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트럼프 대통령, 완전한 북한 비핵화 추구할 것”]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한의 핵보유국 발언 등으로 북핵 인정 및 한국의 핵무장론이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와중에 백악관이 트럼프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쐐기를 박고 나서 북한 김정은의 핵무력 강화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의소리(VOA)는 29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라고 확인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북한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지칭한 점 등을 근거로 미국이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완전한 비핵화’에서 물러나 북한과 군축 협상에 나서는 ‘스몰 딜’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날 브라이언 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미국의 목표가 지난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타협할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똑똑한 남자(smart guy)”라며 그에게 다시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미북 정상외교 재개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미북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가 담긴 합의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닭 쫓던 개’ 신세된 김정은, 핵시설 방문 헛발질]
그런데 이 시점에서 주목할 점은 북한 김정은의 행보다. 미국 내에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가’라 부르면서 북핵 인정과 함께 미국이 핵군축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들이 나오자 북한 김정은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굳히려는 듯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 지도하고 나섰다.
김정은의 이러한 행보는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이 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9일, “김정은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를 현지 지도하고 현행 핵물질 생산실태와 전망계획, 2025년도 핵무기연구소의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료해(파악)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구체적인 방문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이날 지도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간악한 적대국들과의 장기적인 대결이 불가피하다”며 “현재 위협과 새롭고 전망적인 안보위험성에 대비하고 국가의 주권, 이익, 발전권을 담보하려면 핵방패의 부단한 강화가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이어 “우리 국가의 핵대응태세를 한계를 모르게 진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확고한 정치군사적 입장이며 변함없는 숭고한 의무이고 본분”이라면서 “적수들을 철저히 제압하고 정세를 주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은 그 어떤 선언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가용한 물리력의 비축, 기하급수적인 증가”라고 강조했다.
일단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김정은의 이번 현지 지도 장소는 작년 9월 김정은의 현지 지도로 공개했던 핵물질 농축시설과 같은 장소로 보인다.
김정은의 이날 현지 지도에서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다시 대화하겠다고 밝힌 지 6일만에 나온 것이고,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 말하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도 청문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 발언한 이후, 미국 및 한국에서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이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김정은이 핵시설을 방문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려는 의도적인 행보로 풀이가 된 것이다.
[북한 ‘핵보유국’ 발언과 북한 비핵화 포기 논란]
실제로 지난 14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한 바 있는데,. 그가 쓴 용어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5개 핵보유국(미·중·러·영·프)을 뜻하는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는 아니지만,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처럼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가진 것으로 인정되는 나라를 지칭한다.
이런 상황에서 15일(현지시간)에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북한의 핵보유국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환상”이라는 민주당 의원의 발언과 관련 “향후 미국의 입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더 광범위하게 대북정책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전반적인) 관심(appetite)이 있다”고 답했다.
루비오는 새 대북 정책의 방향과 관련해선 “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에 대한 우발적 전쟁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할지 봐야 한다”며 “각자의 핵무기를 추구하도록 자극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막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루비오 장관의 이날 발언은 대북 전략의 목표가 비핵화가 아닌 미국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없애는 데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는 점에서 파문이 일었다.
이러한 발언들은 당장 미국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나 대만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발언은 전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며 “헤그세스가 사용한 용어는 핵보유국을 지칭하는 말이 맞지만, 아직 미국의 대북 정책의 방향이 공식적으로 변화할 거라고 해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클링너는 그러면서도 “헤그세스는 외교적으로 북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술적으로 표현했어야 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FOX TV의 앵커를 지냈던 헤그세스가 북핵에 대해서는 비전문가라서 제대로된 표현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미연합사 작전 참모를 지냈던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면서 “헤그세스가 청문회 준비 전에 한국 문제에 대한 실질적 브리핑을 받았는지 상당한 의심이 갈 정도인데, 현재까지는 (헤그세스 외에) 외교와 북한을 알고 있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알렉스 웡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은 북한에 어떠한 유화책도 허용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에 더욱 불을 지른 것은 우리 국정원이 보여준 태도다. 우리 국가정보원은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트럼프가 김정은과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며 “핵동결과 군축 협상 같은 ‘스몰딜(small deal)’이 추진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임기내에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핵보유를 전제로 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국정원이 그렇게 추론한 것은 아마도 지난 대선 기간동안 공화당이 한반도 관련 정강정책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삭제했기 때문에 당연히 스몰딜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본 것으로 판단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으니 김정은도 당연히 트럼프 2기의 한반도 정책이 1기때와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으며, 특히 북핵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되 핵군축 협상의 방향으로 가는 스몰딜이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김정은은 돌연 핵시설을 방문하면서 트럼프 2기의 미북대화 방향을 주도하려 했지만, 오히려 백악관이 트럼프 2기 때도 ‘북한 비핵화’를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으면서 김정은은 한마디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2기, “김정은은 고달픈 길을 갈 것”]
지난 미국 대선 기간동안 트럼프 당시 후보가 김정은을 치켜 세우고 ‘좋은 사이’라는 발언을 꺼내자 국내외 많은 언론들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미북 직접 대화의 장을 열 것이고 또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은 오히려 계산된 것일 수 있고, 그렇게 발언했다고 해서 그런 말들을 꼭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망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대표적인 북핵 및 한반도 전문가인 시드 사일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되리라고 본다. 4년 전과 비교할 때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의 핵 개발 진전도”라면서 “트럼프가 북핵 고도화를 이뤄가고 있는 북한에 1기 때처럼 ‘러브레터’를 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최근 북한의 한민족 부정과 ‘두 국가론’ 등 기조를 감안할 때 북한도 김정은이 판문점까지 내려왔던, 과거와 같은 수준의 미북 대화를 원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이 끼어든 점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상당한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대 러시아관이 선거 캠페인 때와 지금 엄청나게 달라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선거전과는 달리 푸틴과 부드러운 협상을 할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김정은에게도 큰 변수다.
만약 러시아의 푸틴이 자신이 구상한대로 트럼프가 양보해 주지 않는다면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가 곤경에 처하면 북한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된 지금, 러시아의 어려움은 김정은에게 큰 혼란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의 앞날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