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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反美가 부른 비극, 이란 대통령 헬기추락 사망 후폭풍 - '시아파 맹주' 이란 대통령 헬기, 악천후로 추락 - 라이시 탄 헬기, 56년전 초도비행한 미국제 벨212 기종 - 강경파 라이시 대통령, 사실상 이란의 2인자, 후계 두고 혼란 불가피
  • 기사등록 2024-05-21 04: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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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맹주' 이란 대통령 헬기, 악천후로 추락]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탄 헬기가 19일(현지시간) 북서부 산악지대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했으며 함께 탄 9명 모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추락사고로 인해 이란 내부 정세는 물론 시아파 맹주 국가의 지도자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혼란도 우려된다.



중동의 알자지라TV는 19일(현지시간) “라이시 대통령이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에서 헬기로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면서 “이날 사고는 비와 짙은 안개 등 악천후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사고지역의 산세가 험하고 눈보라 등 악조건이 겹쳤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TV는 이어 “추락한 헬기에는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이란 외교의 사령탑인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부 장관도 타고 있었다”면서 “이란 역사상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동시에 유고된 상황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오전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국경에 양국이 공동 건설한 키즈-칼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이후 헬리콥터를 타고 이란 동(東)아제르바이잔주 상공을 지나 수도 테헤란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비행 도중 비가 내리고 안개가 심하게 껴 시야가 겨우 몇 m 앞밖에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악천후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특히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구조대도 현장에 헬기로 접근할 수 없어 도보로 이동해야 했으며, 드론도 처음에는 사고 현장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면서 “많은 이란 사람들은 범죄와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음모론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무리는 아닐 것이다. '테헤란의 도살자'라고도 불린 라이시 대통령은 온건파부터 강경 보수파 동료들까지 자국 내에서도 적들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국내의 적들이 그를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극히 일부에서는 이스라엘의 관련성 여부를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과거에도 이란의 저명한 핵 과학자 등 오랜 적들을 암살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이 아직 국가원수를 암살하는 수준까지는 간 적이 없었고, 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대통령 암살을 도모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일 수 있다”며 “이스라엘 개입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사고 관련 언급 자체를 자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Ynet)은 헬기 추락 사고와 자국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라이시 탄 헬기, 56년전 초도비행한 미국제 벨212 기종]


그런데 주목을 끄는 것은 이날 라이시 대통령 일행이 탄 헬기다. 이와 관련해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이 사고 당시 미국산 벨-212 헬기를 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 헬기가 오래전 기종이라는 점이다. 벨-212는 미국 업체인 벨 헬리콥터가 만든 헬기로, 1968년 초도 비행을 한 기종이다. 이 기종은 2개의 날개(블레이드)에 쌍발 엔진을 장착했으며, 탑승 최대 가능 인원은 조종사 1명과 승객 14명 등 15명이다. 이 헬기는 미군과 캐나다군 등에 공급됐고 민간 상업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헬기 전문가인 폴 비버는 영국 스카이뉴스에 “석유 시추시설에서 (지원용으로) 사용되는 민간 헬기로 군용 버전도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헬기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물론 이란이 이 헬기를 어떤 경로를 통해 구입했는지, 또 다른 개조작업을 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추정키로는 이란 군용기 대부분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기종인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을 통해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서방과 등을 졌다.


문제는 이렇게 오래된 기종임에도 이란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 부품 조달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며 또한 제대로된 정비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실제로 라이시 대통령 일행과 함께 총 3대의 헬기가 이동중이었는데, 그 중 두 대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착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추락한 헬기가 기기 결함 등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만약 이렇게 기기결함으로 인한 추락이 맞다면 이란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당하면서 제대로 정비를 하지도 못했고 부품 조달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 인한 문제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란의 절대적인 후원자인 러시아가 제작한 헬리콥터를 사용하지 않고 왜 아주 오래된 미국산 헬기를 썼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反美를 외치면서도 그래도 미국산이 좋고, 또 믿음이 가서 미국산 헬기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하여튼 反美를 부르짖으며 스스로 고립의 길로 들어가면서 이런 참극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강경파 라이시 대통령, 사실상 이란의 2인자]


이슬람 신정 체제 하 사법부와 검찰에서 일했던 라이시 대통령은 1979년 친미왕정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루홀라 호메이니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잇는 정통 보수파의 지도자로 여겨진 인물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특히 36년째 재직 중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를 이을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 강경 보수 성향의 인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이은 사실상 이인자로 꼽힌다.


라이시 대통령은 1960년 12월 이슬람 시아파의 최대 성지중 하나인 마슈하드 인근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대 때 현재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신학도시 곰에서 신학을 배우고 1979년 이슬람혁명 전 팔레비 왕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이슬람혁명 2년 뒤인 1981년 스무살의 나이로 테헤란 인근 카라즈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테헤란 검찰청장과 검찰총장에 이어 2019년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사법부 수장에 올랐다. 검찰 재직 당시 반체제 인사 숙청 작업을 이끌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직후인 1988년 이라크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반정부 단체인 이란인민무자헤딘기구(PMOI) 조직원들을 처형한 이른바 '호메이니 학살'에 기소위원으로 참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시 약 5천명이 사형 집행된 것으로 추산했다.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녹색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리고, 지난 2021년 8월 취임한 라이시 대통령은 근 3년간 시아파 맹주 이란의 초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이끌어왔다. 내부적으로는 지난 2022년 시작되어 전국적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이른바 '히잡 시위'를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이와 함께 라이시 재임 하의 이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가자전쟁 국면에서 이른바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하마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을 지원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에 군사적으로 맞서왔다.


특히 지난달 이스라엘의 주시리아 영사관 피폭 이후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보복 공격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초강경 이미지를 굳혀왔다.


[라이시의 유고, 중동 정세에 미칠 영향은?]


눈여겨 볼 것은 라이시의 유고로 인해 살얼음판 같은 중동 정세에 또 한 번 시계제로의 격랑이 휘몰아칠지의 여부다. 사실상 이란의 강경 노선을 직접 이끌어 왔던 라이시가 돌연 부재하게 됨으로써 당장 가자전쟁 문제는 물론이고 요동치는 중동정세에 대해 이란의 지도부가 어떻게 이끌고 갈지, 또한 라이시의 후임이 누가될지 모르지만 그 후계자가 과연 라이시 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지금의 이란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 이전에 라이시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이란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고가 이란 내부에 불러올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히잡 시위 등 반정부 봉기 및 수백만명의 지난 3월 총선 투표 보이콧이 보여준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 고조, 사상 최저치로 추락한 통화 가치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 등 미국의 제재로 인한 경제 악화 등이 내부적 불안 요소”라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이란 국장의 말을 빌어 “라이시 대통령 사망 시 이란은 부통령이 정권을 넘겨받아 5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면서 “이 상황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정통성 위기에 처해 있고 역내에서 이스라엘 및 미국과 맞서고 있는 이란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란 국영 TV 등이 일단 이번 헬기 사고의 원인을 '악천후'로 규정하고 있어,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등과의 국가 간 갈등으로 확산될 여지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이란에서 대통령의 부재로 정책의 주요 방향이 틀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아야톨리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TV 연설을 통해 “이번 사고가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라이시 대통령이나 (헬기에 동승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이 사망하거나 무력화되더라도 핵 프로그램이나 가자전쟁에 대한 우려 등 뜨거운 지정학적 이슈와 관련한 이란의 입장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한편, 미국은 검찰 재직 당시 반체제 인사 숙청 작업을 이끌었던 라이시 대통령을 2019년부터 제재목록에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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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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