이 여전히 (안보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 이들은 10년 전에 약속한 최소한의 기여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로 인해 많은 미국인이 그들의 기여 수준에 의문을 품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왈츠 보좌관은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후 우크라이나 희토류 등 대규모 광물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투자하고, 미국인이 (우크라이나의) 발전을 돕고, 그 투자를 보호 수단으로 삼는 것보다 더 나은 안보 보장은 생각할 수 없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과 이 협정을 체결하는 게 매우 현명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왈츠 보좌관은 이번 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 협상이 진행되는지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시작했고, 앞으로 몇주 동안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준비가 돼 있으며,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모두를 한자리에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종전협상 진행에 대해 유럽이 반발하는 이유?]
미국이 이렇게 러시아와 고위급 회담을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유럽 각국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주된 이유는 소외감이다. 한마디로 협상전략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고 미국이 독자적으로 끌고 나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16일(현지시간), 크리스토프 호이스겐 뮌헨안보회의 의장이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날 종료된 뮌헨안보회의가 어떤 의미에서는 유럽의 악몽이었다”고 개탄했다고 보도했다.
호이스겐 의장은 이어 “이 회의로 많은 것이 명확해졌다”면서 “트럼프 치하의 미국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 주도로 설립된 유럽의 방위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사무차장보 등을 역임한 스테파니 밥스트는 영국 타임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더이상 유럽의 동맹이 아니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밥스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헌신하기보다 '왕따 국가'인 러시아와 '전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동조하려고 ‘편을 바꿨다’”면서 “우리는 75년간 알고 있었던 대서양 관계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도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이 ‘매우 불안한 시대’를 만들고 있다”면서 “이는 러시아, 중국과 같은 국가들을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련 붕괴로 이룬 많은 성과가 이제 뒤집히고 있다”면서 “만약 그들(러시아)이 우크라이나에서 성공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도 진출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유럽 주요 언론들도 뮌헨안보회의에서 드러난 미국과 유럽 간 인식의 격차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논평가 다니엘 브뢰슬러의 발언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친절한 모닝콜’을 해주러 독일에 온 것이 아니라 ‘방화범’으로 왔다”고 맹비난했다.
다니엘 브뢰슬러는 “유럽의 질서를 바꾸려는 목표에 훨씬 가까워진 푸틴의 공격에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데, 더 이상 공동의 이익은 물론 공동의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에 의해서도 공격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임에도 종전 협상 과정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현지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사설을 통해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잔혹한 전쟁에서 러시아에 승리를 안겨줄 준비가 됐다. 이것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라면서 “미국 당국자들의 말과 행동이 러시아에 대한 '회유'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이어 “유럽 지도자들이 기회주의자가 아닌 진짜 지도자라면 상황의 시급성을 인정하고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끝내 미국이 빠지고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유럽은 러시아와 일대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종전 결정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언행으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연합해 유럽을 괴롭히거나 유럽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면서 ”이런 변화가 푸틴에게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어떤 목표보다도 훨씬 더 중대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는 분석가들의 관측을 전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고위급회담을 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1단계에 불과하다는 미국측의 발언은 이렇게 유럽 각국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고위급회담 여는 미국의 본심]
이 시점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도 제외하고 러시아와 고위급 회담부터 덜컥 개시한 미국의 본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알려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관련 발언들을 유추해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기간동안 푸틴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하면서 자신이 취임하면 하룻만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다가 정작 대통령 취임 시점에 이르러서는 종전에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했고, 최근에는 부활절인 4월 20일 경에 종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시점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를 향한 발언들은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의 다소 부책임하던 발언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또한 러시아를 대하는 태도 역시 어감도 다르고 또한 실제 행한 발언들의 내용도 달라졌다. 눈여겨볼 것 중 하나는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트럼프와 푸틴간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진 후 트럼프는 자신만만하게 통화 사실을 공개했지만, 크렘린궁은 사실 확인 자체를 하지 않다가 나중에 ‘통화했다’고 시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 국무부내의 흐름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관련해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이는 분명히 종전협상에 대해 미국측이 뭔가 치트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추정으로는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이 도저히 전쟁을 치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지속하면 할수록 러시아가 입는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결국 붕괴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미국측이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한다는 것은 사실상 푸틴에게 큰 시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푸틴에게 명분만 세워준다면 미국측은 종전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단서 하나가 있다. 밴스 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면서 ”러시아가 평화 협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견할 수도 있다“면서 ”미국은 또한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들과 군사적 수단들을 총동원할 수도 있다“는 폭탄성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딜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놀랄만한 합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외 언론들에서 터져 나오는 우크라이나 및 유럽 배제론과 함께 미국의 독단적 협상진행과 관련된 부정적 기류는 일단 접어두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