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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06 1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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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젊은 아버지를 음주운전으로 죽이고도 응급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20대 청년
-“내 아들 수술 왜 이렇게 지체해? 내 아들 다리 못쓰면 어떡할 거냐?”며 반말 하는 그 어머니
-만취상태로 싸우다가 구급차에 실려가던 중 덜컹거렸다고 여성 30대 구급대원 폭행한 50대


▲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러 거룩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본원 응급실 인턴을 돌던 때이다. 아침 8시 응급실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조용하다.

응급실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그 시간만큼은 환자가 대체로 뜸하다(이런 언급은 응급실에선 흔히 금기로 통한다고 한다. 말을 하자마자 신환이 몰려든다나).


오늘 근무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여유가 주어지는 시간이기에, 하나라도 더 배워보려고 항상 그날 퇴실환자를 포함한 여러 환자들을 보며 하얗게 지새웠을 동기 인턴이 기록한 전자차트와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처방한 검사와 응급초기 치료기록을 까 본다.


이 환자는 무슨 환자였을까, 다른 선생님들이 설명해주실 때에는 잘 보이는데 내가 내리기만 하면 사라져버리는 총담도관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염증은 어디에 있나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무지함에 쓴웃음 지으며 기웃거리곤 했다.


며칠 전 그 날도 그러했다.

응급실 내부에 경찰 여러 명이 기웃거리고 있었고, 응급실 내원 환자 목록에도 특이한 환자가 있었다.

새벽 무렵 거의 동시에 20대, 30대 남자가 응급실을 내원했다.


한명은 이미 심 정지 상태로 들어와 심폐소생술 후 끝내 사망, 또 한명은 다발성 갈비뼈 골절에 오른쪽 발목뼈가 짓뭉개져 있다(인턴 눈에도 보이는 X-ray 골절은 아작난 거다).

누가 봐도 교통사고의 냄새가 났다.

밤을 꼬박 지새우며 응급실을 지켰던 인턴동기에게 물었다.

들려오는 답변이 충격적이었다.


“지금 저기 발목 골절된 살아있는 사람이 음주 운전했는데, 2시간 전에 죽은 사람 차를 박았대.”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망자는 어제까지 건강했던 한 가정의 대들보였던 30대 후반 젊은 아버지,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내고도 살아남은 이는 20대 초중반. 평온한 아침 응급실에서 그 20대 청년은 아직도 술에 만취한 상태로 그의 팔과 다리를 묶은 붕대를 풀어달라며,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에게는 “아가씨 이것 좀 풀어줘 물 좀 줘 씨발!”이라며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짜식. 불쌍한 녀석. 너는 수술하고 나서도 이제 십 수 년 감방행이야. 평생 지울 수 없는 빨간 줄 하나를 긋고, 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장본인이 바로 너야, 그 술 몇 병 때문에. 아니, 대리운전비 2~3만원이 아까워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장본인이 너란 말이야. 인생 꼬였어, 불쌍한 자식 같으니라고.’


오늘 유명을 달리한 저 운전자가 내가 될 수도, 나의 가족이 될 수도,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감출 수 없는 분노를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속으로 오만 욕을 했다.


얼마 안 있어 그 청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보호자가 응급실을 들어왔다.

역시나 그 아들의 그 엄마였나. 이 보호자가 들어오기 전 역시나 응급실은 신환들로 북적거렸고 그때 내가 확인했던 응급실 내원환자가 54명이었다.


아까 ‘음 평온하네. 오늘은’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스스럼없이 자책하며 물 한 잔 제대로 마실 시간 없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일하고 있었다.

빨리 환자 파악하고 레지던트 선생님께 노티 드려서 정리해야 하기에 전자차트를 작성하고 있는 나에게 그 어머니가 물어온다.


“내 아들 수술을 왜 이렇게 지체하는 거냐? 이렇게 지체되었다가 내 아들 다리 못쓰면 어떡할 거냐? 일단 줄 좀 풀어 달라. 내 아들이 풀어달라고 하는데 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냐!”


평소 같았으면 씽긋 웃으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담당 선생님도 환자분 보고 계셔서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했을 테지만 이 아들이 행한 일을 알고 있기에 도저히 웃으면서 답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짜증나게 이 아주머니 나한테 반말했네?


자기 아들 빨리 봐달라는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남에게 욕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이 당시 생각을 그대로 적어본다.)


“좀 닥치고 기다리고 있어. 너 아들놈이 술 쳐먹고 정신 못 차리고 운전한 것 때문에 돌아가신 그 분과 그 의 아내와 자식들은, 그 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앞이 깜깜해지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일 텐데, 장례식장에 평소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영정사진을 어떻게 가져와야 할지, 이제 앞으로 한평생 어찌 살아가야 할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일 텐데 지금 그딴 소리가 나오느냐? 양심이 있으면 너 아들 고래고래 술주정 부리는 거 말릴 생각을 해야지, 의료진에게 닦달하는 너는 양심도 없고 썩어빠진 쓰레기 같은 년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에겐 권한이 없습니다. 정형외과 선생님이 아까 설명해주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오래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환자분만 아픈 게 아니라 이곳에, 이 병원에 내원한 환자 모두가 다 아파요. 보호자분 환자보다 촌각을 다투는 더 아픈 환자들도 많아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주머니는 뭐라 뭐라 뾰루퉁한 표정으로 궁시렁거리며 내 앞을 떠나갔다.

내 앞에 쌓인 환자가 너무 많았던지라 그 개념 없던 사람들에게 여념을 쏟아 부을 수 없었다.

어느 때와 다름없던 폭풍 같은 응급실의 수 시간이 지나가고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철부지 가족이 생각나니 갑자기 부아가 났다.


우리 학교 졸업식 때에는 항상 졸업생들이 모두 일어나 히포크라테스 선언(정확히 말하면 제네바 선언이 맞다.)을 한다.

하지만 나는 졸업식 날 그 의식을 치를 때에 오른손을 들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모두가 일어나니 나도 일어나서 선서를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또 그렇게 고매한 양심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나는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할 것을 안다.

나의 부모를 음주 운전으로 사망케 한 사람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 생명이 위독하여 들어왔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치료할 자신이 없다.


‘그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기에 아마 다른 의사에게 부탁을 하겠지. 그런데 나 혼자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려야하나? 그냥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하나?’


이 질문에는 아직 내 스스로 답하지 못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일 테지만 이러한 고민을 자주 하곤 했다.

일반인들이 의사들과 다투다가 내세울 논리가 없을 때 항상 의사들을 마지막으로 옭아매던 ‘히포크라테스 정신’, 당신이 만약에 그 죽음을 당한 본인이었다면, 아니면 돌아가신 분의 가족이라면, 그 순간에도 고매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들먹일 수 있었을 텐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아직까진 없다.


오늘 새벽 만취한 상태로 취객과 싸우다가 신고에 의해 머리 찰과상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가는 도중 구급차가 방지 턱에 덜컹거렸다고 순간 홧김에 여성 30대 구급대원을 발길질 하며 폭행했던 50대 여성의 기사를 방금 보고, 잊고 싶었던 이 사건을 며칠 전 써놓은 일기장에서 다시 끄집어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는데,


앞서 음주 운전했던 그 젊은 친구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오늘 기사로 접한 이 50대 아주머니가 오늘은 싫다.


“그 죄가 아니라 사람이 싫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기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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