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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2인자 용납않는 시진핑, 권력구도 흔들었다! - 차이치 2인자 부상설에 왕후닝 카드로 구도 뒤흔든 시진핑 - 시진핑 비서실장에 당정업무 총괄까지 맡은 차이치 - 시진핑이 왕후닝을 전면에 내세운 또다른 이유?
  • 기사등록 2024-07-27 04: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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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치 2인자 부상설에 왕후닝 카드로 구도 뒤흔든 시진핑]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 서열 5위인 차이치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에 대해 사실상 2인자로 부상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차이치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자 곧바로 당 서열 3위인 왕후닝(王滬寧)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에 힘을 실어주면서 당 권력 구도를 뒤흔들었다. 이로인해 중국에는 2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5일 “지난주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막을 내린 후 갑자기 왕후닝이 권력 구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왕후닝은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를 책임지는 인물로 25일에는 응웬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3중전회 폐막 후인 지난 21일 보도한 내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시 주석은 이번 3중전회 결정(문)의 작성에서 자신이 작성조장을, 왕후닝·차이치·딩쉐샹(국무원 부총리·서열 6위)이 부조장을 맡았다. 그런데 왕후닝이 ‘수석 부조장’으로 언급됨으로써 왕후닝이 차이치를 뛰너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더더욱 이번 3중전회가 중국 공산당에 있어서 아주 의미 있는 행사였는데 이러한 3중전회의 총정리를 왕후닝이 맡았다는 것은 그가 시진핑의 신뢰와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업무는 차이치 중앙서기처 서기가 수석 부조장 역할을 맡았었다.


[시진핑 비서실장에 당정업무 총괄까지 맡은 차이치]


사실 왕후닝이 갑자기 시진핑의 총애를 받는 인물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권력 2인자로 불려지는 차이치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차이치는 시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으면서 당정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기구의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여기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와 함께 중앙 및 국가기관공작위원회 서기까지 겸임하고 있다.


여기서 중앙 및 국가기관공작위원회는 2018년 당정기구 개편에 따라 중앙 직속기관 공작위원회와 국무원 국가기관공작위원회가 합쳐진 조직으로, '통일 조직과 기획, 배치'를 주업무로 하는 실세 조정기관이다. 업무 범위에 각급 당 조직의 정치, 사상, 조직, 작풍, 기율 지도와 함께 당원 간부에 대한 감독관리, 사정감찰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4월, 차이치를 이런 자리에 임명했을 때, 시 주석이 직접 당정 업무를 관장하고 자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분석했으며, 그러한 시진핑의 눈과 귀로서 차이치가 임명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해외에서도 차이치가 사실상 중국의 2인자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임명 1년반 정도가 지난 지금 차이치의 위상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권력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자 시진핑 주석이 이를 적당히 흔들 기회를 찾았고, 이에 왕후닝을 차이치 앞에 내세움으로써 중국에는 2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시드니 기술대 펑충이 교수도 “왕후닝의 '위상 제고'는 차이치가 권력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고 봤다. 이는 독재의 특성상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2인자가 존재하게 되면 독재자의 위상 또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블룸버그 통신은 “차이치가 중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조용히 부상하고 있다”면서 “차이치가 당 내 서열 5위지만 실제로는 2위 리창 총리를 웃도는 권력을 행사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펑충이 교수는 “시진핑은 차이치가 너무 많은 권력을 가졌고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루머에 매우 민감하다”며 “그래서 그는 차이치의 권력 일부를 왕후닝에게 나눠줌으로써 자신이 차이치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사람임을 만방에 보여 주었다”고 밝혔다.


펑충이 교수는 그러면서 “그(시진핑)가 뇌졸중으로 고생한다는 루머가 퍼지자 그는 해당 루머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베트남 대사관으로 가 조문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RFA는 “지난 15∼18일 베이징에서 3중전회가 열리던 기간, 시 주석이 뇌졸중을 앓았다는 루머가 러시아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널리 퍼졌다”고 전했다.


그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지난 20일 베이징 주재 베트남 대사관을 찾아 베트남 권력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고 관영 중국중앙TV(CCTV)가 보도한 것이다.


[시진핑이 왕후닝을 전면에 내세운 또다른 이유?]


그런데 왕후닝이 이렇게 차이치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부상한 것은 단순하게 ‘2인자’설과 관련된 것만은 아닌 듯 보인다. 지금의 중국 상황에서 왕후닝의 역할이 중요한 때가 됐다라고 판단해 시진핑이 왕후닝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 시티대 샤밍 교수는 RFA에 “시 주석이 덩샤오핑이 연 경제 개혁 시대보다 마르크스주의 하향식 경제 계획을 고집하면서 중국 경제가 실질적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맞닥뜨려야 할 난제들을 다양한 정치·선전 수법으로 돌파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러한 업무에 적합한 인물로 왕후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왕후닝은 ‘살아있는 제갈량(諸葛亮)’으로 불릴 정도로 시진핑의 책사라 할 수 있다. 시진핑이 그에게 여론·사상을 통합하는 기구인 정협을 맡긴 것도 ‘시진핑 사상’을 공고히 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상하이에 있는 푸단(復旦)대 교수 출신인 왕후닝은 1995년에 상하이방(上海幇)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중앙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왕후닝은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국정 이념인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과 ‘과학발전관’에 이어 시진핑의 치국(治國) 사상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설계했다. 삼대(三代)에 걸쳐 ‘제왕의 책사’로 활약한 것이다.


왕후닝의 책략 핵심에는 기본적으로 ‘강한 국가’와 ‘강한 당’을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중국을 이끌어 온 ‘삼개대표론’과 ‘과학발전관’, 그리고 ‘시진핑 사상’의 공통점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당과 국가의 존재’라는 핵심가치이다.


그래서 왕후닝은 중국에서는 정치와 당(공산당)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물같이 흘러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정치체제 개혁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정치 개혁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중국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것이지 중국의 기본 체제에 대한 개혁은 결코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사상은 시진핑 정권 들어 ‘시진핑이 곧 국가’라는 신념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시진핑 옹위가 곧 중국의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결국 왕후닝의 사상은 중국의 전통에서 답을 구한 것인데 제왕적 통치체제가 중국 발전의 기본이고, 이를 현대화하여 지금의 중국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도 시진핑은 경제보다 안보를 더욱 중시하는 지금 시기, 경제를 회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사상 통제와 새로운 선전·선동으로 흐트러짐없는 중국을 이끄는데 가정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로 시진핑이 왕후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왕후닝을 사실상 2인자 격의 중책을 맡겼다는 것은 경제 위기로 돌출될 수 있는 안보상의 여러 난제들, 다시 말해 중국 공산당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는데 있어서 왕후닝이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또한 정면 돌파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카드를 시진핑의 책상 위에 올려 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중국 정치체제는 말로는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이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일 뿐이고 “권력자들에 의한, 권력자들을 위한 권력자들의 나라”라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멋지게 분장하고 화장하여 중국식 사회주의로 재창출한 이가 바로 왕후닝이다. 왕후닝의 사상은 공산당 체제의 모순과 정치 지도자들의 불안감도 적당히 감춰줬으며, 권력 투쟁의 무기로도 활용이 됐다.


또한 눈여겨볼 것은 중국에서의 강력한 반미운동도 왕후닝의 작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6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분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왕후닝은 정치국을 총동원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 당원을 대상으로, 소위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不忘初心 牢記使命)’는 주제로 교육을 시작했다.


중국이 처한 위기를 사상전으로 돌파하자는 개념인데, 이 교육의 핵심에는 대미(對美) 선전전(宣傳戰)이 자리잡고 있었다. 왕후닝은 이 선전선동을 총괄하는 교육공작 소조 조장에 임명됐다.


이러한 전 당원 교육에 들어가기 직전인 5월 왕후닝이 지휘하는 중앙선전부는 중앙방송국과 전국 성급 위성방송국에 16일부터 저녁 골든타임에 항미(抗美) 영상을 매일 방송해 ‘항미 사기를 고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왕후닝은 중국사회에 애국주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 불어닥친 항미전쟁은 국제적으로 중국을 오히려 고립시키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왕후닝이 설계할 앞으로의 중국의 모습도 대충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후닝의 그러한 선동이 앞으로 제대로 먹힐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 왕후닝이 설계하는 중국식 ‘시진핑 주의’는 아직도 봉건왕조 시대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고 사상적 이데올로기로 돌파하려는 시진핑의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시진핑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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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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