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쇠약해진 러시아 해군]
매년 7월 마지막 일요일을 해군의 날로 기념하는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최고 지도부 앞에서 그 위용을 뽐내면서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쳤지만 사실상 러시아 해군의 몰락을 보여주는 장례식같이 되어버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6일, “러시아 해군이 창건 기념일을 맞아 호화로운 퍼레이드를 펼쳤지만 축하행사라기보다는 러시아 해군을 추모하는 행사로 전락해 버렸다”면서 “러시아 해군은 지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부터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손실이 더해지면서 아예 몰락하고 말았으며 과거의 위용을 되찾기까지는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이어 “지난 7월 28일 러시아의 지도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여러 지역 함대의 본부에서 약 50척의 군함과 150여 척의 소형 보트들이 펼치는 퍼레이드를 시찰했고, 이틀 후에는 북부, 태평양, 발트해, 카스피해 함대가 대규모 훈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여진 퍼레이드에서의 화려함과는 달리 러시아 해군은 깊은 속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텔레그래프의 진단이다. 실제로 러시아 해군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전함인 유일한 항공모함 쿠즈네초프 제독(Admiral Kuznetsov)함은 수리를 위해 벌써 7년째 조선소에 방치되어 있는데, 이 항모가 다시 가동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혀 없다. 또한 러시아 해군이 이 항모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건조작업 역시 절대적으로 기대난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 해군의 조선 부문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제재가 워낙 강력해진 탓도 있고, 그전까지도 러시아의 대형 선박의 엔진을 우크라이나에서 제조해 왔지만 전쟁으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면서 핵심 부품에 대한 조달 자체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유일의 항모인 쿠즈네초프 제독함도 사실 1980년대에 우크라이나에서 건조된 것이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능력을 탈취하고자 하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러시아가 자체 건조할 수 있는 함정은 소형들 뿐이다. 실제로 올해 러시아 해군은 프리깃함 1척, 기뢰부설함 1척, 초계함 3척, 잠수함 3척을 시운전하는 데 성공하여 6,000톤의 신규 함정을 순증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배수량 240만 톤의 함대를 보유한 러시아는 이 미미한 증가율로 전 세계 해군력 확장 순위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총 배수량 820만 톤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함대도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신규 선박 구매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3만 5,000톤을 늘리는 데 그쳤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의 우방국의 지원을 받아 해군 함정 건조를 강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투력 제로’로 추락한 러시아 흑해함대]
그러나 러시아 해군의 진짜 문제는 전투력 자체가 완전히 쇠퇴해 버렸다는 점이다. 러시아 해군의 전투력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의 지난 29개월간 전투에서 해군이 전혀 없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흑해 함대의 대형 군함 약 30척 중 3분의 1을 파괴하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혔으며, 2022년 4월에는 함대의 기함인 미사일 순양함 모스코바를 침몰시키는 등 러시아 해군의 주력 함정 3척을 파괴했다.
우크라이나는 올해에만 12,000톤의 러시아 군함을 파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 러시아 해군의 날 기념식에 흑해함대는 아예 참가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눈에 띄는 쪽쪽 공격을 받다보니 모두 러시아의 깊숙한 항구에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에 흑해 함대 함정들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미사일과 수상 드론 등으로 연이어 공격을 해 오자 러시아 해군 함정들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크름반도 항구를 떠나 러시아 남부의 항구로 피신해 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러시아 본토의 깊은 곳으로 가버린 러시아 해군들은 흑해에 대한 작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원래 러시아 흑해함대가 흑해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우크라이나 화물선 등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젠 그 모든 임무가 올스톱되어 버린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원래 러시아 해군은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남부의 도시들을 향해 장거리 순항 미사일들을 발사하면서 러시아 육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이 역시 모두 중단됐다.
이와 관련해 텔레그래프는 “지금의 추세로 봤을 때 러시아 해군의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면서 “내년의 러시아 해군의 날은 지금보다 더 슬픈 날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크름반도에 있던 러시아 잠수함마저 파괴한 우크라이나]
하다하다 이젠 러시아의 잠수함마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피격되는 일이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가 성명을 통해 3일 크름반도 세바스토폴 항구에 있던 러시아의 킬로급 공격 잠수함 '로스토프온돈'을 미사일로 공격해 침몰시켰다고 밝혔다”면서 “2014년 진수된 이 잠수함은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잠수함 4척 가운데 1척”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이어 “러시아 측은 즉각 논평을 내놓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주장이 맞는다면 러시아 흑해함대 잠수함의 첫 침몰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이번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크름반도 S-400 방공시스템의 발사대 4기도 파괴했다”고 전했다.
영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로스토프온돈함이 지난해 9월 세바스토폴항 조선소에서 정비를 하다가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최근에 이 잠수함을 수리한 후 세바스토폴항 근해에서 기능 점검을 위한 운항을 하던 도중에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재차 피격을 당해 결국 침몰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로스토프온돈함 파괴는 흑해의 우크라이나 영해에는 러시아 함대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그동안 최소 15척의 러시아 군함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침몰시켰으며, 지난 3월에는 세바스토폴항에서 러시아의 상륙함 2척과 순찰선 1척을 타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공군기지 및 케르치대교 방어망도 파괴한 우크라]
한편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잠수함을 격침시킨데 이어 러시아 본토의 공군기지를 타격했으며 케르치대교 방어를 위한 미사일 시스템도 파괴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6일, “우크라이나군은 크름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케르치 대교를 보호하는 S400 대공 미사일 단지를 공격해 파괴했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은 또한 러시아 로스토프 지역의 모로조프스크 비행장을 대규모 드론 폭격으로 공격하여 유도 공중 폭탄을 포함한 탄약을 보관하는 창고를 폭파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NASA 위성 모니터링은 러시아의 비행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을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흑해함대 붕괴가 주는 교훈]
사실 해군이 전혀 없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흑해함대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흑해함대의 몰락이 주는 교훈도 크다.
텔레그래프는 7일, “해군이 전혀 없는 우크라이나군이 막강한 러시아의 흑해함대를 무력화시켰다고 해서 해군 무용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러한 우크라이나군의 성과는 오히려 항공모함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몰락하게 된 세 가지 중요한 이유들을 제기했다. 첫째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적국이 점령한 영토와 매우 가까운 기지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자리하고 있던 세바스토폴과 노보로시스크는 우크라이나의 공격권 범위내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드론과 미사일이 파괴한 대부분의 선박은 나란히 묶여 있거나 정박해 있는 상태에서 공격당했는데, 이는 적의 공격 범위 안에 위치해 있을 떄의 위험성을 말해 준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흑해는 바다라고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데 러시아는 사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력을 너무 무시하다가 된통 당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흑해는 바다가 아니라 사실상 호수와 같기 때문에 큰 파도가 일어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군은 바로 이 점을 적극 활용해 스피드 보트나 수상드론을 투입해 러시아 해군을 때려 잡았다. 사실 흑해가 파도가 많은 바다였다면 우크라이나군이 수상보트나 수상드론을 사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러시아군은 흑해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에 대해 너무 무시하다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러시아는 전략적 수준의 감시 또는 공중 사진 인식 기능이 크게 손상되었다는 점도 흑해함대 무력화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사실 해전에서는 수백 마일의 바다를 커버할 수 있는 공중 레이더에 의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함정의 레이더는 수평선 너머로 30마일 이상 떨어진 저공비행하거나 떠다니는 물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핵 억제 잠수함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해상 초계기를 북쪽 전선에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투폴레프-142 해상 초계기를 흑해에 배치할 수 없었다. 더더욱 러시아는 지난 1월에 아조프해 상공에서 귀중한 베리예프 A-50 레이더 정찰기를 잃었고, 2월에는 러시아 영공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정찰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찰능력의 실종은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우크라이나 드론이나 곡물 수송선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러시아가 그러한 정찰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면 칼리브 순항 미사일이나 공습으로 곡물선을 타격하여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무역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적절한 공중 레이더 사진만 있었더라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항구를 떠나자마자 또는 그 전에 드론 공격을 감지하고 목표물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요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너무 만만하게 봐서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을 벌였고, 그러한 오만함이 흑해함대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