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펑리위안의 中 군부 인사 장악설]
최근들어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62) 여사의 중국 군부내 역할설을 비롯해 정계 진출설 등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특히 펑리위안이 실제적으로 군부의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국방부장 임명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의 경제난 등으로 시진핑 정권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시진핑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펑리위안이 전면으로 등장해 정치를 조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11일, “시진핑 주석이 중국 군부에 얽히고 설킨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그가 가장 신뢰하는 펑리위안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정황을 소개했다.
첫 번째는 전직 두 국방부장을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을 천거하는데 펑리위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웨이펑허와 그의 후임인 리상푸의 해임과 숙청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특히 최근들어 이 두 사람에게 주어진 죄목 등을 보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매섭다. 한마디로 국가를 배신한 역적 수준으로 단죄를 하고 있어서다.
사실 웨이펑허나 리상푸 모두 시진핑이 직접 발탁해 국방부장으로 임명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단순하게 반부패 캠페인의 희생양이라 말하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그동안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군부가 자신에게 절대적 충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지난 6월 산시성의 옛 혁명거점인 옌안에서 열린 군지휘관 회의에서 “중국 군대는 정치 업무에서 복잡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군의 정치적 충성심”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군부에 대한 시진핑의 믿음이 흔들리는 와중에 지난 12월 실각한 리상푸 국방부장의 후임으로 천거된 이가 둥쥔(蕫軍) 해군사령원(상장)이었는데 이러한 군부 인사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파격에 가까웠다.
둥쥔은 시 주석 집권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해 2021년 해군사령원이 됐다. 눈여겨볼 것은 그가 해군사령원에 이르는 과정도 파격이었는데, 그러한 과정에 누군가가 뒷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이 무성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둥쥔은 북해함대 부참모장, 동해함대 부사령원, 해군 부참모장, 남부전구 부사령원 등을 거쳤는데 주로 행정직으로 근무해 온 인물이다. 정장이나 함장 등 일선 지휘관으로 복무한 경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가 우리의 해군참모총장 격인 해군사령원에 올랐으니 당연히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뿐 아니라 인민해방군에 있어서 육군은 전통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강한 군대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제2포병군단과 위성 관련 사단의 후신으로 창설된 로켓군을 중요시하고 있다. 로켓군 출신인 웨이펑허와 리상푸를 국방부 부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직 두 부장의 부패 문제가 전면에 거론되면서 로켓군에 대한 신뢰가 상실됐고, 이후 새로운 국방부장 선임에 있어 로켓군은 배제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육군의 또다른 인물을 찾아 국방부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국방부장에 육군이 아닌 해군에서 발탁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둥쥔 임명과 동시에 육군내에서 상당한 저항까지 있었다.
일단 중화권에서 거론되는 소문은 둥쥔이 펑리위안 여사와 같은 산둥성 출신이어서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펑 여사는 산둥성 허쩌에서 태어났고, 둥쥔 부장은 산둥성 옌타이 출신이다.
그런데 중국군 고위층에는 산둥성 출신이 유독 많다. 이렇게 군부내 산둥성 출신들을 산둥방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이미 중국 군내 최대 파벌이 되었다. 실제로 시진핑 집권 초기인 지난 2014년말 나온 자료를 보면 중국군 역대 상장(우리의 대장)의 23.6%가 산둥성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산둥방이 군부내 실세로 자리잡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진핑은 지난 2012년 집권하면서 가장 취약한 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군부였다. 그래서 시진핑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그렇게 인사를 하는 명분으로 삼은 것이 바로 부패척결이었다. 말이 부패척결이지 사실은 쉬차이허우 전 군사위 부주석 등 군부 내 장쩌민 전 주석 계열 인물들을 축출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수백명의 고위급 장성들을 부패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면서 물갈이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군부내 물갈이와 군부내 통제, 그리고 군심 안정에 바로 펑리위안 여사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해군 중령 출신으로 군부 인맥이 두터운 재미 평론가 야오청(姚誠)은 “중국군은 시 주석의 명줄에 해당한다”며 “군 경력이 풍부한 펑 여사가 시 주석을 도와 군 내부를 안정시키는 건 현실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뜬금없이 펑리위안 여사의 군 경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5월 5일, 홍콩의 싱다오(星島)일보는 ‘중앙군사위 간부심사평가위원회 전임위원’이라는 직책으로 군부의 지도자들과 당당하게 서 있는 펑리위안 여사의 사진이 한 장 공개되었다.
사실 펑리위안은 원래 중국 유명 가수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군에 입대해 소장 계급을 단 군인이기도 하다. 또한 인민해방군 예술학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17년에 원장직을 사임하면서 그 후로 펑리위안 여사의 군부내 활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베일에 감싸여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펑리위안이 관여했다는 중앙군사위 간부심사평가위원회는 2016년에 중국군의 군제를 개편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기구로 소장 이상 고위급 지휘관의 정치 성향과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 군사적 소양, 도덕성 등을 평가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중국군 고위급 지휘관의 보직과 승진을 좌우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바로 그 기관에 깊이 몸담았다는 것이다. 이는 펑 여사가 중국군 인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런데 싱다오일보에 게재된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펑 여사가 소장 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고 중국군의 한 교육기관을 방문해 간부들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야오청(姚誠)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지난 2023년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해군공정대학을 시찰했을 당시의 사진으로 펑 여사 옆에서 설명하는 이는 푸젠호 항공모함의 전자식 사출기 개발에 참여한 마웨이밍(馬偉明) 교수”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한 전후사정을 봤을 때 군부에 인맥이 그렇게 얽혀 있지 않은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부인인 펑리위안을 의지하고 그녀의 결정에 따라 군부의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갈수록 정치 전면에 나서는 펑리위안, ‘제2의 장칭 될까?]
펑리위안 여사의 역할을 보여주는 두 번째 상황은 최근들어 중국 선전매체에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당의 실세 정치국 위원인 왕이 외교부장은 이례적으로 지난 5월 시 주석이 펑 여사와 함께 프랑스, 세르비아, 헝가리를 순방했을 때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바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왕이 부장의 말을 인용해 “'영부인 외교'가 시 주석의 유럽 3개국 순방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보도했다.
당시 신화 통신은 펑 여사에게 중국 음악계의 거물급 인사에게 자주 쓰이는 '교수'라는 존칭을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그녀가 순방 기간 동안 남편과 함께 20개가 넘는 행사에 동행하며 유럽 3개국 정상 부인, 다른 여성, 학생들과 교류했다고 언급했다.
신화통신은 또한 “펑 여사의 매력적인 외교가 중국에 대한 외국 대중의 호감을 높이고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1987년 시진핑이 펑리위안과 결혼했을 때 그녀는 이미 중국에서 스타이자 유명 인사였다. 중국공산당 총정치부 노래무용단 단장을 역임한 후 2012년에는 중국공산당 예술원 원장으로 승진했다.
이러한 배경이 있다보니 펑 여사는 일반적인 중국 최고위층 부인과 달리 공개 활동이 활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시 주석과 함께 정상 외교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횟수도 많다. 관영 매체에 나온 공개 활동 횟수를 보면 2022년 5차례에서 2023년 13차례로 급증했다. 올해도 세계 결핵의 날인 지난 3월24일 후난성 창사를 찾아 결핵 예방 활동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모습이 관영매체에 등장했다.
펑리위안의 이러한 공개활동을 두고 일부에선 “펑 여사가 마오쩌둥 전 주석의 부인 장칭처럼 정치 무대에 등장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펑리위안 여사도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승진해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바로 그것이다.
'신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은 배우였다. 하지만 그녀는 1966~1976년 문화대혁명 당시 4인방의 일원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그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장칭의 정치적 야망을 경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 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아내를 신뢰하고 있다. 남편이 중국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는 데 펑이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려면 시 주석이 저장성의 최고 관리였던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일화는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와 장쩌민으로부터 시작된다. 2002년 후진타오에게 당 총서기와 2003년 중국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준 후에도 장쩌민은 2004년까지 중앙군사위원회 의장직을 계속 유지했다. 장쩌민은 이렇게 주석직은 물러났지만 군 최고 직책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사실상의 최고 지도자 역할을 계속했다.
장쩌민 주석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는 저장성의 주도인 항저우의 명승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호 주변 지역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작은 연회를 여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행사에는 군가무단의 스타 가수들이 초청되곤 했다. 당시 장쩌민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펑리위안이 아니라 똑같이 유명한 다른 여성 가수였다.
그런데 이 가수는 동료인 펑리위안을 연회에 초대할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펑은 남편인 시진핑 당시 당서기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두 사람은 함께 참석했다. 장쩌민은 시진핑을 잘 몰랐지만 연회 덕분에 시진핑을 제대로 알아보게 되었다. 펑리위안이 맺어준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펑리위안은 시진핑의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해 왔다. 또한 펑리위안은 시 주석의 외교, 특히 대일 외교에도 막후에서 기여했다. 2009년 11월, 당시 펑리위안은 중국공산당 총정치부 가무단의 예술 감독을 맡아 중국 오페라 공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펑리위안은 일본 여성 가수 세리 요코와 함께 일본 노래 '사계절의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펑리위안이 공개석상에서 노래를 한 마지막 무대였던 그 자리에는 일본의 나루히토 일왕도 극비리에 참석했다. 그 무대 이후 한달이 자난 뒤 펑리위안은 시진핑 당시 부주석과 함께 일본을 공식 방문해 아키히토 일왕을 다시 만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외교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렇게 시진핑 주석이 챙길 수 없는 소프트외교에서 펑리위안 여사가 지대한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중국 내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펑리위안 여사가 제2의 장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찌감치 공산당 중앙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던 장칭과 달리 아직 공산당 중앙위 후보위원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펑 여사를 정치국원으로 발탁하려면 따로 당대표대회를 열어 중앙위원으로 선발하는 절차부터 밟아야 하는데 그런 무리수를 둘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 아시아연구센터의 마이클 커닝엄 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펑 여사가 역대 주석 부인들과 비교했을 때 공개 활동이 활발한 편이긴 하지만 당직을 맡고 있는 건 아니다”면서 “제2의 장칭이 될 것이라는 건 성급한 억측”이라고 했다.
-Why Times Newsroom Desk
-미국 Midwest 대학교 박사
-월간 행복한 우리집 편집인
-월간 가정과 상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