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군사기지 훔쳐본 中 간첩들, 미군기지 겨냥 첩보전]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간첩활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 항모를 염탐하더니 필리핀에서도 군사기지 등을 몰래 촬영하다가 들통났다. 미국에서도 연방고위 학자가 고급정보를 중국에 넘기려다 당국에 체포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렇게 중국의 간첩활동들이 연이어 발각되면서 국가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리핀의 GMA News는 지난 1월 28일, “대만인 관광객으로 위장한 중국인 다섯 명이 설 연휴 직전 필리핀 서부 팔라완섬에서 한 리조트에 투숙해 드론과 휴대폰으로 군사기지와 해안경비함 사진을 찍고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했다가 필리핀 수사 당국에 검거됐다”면서 “용의자들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필리핀 당국은 그들이 촬영한 군사기지 사진 등을 이미 확보해 범죄 입증엔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하이메 산티아고 국가수사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용의자들이 드론으로 스프래틀리군도와 가장 가까운 큰 섬인 팔라완섬 내 군사기지와 해안경비함 등을 촬영했다”고 했다. 로미오 브라우너 필리핀 육군 참모총장은 “이 자료가 다른 나라 손에 들어가면 군사기지와 경비함에 있는 인원들이 위태로워지는 등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필리핀 당국은 앞서 지난 1월 20일에도 필리핀 북부 루손섬 인근 군 기지와 발전소·경찰서 등 각종 기반 시설을 정찰하고 3차원 입체 영상 자료를 수집한 혐의로 인민해방군 육군공정대학을 졸업한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인 중국인 덩위안칭 및 필리핀인 두 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군 기지, 지방정부 사무실, 발전소, 경찰 시설, 기차역, 쇼핑몰 등 중요 인프라를 자주 방문했다고 필리핀 국가수사청(NBI)은 전했는데, 실제로 ‘자율 주행 개발 차량’이라는 표지를 단 차량을 몰고 다니면서 각종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이 압수한 차량에는 목표로 하는 기반 시설에 대한 3차원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과 위성항법장치(GPS) 등 각종 정보 수집 장비가 있었다. 이들은 이미 루손섬 지역은 정찰을 끝낸 상태였고, 이후 중부 비사야스 제도, 남부 민다나오섬 등으로 정찰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NBI의 사이버범죄 담당 책임자인 제러미 로톡은 "이들은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해외로 전송하는 원격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위치 좌표와 지형 등 정보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 우려스럽다”고 로톡은 덧붙였다.
특히 덩위안칭의 경우 한 유령회사에 정기적으로 170만~1200만페소(약 4200만~3억원)의 돈을 보낸 사실까지 포착돼 필리핀 국가수사국은 배후의 중국 간첩 조직을 확인 중이다. 이번에 발각된, 팔라완섬에서 군 기지를 촬영한 중국인들과 연락한 흔적도 나왔다. 이를 보면 이들이 별개가 아닌 한 그룹으로 움직였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필리핀 군 당국은 이들이 필리핀내 미군기지를 대상으로 간첩활동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로미오 브라우너 육군 참모총장은 “이들이 획득한 정보가 다른 세력의 손에 넘어가면 우리 군 기지와 선박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다만 필리핀 당국은 간첩들의 소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 당국이 필리핀내의 미군기지에 대해 민감한 것은 이 지역, 특히 루손섬 내의 필리핀 공군기지와 해군기지 내에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일어나는 충돌 등 유사시에 대비해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발사 시스템 타이푼 포대 등을 배치해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클라크 공군 기지엔 미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배치된 적도 있다.
[한국의 미군 항공모함과 국정원도 촬영했던 중국간첩]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곳곳에서 전방위로 첩보전을 벌인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중국인들이 드론으로 부산항에 들어온 미국 항공모함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청사 등을 찍은 사실이 적발돼 간첩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같은 일이 필리핀에서도 벌어진 셈이다.
지난 1월 6일, 경찰청 관계자는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 A씨를 지난 2일 군사기지법 및 문화유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 입국 직후 내곡동에서 사적 제194호인 헌인릉을 드론으로 찍다가 인근에 있는 국정원 건물을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중국인 3명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무인기로 불법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미 해군 항모는 프리덤 에지 훈련 참여를 위해 부산항에 입항했었는데, 이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호(10만t급)를 인근 야산에서 드론으로 불법 촬영한 혐의(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를 받는다. 경찰은 이들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에서 해군작전사령부를 드나든 항공모함·잠수함 등 군사시설 관련 사진 500여장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 암약하는 중국인 간첩’ 美 “안전 위협”]
중국인 관련 간첩은 미국에서도 암약중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일(현지시간), “전직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경제학자가 지난 31일 체포되어 중국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민감한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되었다”면서 “그는 중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고 중국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하는 척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중국이 세계 곳곳에서 간첩 행위를 통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미국 당국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필리핀에서 미군 시설 정찰 등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미국의 이익의 증진을 최우선으로 두어 스파이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1월 29일(현지시간) “최근 중국인 간첩이 해외 미군 시설 등을 상대로 정찰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VOA에 “우리는 미국인과 제복을 입은 용감한 미군 장병의 안전과 안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언급했듯이 ‘우리(미국)의 임무는 미국의 외교 정책이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고 미국인을 더 안전하고 강하며 번영하게 만드는 모든 활동으로 명확하게 정의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 아래, 국무부의 최우선 순위는 미국 국민의 안전과 힘, 번영”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미국 등을 상대로 정찰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는 중국인 사례가 최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10일에는 미국령 괌에 중국 국적자 7명이 불법 입국하려다 체포됐다. 괌에는 미사일 실험을 실시할 수 있는 앤더슨 공군 기지를 포함한 다수의 군사 시설이 위치해 있는데, 미국 미사일방어청은 10일 새로운 레이더를 이용한 주요 미사일 요격 시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국의 민간 연구단체인 전쟁연구소(ISW)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미군 시설에 대한 중국의 스파이 활동 가능성을 제기했다.
VOA는 이어 “지난해 말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커가 최근 미국 재무부를 해킹해 일부 문서에 접근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재무부는 중국 해커들이 400대 이상의 노트북, 데스크톱 컴퓨터와 함께 재무부 고위 관리들의 컴퓨터에 침입해 직원들이 사용하는 유저명과 비밀번호는 물론 기밀이 아닌 3000개 이상의 파일에 접근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재무부 해킹 사건을 “중대한 사이버 보안 사건”으로 규정하고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인프라보안국(CISA)과 연방수사국(FBI) 등 다수의 정부 기관과 수사 기관을 동원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중국서 北 공작원 접선' 민주노총 간부 2명 기소]
중국의 간첩활동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북한 간첩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해 지령을 받은 혐의로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는 점에서 이 문제도 심각하게 다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31일,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는 국가보안법 위반(특수잠입·탈출, 회합) 등 혐의로 이들을 검거했는데, 이들은 북한 지령문에 따라 활동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석 모씨는 2017~2022년 북한 지령문을 받아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 활동을 하거나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혐의로 2023년 5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뒤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석씨는 북한의 지시에 따라 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성향과 동향, 국회의원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 등을 북한 공작원에게 넘겼다.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을 근접 촬영해 전달하기도 했다.
[다시 떠오른 간첩죄, 이젠 확대 적용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주목할 점은 중국 정보당국에 포섭돼 우리 군의 ‘블랙요원’ 명단을 비롯한 군사기밀을 7년여간 유출한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 A씨(50)가 최근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나라의 정보기관이 통째로 뚫린 것에 대한 재판인데도 현행법의 한계로 ‘간첩죄’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지난 1월 20일, 지난 21일 열린 A씨의 선고공판에 징역 20년과 벌금 12억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1억6205만원을 명령했다. 그렇게 대북공작과 휴민트(인적 첩보 체계) 관련 요원 신상 유출은 물론 정보사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렸지만 정작 간첩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A씨가 기밀을 넘긴 대상이 북한인이 아니라 재중동포 추정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간첩죄의 적용대상은 적국인데, 중국은 적국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적국을 비롯한 모든 외국 정부, 또는 외국기관·정당·부처·군 등의 소속이거나 이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야당은 악용 가능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이제라도 간첩죄의 적용 법규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